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 한 순간에 앗아간 제주4·3... "도대체 무엇 때문에.."

가족들 한 순간에 앗아간 제주4·3... "도대체 무엇 때문에.."
제주4·3연구소 스물세 번째 '증언본풀이 마당'
이한진 재미제주도민회 회장 아픔의 기억 증언
  • 입력 : 2024. 07.16(화) 17:43  수정 : 2024. 07. 17(수) 20:03
  • 김채현기자 hakch@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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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희생자 유가족인 이한진 재미제주도민회 회장이 당시의 아픔을 증언하고 있다. 이상국기자

[한라일보] "1948년 12월 눈보라가 치던 날 어머니와 누나가 주검이 돼 외삼촌의 마차에 실려 왔다. 간신히 얼굴과 몸을 덮은 거적때기 밖으로 삐져나온 누나의 발이 피투성이었다." 당시 11살이었던 이 회장은 가족들을 한순간에 잃어버렸던 그날의 아픔을 꺼내놨다.

제주4·3연구소는 16일 제주4·3평화기념관 대강당에서 '벌랑에서 뉴욕, 76년만의 정뜨르 해후'를 주제로 스물세 번째 증언본풀이 마당을 개최했다.

이날 증언본풀이 마당에는 제주4·3으로 가족 4명을 잃은 이한진(87·화북리) 재미제주도민회(뉴욕) 회장이 참여했다.

이 회장의 비극은 11살 때 시작됐다. 한꺼번에 어머니, 누나, 두 형이 그의 곁을 떠나갔다.

이 회장의 어머니 이순태(당시 47)씨와 누나 이연옥(당시 17)씨는 4·3 당시 삼양지서에 연행됐다가 외삼촌의 마차에 실려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이 회장은 "누나의 숨이 끊어지지 않았는지 미세한 움직임이 있었다. 누가 누나의 입에 물을 흘려주자 곧 숨이 멈췄다"며 "어머니 얼굴을 딱 한 번만 보게 해달라고 울부짖었지만 외할머니는 끝내 보여주지 않았다. 아마 엉망이 된 어머니의 모습을 어린 자식에게 보여줄 수 없었던 것이 아니었나"라고 증언했다.

비극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4·3은 기어코 두 형의 목숨마저 앗아갔다.

이 회장의 큰형 이한빈(당시 30)씨는 징역 15년형을 선고를 받고 대구형무소에 수감된 후 행방불명됐다.

작은형 이한성(당시 26)씨는 군법회의에서 사형선고를 선고받은 후 행방불명됐다. 그의 유해는 2009년 제주공항에서 발굴됐으며, 2024년 유전자 감식으로 신원이 확인됐다.

이 회장의 큰형과 작은형은 각 2021년 2023년에 재심으로 명예를 회복했다.

4·3 광풍 이후 친척 집을 전전하며 고생을 하면서도 이 회장은 좌절하지 않았다. 그렇게 제주대 영어영문학과까지 진학했지만, '연좌제'는 그의 앞날에 족쇄를 채웠다. 공직으로 나가는 것은 당연히 어려웠고, 훝날 미국으로 건너가 재미제주도민회(뉴욕) 회장에 취임한 이후 유학생들에게 장학을 지급면서도 본인의 이름을 철저히 감췄다.

그러던 와중 2019년 6월 뉴욕 소재 UN본부에서 열렸던 4·3인권심포지엄은 그의 삶에 큰 변화를 가져왔고, 그는 가족들에게마저 철저히 감췄던 그날의 아픔을 처음 입 밖으로 꺼냈다.

이 회장은 "엉터리 재판도 억울한 일이고, 70여 년동안 두 형의 시신을 찾지 못한 것은 가슴 깊이 멍에로 남았다"며 "2024년 2월 작은형의 유해 신원이 확인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2009년 제주공항 2차 유해발굴작업에서 229번째로 발굴됐다는 뜻에서 'JIA-2-Ca229'란 기호 표식이 있었던 유해단지에 15년 만에 '이한성'이라는 이름표가 붙여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회장은 "작은형이 한 일이라곤 주민들에게 한글을 가르쳐주고, 1947년 3·1절날 현수막을 만들어 관덕정 행사에 참가한 것, 5·10 단독선거 반대한 일밖에 없는데 그것이 어머니, 누님, 형들을 죽일 일인가"라고 가슴 속의 응어리를 토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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