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학주의 詩읽는 화요일] (79)달방 있습니다-김진숙

[황학주의 詩읽는 화요일] (79)달방 있습니다-김진숙
  • 입력 : 2024. 08.06(화) 01:00
  • 오소범 기자 sobo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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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방 있습니다-김진숙




[한라일보]산지천 불빛 찾아 흘러드는 달이에요

페인트 칠 벗겨진 골목의 시간 속으로

입간판 생의 화살표 그길 따라 오세요



그리움을 게우는데 한 달이면 넉넉해요

가물대는 후렴구와 꽃 벽지에 핀 얼굴들

그림자 등 시린 밤에 둥글게 떠올라요



날마다 흐릿해지다 지워지곤 한다는데

읽다가 돌아서면 밀려오는 항해의 기록

풍랑도 달래기 좋은, 달방 여기 있습니다

삽화=김진숙



당신은 한 달치 돈을 먼저 내고 골목길 달방에 묵습니다. 산지천변에서 달을 보기 위한 건 아닐 거예요. 달방이라는 이름의 뉘앙스는 아름답고 쓸쓸합니다. 그 달방은 대체로 작지만 누구에게는 결코 작지 않을 테고, 한 달은 길지 않지만 누구에게는 넉넉하며 누구는 결코 다시 가질 수 없는 시간이잖아요. 달은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고, 그리움이란 시계 반대 방향으로 가는 시간을 말하는 거구요. 달방에서 그믐달이 보이지 않는 삭으로 간 다음 새로운 달이 "등 시린 밤에 둥글게 떠" 오를 때까지 당신은 산지천변에 달방을 끊고 울기라도 해야 하는 일이 있으며, 그때 눈에 가물대는 얼굴이 가난한 달방 꽃 벽지에 젖은 흔적처럼 그려집니다. 어쩌면 시간이 지나 변색된 이야기만 흐릿흐릿할지라도 당신에겐 달방이 있습니다. 풍랑 자락이 아무리 그 창문을 때려도 그리움을 빼앗길 수는 없는 거지요. 달방은 다른 데 있는 게 아니라 내 마음에 있는 거니까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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