[문영택의 한라칼럼] 제주를 넓히자 탐라를 말하자

[문영택의 한라칼럼] 제주를 넓히자 탐라를 말하자
  • 입력 : 2024. 03.19(화) 00:00
  • 송문혁 기자 smhg1218@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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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일전에 '귤림서원' 일로 제주공항과 청주공항을 통해 대전을 다녀왔다. 공항주차장 맨 위에 겨우 주차해 들어선 제주공항 도처는 사람으로 북새통이었다. 반면 하늘을 날아 도착한 청주공항은 한가롭기 그지없었다. 오가며 들린 두 공항은 너무나 판이한 모습이었다. 북새통과 한가로움은 알게 모르게 우리네 삶에 영향을 미칠 게다. 그래서인가, 제주사람들은 참을성이 적고 조급하다는 평을 받기도 한다. 그래서 누구는 제2공항을, 입도세를, 관광객 제한 등을 얘기한다.

필자는 그 대안을 헌법적 가치에서, 더 나아가 탐라에서 찾으려 한다. 제주도는 특별자치도 대접을 받으면서 국가 보통교부세 총액의 3%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인구수가 아닌 국토의 개념을 적용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헌법에 의한 국토는 영토·영공·영해를 포함한다. 이를 제주의 국토지수를 잰다면 전국토의 15% 이상일 게다. 그에 따른 국가예산은 지금의 5배 이상 될 게고.

탐라국 제주도는 유사 이래 여러 나라 사이에 위치한 해중의 도회지이자 요해처였다. 약소국이기에 조공외교로 백제·신라·고려를 섬기기도 했다. 그리고 원·일 제국의 식민지 설움을 받기도 했다. 1273년 삼별초를 물리친 원은 제주라는 지명이 아닌 탐라라는 국명을 사용하였다. 고려 속주(屬州)인 제주가 아닌, 독립국 탐라를 복속(服屬)했다는 원의 저의가 읽힌다.

제주목 관아 외대문 2층에 걸려있는 진해루(鎭海樓) 편액 아래에는, 탐라포정사라는 편액도 걸려 있다. 조선 8도에 1명씩 파견된 종2품인 관찰사(감사)가 배치된 관아라는 뜻인 탐라포정사(耽羅布政司)에도 해중의 도회지 제주가 깃들어 있다. 제주목사는 다른 지방의 목사보다 품계가 높은 정3품 당상관이기에, 관찰사 업무를 담당한 제주목 관아에도 포정사란 편액이 걸릴 수 있었던 게다. 이렇듯 제주는 8도에 준하는 대접을 받으며 조선의 요충지로 자리매김 해왔다.

해상왕국 탐라는 1105년 탐라군으로 바뀌며 본토의 부속도서로 편입된 후 1153년 탐라현, 1223년 제주군, 1295년 제주목, 1914년 추자섬의 제주도로의 편입, 1915년 제주도(島), 1946년 제주도(道)로 체제 환경이 바뀌며 오늘에 이른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미증유의 사건인 4·3의 아픔을 겪어야 했고, 국가에 의해 변형된 '빨갱이 섬'이 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제주사람들은 하나 되어 4·3을 바르게 알리고 국가의 사죄와 배상을 이끌어 냈다.

이제 우리는 4·3을 제대로 알리듯 탐라를 알려야 한다. 탐라국의 실체는 원하기만 하면, 쉽게 얻어지는 지근거리에 있다. 해상왕국인 탐라에 변변한 조선소가 없음을 생각해 보자. 200년 동안 이 땅에 내려졌던 출륙금지령을 알면 그 답은 간단명료해진다. 헌법의 가치는 인구수에 의한 민복 못지않게 지역의 특성 또한 꽃피움에 있다. 역사 지평을 넓히는 일, 이 또한 제주의 미래를 준비하는 길이리라. <문영택 (사)질토래비 이사장·귤림서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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