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섬'으로 달라져야 더 사랑 받습니다" [당신삶]

"'여행의 섬'으로 달라져야 더 사랑 받습니다" [당신삶]
[당신의 삶이 이야기입니다] (30·끝) 제주 알리는 고수향 씨
한라산부터 올레길까지 누비며 이해한 '제주'
길 위 인연들에게 역사·문화 이야기 전하기도
2022년부터 세계자연유산해설사로 제주 알리기
"성산, 1시간 만에 '휙'?… 1박 2일 여행해야"
  • 입력 : 2025. 03.05(수) 15:00  수정 : 2025. 03. 09(일) 15:43
  • 김지은기자 jieun@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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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자연유산해설사인 고수향 씨는 "길을 걸을 수 있을 때까지 제주의 비경이 품은 신화와 설화, 역사와 문화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신비비안나 기자

[한라일보] 20여 년 전, 여느 때처럼 한라산을 올랐다 내려오며 문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길을 걸을 수 있을 때까지 걸으며 제주섬의 비경이 품은 신화와 설화, 역사와 문화의 이야기를 들려주겠노라'고. 40대 중반에 가졌던 그 꿈에 한 발짝씩 다가서고 있는 고수향(65) 씨는 오늘도 그렇게 '제주'를 이야기한다.

|생각하는 '눈'(眼)으로 보는 여행

정말 꿈결처럼 든 생각이었지만 생뚱맞은 일은 아니었다. 한라산을 꾸준히 오르면서 자연히 품게 된 목표와도 같았다. 고등학교 때 원보 훈련으로 처음 갔던 한라산을 다시 오른 것은 가정을 꾸린 30대 중반 무렵. 그때부터 일이 쉬는 날이면 한 달에 한두 번, 많게는 서너 번까지 한라산을 찾았다. 수향 씨는 "자연이란 게 그런 것 같다"며 "생각하는 눈으로 바라보니 진짜 달리 보였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한라산을 오른 횟수만도 600번이 넘는다. 이 중에 350번 이상은 백록담까지 다녀왔다. 한라산 둘레길은 10여 차례 완주했고 오름, 올레길로까지 걸음을 넓혀갔다. 숫자적 기록을 위한 게 아닌, 그저 "너무 좋아서"였다.



"제주의 아름다움은 불과 물이 지은 '선'(線)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올레길을 10여 차례 완주해 보니 '아, 제주섬이 이렇게 생겼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됐지요. 그 섬이 생긴 모습에 신화와 설화가 있고, 아픈 역사와 문화가 있다는 것도 섬이 가르쳐준 것입니다." 그는 제주섬이 자신에게 들려준 이야기를 인터넷과 책으로 다시 만나기도 했다. "제 방에 있는 책의 절반은 제주에 관한 책"일 거라며 그가 웃었다.

그렇게 알게 된 제주의 이야기는 함께 나누기도 했다. 누가 먼저 물어본 것도 아니었지만 한라산, 오름, 올레길 걸으며 만난 사람들에게 그 얘기를 들려줬다. 더 많은 이들이 제주를 생각하는 '눈'(眼)으로 바라봤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고려 시대 탐라는 고려를 다 덮을 만큼의 아픈 역사와 문화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조선 시대의 제주도 마찬가지고요. 그런데 고려와 조선은 변방의 섬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대한민국도 제주섬의 이야기를 잘 하지 않고요. 그런데 (생각해 보면)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수천 마리의 전마를 나라에 바쳐 조선을 지킨 헌마공신 김만일 이야기는 조선이, 대한민국이 해야 하는 이야기입니다. 제주4·3도 마찬가지이고요. 제 할아버지와 숙부가 4·3 때 돌아가셨는데, 당신의 아버지와 동생을 잃은 제 아버지는 장례식을 치르고 군인이 됐습니다. 군인에 의해 가족이 죽었지만, 자신이 살기 위해 군인이 된 것이지요. 이게 4·3입니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이런 제주의 이야기를 들려주면 제주를 더 잘 이해하게 됩니다."

고수향 씨는 2022년 9월부터 '세계자연유산해설사'로 제주를 알리고 있다. 신비비안나 기자

|제주를 '여행의 섬'으로

7년 전쯤, 35년간 생업으로 삼던 일을 내려놓고 새로운 일을 찾아 나섰다. 그때 길을 걸으며 만난 일이 '세계자연유산해설사'였다. 공식적으로 제주를 알리게 된 것이다. 올해 근무지가 바뀌기 전까지 2022년 9월 처음 배치된 성산일출봉에서 2년 넘게 해설사로 근무했다.

그 시간은 또 다른 전환점이 됐다. "관심을 가지고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니 성산이 제 이야기를 다 들려줬다"고 말하는 그는 이전까지 몰랐던 성산을 보게 됐다고 했다. 그런 만큼 안타까움도 컸다.

"주차장에 딱 차를 세워놓고 성산일출봉 정상만 바삐 다녀오면 1시간 정도가 걸립니다. 그런데 그 정상에 올라도 성산은 보이지 않고, 큰 굼부리(분화구)의 모습만 보이지요. 성산은 섭지코지를, 광치기해변을, 오조리 해안을 걸으며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1시간이 아니라 1박 2일을 여행해야 합니다. 그래야 진짜 성산을 볼 수 있습니다."

성산의 진가를 보여 주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은 성산일출봉 입구 홍보관을 바꿔 놓았다. 일출봉 홍보관을 새롭게 꾸미고 싶다는 수향 씨의 제안을 제주도세계유산본부가 지원하면서다. 그가 직접 찍었다는 사진과 영상은 물론 그의 미디어아트 작품과 시가 지금도 성산을 알리고 있다.

지난해부턴 틈틈이 글을 써 성산의 이야기를 엮었다. '이게 성산이다', 그가 조만간 펴낼 책의 제목이다.

"많은 분들이 비경의 아름다움을 보러 제주에 옵니다. 그런데 처음엔 100이었던 감동도 두세 번 반복해서 보면 떨어지기 마련이지요. 신화와 설화가 만나고, 역사와 문화가 만나면 비경의 아름다움은 보면 볼수록 더해질 것입니다. 그래야 제주에서의 체류 시간도 길어질 테고요. 제주를 비경만 보는 '관광의 섬'이 아니라 '여행의 섬'으로 바꿔가야 합니다. 그래야 많은 여행객이 제주를 더 사랑하게 될 겁니다." 취재·글=김지은 기자, 영상 촬영·편집=신비비안나 기자

◇당신의 삶이 이야기입니다(당신삶)

'당신삶'은 우리 주변의 다양한 삶을 마주해 온 인터뷰 코너입니다. 그동안 삶의 이야기를 함께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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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2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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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천 2025.03.07 (06:40:27)삭제
진정한 제주 사랑이군요. 군인에 의해 비해 입은 4.3의 울분을 승화시켜 오히려 군에 입대한 아버지 사연은 대단합니다. 저도 제주 자주 가는 편이지만 제주는 섬 전체가 보물덩어리입니다. 더 많은 사람이 제주에서 행복을 찾기바랍니다. 고수형님의 거룩한 사명과 중단하지 않는 발걸음을 응원합니다.
신재천 2025.03.07 (06:40:25)삭제
진정한 제주 사랑이군요. 군인에 의해 비해 입은 4.3의 울분을 승화시켜 오히려 군에 입대한 아버지 사연은 대단합니다. 저도 제주 자주 가는 편이지만 제주는 섬 전체가 보물덩어리입니다. 더 많은 사람이 제주에서 행복을 찾기바랍니다. 고수형님의 거룩한 사명과 중단하지 않는 발걸음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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