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학주의 詩읽는 화요일] (66)아배 생각-안상학

[황학주의 詩읽는 화요일] (66)아배 생각-안상학
  • 입력 : 2024. 05.07(화) 00:00
  • 오소범 기자 sobo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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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질나게 돌아다니며

외박을 밥 먹듯 하던 젊은 날

어쩌다 집에 가면

씻어도 씻어도 가시지 않는 아배 발 고랑내 나는 밥상머리에 앉아

저녁을 먹는 중에도 아배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 니 오늘 외박하냐?

- 아뇨, 올은 집에서 잘 건데요.

- 그케, 니가 집에서 자는 게 외박 아이라?

집을 자주 비우던 내가

어느 노을 좋은 저녁에 또 집을 나서자

퇴근길에 마주친 아배는

자전거를 한 발로 받쳐 선 채 짐짓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 야야, 어디 가노?

- 예...... 바람 좀 쐬려고요.

- 왜? 집에는 바람이 안 불다?

그런 아배도 오래전에 집을 나서 저기 가신 뒤로는 감감무소식이다.

삽화=배수연



피할 수 없는 말을 축소 시켜 할 수 있는 부자지간의 풍경은 읽을 만도 하고 재미도 있다. 제 집에 있으면서도 이 집 저 집을 다니는 아들의 외박에 대해 달리 해줄 일이 없는 아버지는 말로 한 마디를 한다. "니가 집에서 자는 게 외박 아이라?" 그것은 옹색함이나 무력감이 아니라 짓궂은 유머에 가깝다. 집 나가는 아들을 우려해 자전거를 세웠지만, 그게 또 막아서는 것이 아니라 재담꾼이 되어주는 일이다. "왜? 집에는 바람이 안 불다?" 선수를 치거나 꾀를 낼 틈을 주지 않으면서도 짐짓 어쩔 수 없다는 식의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 자전거를 타고 귀가하는 아버지를 멍~ 바라보고 있었을 아들은 생각했겠지. 알고 있지만 모르고 넘어간 혹은 잊고 있지만 잊히지 않는 아버지의 말들. 그리고 아버지의 다른 쪽에 세울 수 있는 '나'란 얼마만큼이나 될까. 외박 전문인 아들의 가난한 자유와 행복을 눈치챈 아버지는 그런 아들이기를 간절히 바랐는지 모른다. 아배의 자식 생각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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