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섬 박물관 순례Ⅱ](11)자연사랑 미술관

[제주섬 박물관 순례Ⅱ](11)자연사랑 미술관
바람이 만든 제주, 카메라로 붙들다
  • 입력 : 2009. 05.28(목) 00:00
  • 진선희 기자 jin@hall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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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덤불이 우거지고 쓰레기가 쌓였던 옛 가시초등학교를 손수 치우고 고쳐 만든 '서재철 갤러리 자연사랑 미술관'. 사람의 발길이 닿기 어려운 산의 어디쯤에서 기록한 제주풍광 사진 등이 미술관 '바람자리' 전시실을 채우고 있다. /사진=김명선기자 mskim@hallailbo.co.kr

사진기자 출신 서재철 관장 기록한 제주 자연·민속

가시리 폐교 손수 고쳐 한라산·오름·해녀 사진 전시



스무개가 넘는 카메라가 열매처럼 주렁주렁 달렸다. 이름해서 '카메라 나무'. 세상을 보는 또다른 눈인 카메라를 통해 제주섬에 흩어진 여러 존재들을 담아온 그곳 '주인'이 떠오르는 전시물이었다.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에 있는 '서재철 갤러리 자연사랑 미술관'. 가시초등학교 자리에 들어섰다. 1946년부터 2001년까지 숱한 아이들이 꿈을 키워갔던 곳이다. 학교가 문을 닫은 후 한동안 어느 업체가 이곳을 빌려썼지만 예전의 생기를 되찾긴 어려웠다.

사진가 서재철씨가 사진 갤러리를 조성하기로 하고 학교를 찾았을 때 그곳은 폐허나 다름없었다. 유리창은 군데군데 깨졌고, 가시덤불이 건물을 막아섰다. 내다버린 쓰레기가 쌓였고, 마루는 더러 내려앉았다. 당장 학교의 옛 모습을 돌려놓는 일부터 시작했다.

그런 과정을 거쳐 2004년 문을 열었다. 한동안 제주시 연동에 동명의 갤러리를 운영했지만 지금은 가시리에만 '자연사랑'을 뒀다. '자연사랑'은 오랜 기간 사진기자로 활동하며 40년 넘게 사진을 찍어온 서재철 관장의 작업 여정을 보여주는 이름이다.

한라산, 오름, 포구, 해녀 등 그 모습이 변할까, 흔적이 사라질까 애태우는 게 이즈음인데 그는 일찍이 그것들의 가치에 눈길을 돌렸다. 서 관장의 말대로라면 그의 카메라는 '하늘을 나는 새부터 땅을 기어다니는 굼벵이까지' 좇았다. 야생화, 새, 곤충, 노루 등 제주섬에 숨쉬는 생명있는 것들은 모두 카메라에 붙들어왔다.

'자연사랑'은 그래서 제주섬을 온전히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바람자리'로 붙여진 전시실에는 바람이 만들어내는 신비로운 제주 풍광의 사계를 기록한 사진이 펼쳐지고 있다. 남들이 쉬이 오르지 못하는 산의 어디쯤에서, 새벽녘이나 해질 무렵 잡아낸 풍광이 여럿이다. 가시리에 있는 오름 이름을 딴 '따라비'에는 제주에서 만날 수 있는 유다른 자연·민속 등을 보여준다. '흑백사랑'은 흑백사진으로 제주의 옛 모습을 펼쳐놓는 공간인데, 지금은 미술관 소장품전이 열리고 있다. 미술관 한켠엔 반세기에 걸친 가시초등학교 졸업생들을 담은 사진이 걸렸다.

미술관 뒤편에는 '화산탄 갤러리'가 조성됐다. 화산탄은 화산에서 솟구친 용암이 공중에서 회전하다 떨어져 굳은 덩어리를 말한다. 가시리와 그 부근에서 하나둘 모은 화산탄이 전시중이다. 작은 새 모양의 화산탄에서 커다란 고구마 형상까지 볼 수 있다. 제주섬과 오름이 탄생하던 순간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어느 관람객은 이곳에서 해녀 사진을 보고 눈시울을 붉혔다. 거친 바다를 고단하게 헤쳐갔던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개관 5년째인 자연사랑 미술관은 미처 보여주지 못한 사진들이 더 많다. 줄달음치는 시대의 속도에 눌려 제주자연과 민속이 빛을 잃어가는 이때에 미술관이 소장한 사진은 제주섬이 잃어버리고 있는 것들에 대한 기록이다. 전시장의 사진들은 조용히 그 점을 웅변하고 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www.hallaphoto.co.kr. 787-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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