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떵살암수과]김만덕상 모임 회장 김경생 할머니

[어떵살암수과]김만덕상 모임 회장 김경생 할머니
"만덕 뜻 이어 나보다 남을 먼저"
  • 입력 : 2011. 01.22(토)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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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김만덕상 수상자인 김경생 할머니는 수의 제작 공동작업장을 운영하며 오랫동안 대가없는 베풂과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사진=강경민기자

연고없는 아이 등 키워 1988년 김만덕상
수의 제작 봉사… 품삯 빼곤 사회에 환원

"올해 내 나이가 아흔둘이라. 아흔 넘으민 그만두려고 해서. 정신이 살아있을때 정리해야주."

'드르르 드르르' 재봉틀을 돌리던 김경생(제주시 삼도 2동) 할머니는 오랜 결심을 털어놓듯 그렇게 말했다. 김 할머니를 만난 곳은 제주시 이도1동복지회관 1층에 자리한 노인공동작업장. 하얀 실밥이 늘상 옷에 붙어다니는 그곳에서 할머니는 수의를 만든다.

얼마전까지 나이 90대에 접어든 세 명의 할머니가 공동작업했지만 지금은 2명으로 줄었다. 할머니 한 명이 몸이 아파 작업장으로 걸음하는 일이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김 할머니는 작업장의 대표로 있다. 묵묵히 집안일을 도맡아하고 남편 뒷바라지에 전념하는 여인의 모습을 이상으로 여긴 시대를 거쳐온 할머니는 자연스레 수의 짓는 법을 익혔다. 20년전쯤부터 수의를 본격적으로 만들어온 할머니는 2002년 '수의와 부수품 제작'분야에서 제주시 향토문화유산 기능인으로 지정받았다.

수의를 제작하면서 이웃들에게 베푼 김경생 할머니의 선행은 널리 알려져있다. 1994년 이도1동사무소에서 수의제작교실을 운영하던 할머니는 이듬해부터 매년 2벌씩 수의를 지어 어려운 노인들에게 전달했고, 2005년과 2009년에도 제주시에 홀로사는 노인들을 위해 20벌 안팎의 수의를 장만했다.

"버는 게 어서도 버는 대로 소비하는 것이 원칙"이라는 할머니의 씀씀이는 '나'보다는 이웃을 향해 있다. 그는 지난해 31회 수상자까지 배출한 김만덕상을 탔다. 1988년 제9회 수상자였다.

할머니는 일본군이 제주에 주둔했을 때 가족과 함께 한라산으로 피신했다가 1945년 6월 홍수로 4명의 자녀가 모두 실종되는 아픔을 겪었다. 괴로운 나날을 보내던 그는 의지할 곳 없고, 부모없는 아이들 6명을 제 자식처럼 키워냈다. 제때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 동거부부, 어려운 가정에도 꾸준히 온정의 손길을 폈다.

2010년 10월 현재 역대 김만덕상 수상자 34명중 9명이 세상을 등졌다. 도내 거주자 18명은 매달 20일쯤 정기적 모임을 열고 있다. 김경생 할머니는 김만덕상 수상자 모임의 회장을 맡았다. 2007년 '김만덕 나눔쌀 천섬 쌓기' 행사가 진행될 때는 "더 큰 도움을 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1000만원을 내놓았다.

공동작업장 일을 그만두는 것처럼 수상자 모임 회장직도 다른 이에게 넘길 생각이라는 할머니는 "만덕상은 한 평생 만덕의 뒤를 따라 남을 돕고 자비를 베푸는 마음 가짐을 지키려는 사람이 받을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 '만덕상을 탔소'라고 떠드는 사람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할머니는 수상자 모임에 나갈 때마다 "만덕상을 타면 책임이 중하다. 자기 것을 자기 것이라 해서는 안된다"는 말을 잊지 않는다.

이즈음 할머니는 오는 2~3월쯤 제주시 각 마을에 전달할 수의를 제작하고 있다. 그동안 형편이 넉넉치 않은 이들에게는 저렴한 가격으로 수의를 만들어줬고, 수의 제작으로 생겨난 수입은 공동작업장 할머니들의 바느질 품삯을 빼곤 다시 이웃을 위해 썼다. 사비를 들인 적도 여러차례다. 할머니는 수많은 사연이 거쳐간 수의 작업장을 떠나려는 채비를 하고 있다. 섭섭하다는 이들도 있지만 할머니는 이미 마음을 굳혔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베풂을 실천해온 할머니는 이번 겨울 작업장 한켠에서 명주 옷감을 손에 쥔 채 마지막일지 모르는 수의 바느질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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