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떵살암수과]바람도서관 운영 박범준씨

[어떵살암수과]바람도서관 운영 박범준씨
'脫서울'했더니 할 일 더 많아
  • 입력 : 2011. 04.16(토)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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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천읍 와흘리에서 봉개동으로 장소를 옮겨 바람도서관을 운영하는 박범준씨는 할 일 많고 볼 것 많은 제주생활의 즐거움이 크다고 했다. /사진=이승철기자

30대 초반 시골생활 택해
작은 도서관 봉개동 이전
초콜릿·음악있는 쉼터로

창문 너머 찻길로 아스팔트를 가르는 자동차들의 모습이 보였다. 간간이 '윙윙' 모터소리가 들려왔다.

제주시 도심을 살짝 비켜선 그곳에 책과 음악, 커피와 수제초콜릿을 한꺼번에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봉개동 봉개초등학교 옆에 들어선 '달빛봉봉베란다'. 서른을 조금 넘긴 나이에 담박한 시골생활을 선택한 박범준씨(39)의 사연이 깃든 장소다.

서울대를 졸업한 남편과 카이스트 출신 아내. 남들이 보면 부러울 것이 없는 '조건'을 지닌 부부였다. IT업계에서 근무하던 그들은 어느날 이 땅의 수도를 벗어나 지방으로 향했다.

"충격이 없으면 서울 생활에서 빠져나오기 어려울 것이다. '힘들어도 버텨보자'라는 사람들이 많다. 서울에 살다가 그곳을 떠나면 패배자가 된 것 같으니까. 그런데 우리는 바쁘고, 정신없이 돌아가는 생활이 싫었다.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세상과 단절된 듯한 전북 무주의 산골에 살던 부부의 모습은 2005년 TV 프로그램을 통해 방영되며 주목을 끌었다. 방송이 끝나고 난 뒤 낯선 이들이 불쑥 집까지 방문할 정도로 유명세를 치렀다. 그들은 결국 무주, 광양 등지를 돌아 제주에 짐을 풀었다. 그때가 2007년이었다.

애초부터 제주 정착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다. 남쪽으로, 남쪽으로 발길을 돌리다 제주를 떠올렸고 1주일 일정으로 여행 왔다가 마침 와흘리 전원마을을 알게 됐다. 당시 박씨가 기억하는 11월의 제주 날씨는 최고였다. 햇살이 대지에 담뿍 내려앉고 한라산은 눈에 잡힐 듯 다가왔다. 인연은 그렇게 맺어졌다.

와흘리 살림집 한켠을 떼어내 부부의 소장 도서를 모아 바람도서관을 꾸몄다. 펜션도 운영했다. '탈서울'을 결심하며 '적게 벌어 적게 쓰자'는 마음을 굳혔지만 생계를 꾸려가는 어려움은 있었다. 하지만 박씨는 서울 못지 않게 할 일이 많고, 볼 것이 많은 제주생활에 그런 현실을 뛰어넘는 재미가 있다고 했다. 그는 최근 제주로 찾아드는 '이주민'중에 젊은층이 부쩍 늘고 있는 것은 큰 도시와 별반 다를 것 없는 거주 환경을 갖췄으면서도 맑은 자연을 동시에 누릴 수 있는 제주의 장점들이 널리 알려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행복한 작은 도서관'을 내건 바람도서관에 요즘 변화가 생겼다. 그동안 알음알음 방문객이 꾸준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도서관을 마냥 개방하는 게 간단치 않았다. 제주섬에 흩어진 수많은 공공도서관을 두고 바람도서관까지 걸음하기도 쉽지 않다.

'달빛봉봉베란다'는 그런 고민을 해결해줬다. 수제초콜릿 만드는 법을 배운 부인 장길연씨(37)가 후배와 차린 초콜릿카페 '달빛봉봉베란다'에 바람도서관이 들어앉았다. 와흘리 바람도서관은 펜션 이용자를 위해 문을 열어둔다는 점에서 사실상 봉개동으로 이전한 셈이다.

지난 2월부터 봉개동 시대를 연 바람도서관에는 1000여권의 장서를 갖추고 있다. 박씨는 음악 듣기, 영화 함께 보기, 독서 모임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짜놓았다. 책만 잔뜩 쌓아둔 '공부방 도서관'이 아니라 봉개동의 문화쉼터로 이용자들과 한결 가깝게 만날 기대감에 차있다. '달빛봉봉베란다'가 있는 바람도서관은 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 운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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