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훈의 제주마을 탐방](23)대정읍 상모1리

[양기훈의 제주마을 탐방](23)대정읍 상모1리
  • 입력 : 2015. 01.06(화)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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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뜨르비행장과 송악산(사진 위)과 상모1리 마을전경 및 모슬봉.

아픈 역사를 뒤로하고 제주 최고 명품마을로 기지개
알뜨르, 일제가 강제로 빼앗아 비행장 건설했던 농토
해방 후 돌려받지 못하고 국방부 소유로 땅 빌려 농사
송악산·마라도 방문 관광객 매년 35만명 이상 다녀가
송악산 일대 보존중심으로 지분참여형 개발 이뤄져야
마을 소유 마을회관도 없어… 상모1리 서글픈 현실 속
'농촌 중심지 활성화 사업' 올해 시작… 마을발전 기대



모슬포라는 이름은 모슬개라고 하는 옛 지명에서 왔다. 웃모슬개는 상모리로, 알모슬개는 하모리가 되었다. 상모1리는 대정읍 동남쪽 끝자락에 위치한 마을이다. 이교동과 산이수동이라는 두 개의 마을이 모여 행정리 명칭인 상모1리가 되었다. 동쪽으로는 안덕면 사계리와 경계 하며, 남쪽으로는 가파도와 마라도를 마주하고 있다. 송악산 이중화산체 해안절경이 있어 해안도로를 따라 가다보면 바라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 탁 트이게 만드는 곳이다.

송악산과 마라도 방문을 목적으로 매년 35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다녀가고 있다. 감자와 마늘을 주 생산으로 하는 밭 농업뿐만 아니라 해녀를 비롯하여 수산업에 종사하는 경제활동은 물론 민박, 팬션, 식당 등 관광업에 종사하는 인구도 늘고 있다고 한다.

국방부 소유인 알뜨르 일대 농로.

일제강점기 알뜨르 전쟁유적.

66만 여 평! '알뜨르'라는 광활한 농토는 근현대사의 가슴 아픈 역사를 지금도 이어가고 있다. 일제가 강제로 빼앗아 비행장을 건설했던 농토를 해방이 되었음에도 돌려받지 못한 마을이다. 국방부 소유로 넘어가서 지금도 지역 농민의 40% 정도는 이 땅을 빌려서 농사짓고 있다고 한다. 상황 인식에 대한 문경준 이교동장의 주장은 함축적이다. "물건을 도둑질 해 간 도둑놈을 경찰이 잡았으면 그 물건을 주인을 찾아 돌려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경찰이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며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서 물건 주인에게 빌려서 쓰라는 게 말이 되냐는 겁니다."

해방 70년이다. 상모1리 주민들 입장에서는 한 맺힌 세월이라고 해야겠다. 설촌 당시를 가늠 할 수 있는 족보를 통해서 보더라도 17세기 경부터 이 일대로 들어와 살아온 조상들이 있었다. 그 분들이 피땀 흘려 뼈 빠지게 일궈놓은 농토가 후손들의 소유가 될 수 없는 현실을 과연 상모1리 조상들은 이해 할 수 있을까? 일본군 전쟁유적이라는 이름으로 문화재청까지 합세하여 알뜨르 농토는 다시 한 겹 더 중앙정부 통제 아래 놓여지고. 관점의 차이에서 오는 입장일 것이다.

자발성을 저해하는 가장 큰 요인은 피해의식이다. 강요당한 식민과 분단의 역사 속에서 흘린 굴종의 눈물을 생각한다. 알뜨르의 미래는 상모1리의 꿈과 연동되기 때문에 내생적 개발의지 또한 직접적으로 이 농토가 지닌 문제를 주민들의 입장에서 바라봐야 할 것이다. 근본적인 문제를 피하다보면 갈 길은 점점 더 멀어져가는 것.

희망은 있다. 310 가호 800명에 육박하는 주민들의 희망. 자타가 인정하는 관광잠재력이다. 역사, 문화, 생태, 농어촌 등의 풍부한 자원과 결합한 농어촌 관광, 체험관광, 생태 관광, 역사·문화관광이 복합적으로 펼쳐질 수 있는 마을이라는 것이다. 물론 주변지역이 관광지로 각광 받고 있는 공간적 입지와 연결되기 때문에 가능한 판단이리라.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송악산이라는 자원을 어떻게 활용 할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다.

강성모 이장

오래 전부터 개발계획에 대한 관심을 표명한 사업주체들이 등장 했었다. 최근에도 자본력을 앞세운 중국 기업에서 송악산 인근에 관광개발을 신청하고 주민설명회까지 열었다고 한다. 70년대부터 지역개발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온 강경찬(77) 전 이장은 단호하다. "송악산은 우리의 가장 소중은 자산이다. 보존을 중심으로 개발행위가 이뤄져야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지분 참여형 개발이 있어야 한다." 지금 세대에게 이득을 주겠다는 소리는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개발 행위는 후손들의 운명과 직결되는 문제로 인식하고 있었다. 의식의 성장이 놀라웠다.

상모1리의 서글픈 현실이 있었다. 리 단위 마을 중에 마을 소유 마을회관이 없다. 이교동 마을회관을 빌어서 리사무소로 사용하고 있었다. 1985년부터 법정도 상모리가 행정동 상모1리, 상모2리, 상모3리로 구분되면서 자연부락이라고 할 수 있는 이교동과 산이수동을 합하여 상모1리라고 정한 결과 이교동 마을회관을 사용하게 된 것. 가장 중요한 숙원사업이 상모1리 소유 마을회관을 건립하는 것이다. 당장 시급한 것은 지금 사용하고 있는 이교동 마을회관도 노후화되어 고치면서 써야 될 판이라고 했다. 행정지원이 절실하지만 여러 가지로 막막한 모양이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마을발전에 대한 사업적 노력은 활기차게 추진되고 있었다. 80억원이 투입되는 '농촌 중심지 활성화 사업'이 올해부터 시작된다고 했다. 강성모 이장이 생각하는 상모1리의 미래는 밝았다. "이 사업을 새로운 시발점으로 삼아 확고한 발전의 발판으로 삼겠다. 한 세대 뒤를 내다보고 6차 산업 차원에서 접근하여 가장 살기좋은 마을로 변모시키겠다." 관광과 농수산업이 만날 수 있는 주변 여건을 고려하여 치밀하게 전략을 수립하는 중이라고 했다.

어르신들의 교통수단 오토바이.

양정선 마을회 사무장의 소박하면서도 절실한 꿈은 "아이 우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 마을이 되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농촌고령화 현실에서 젊은이들이 많이 돌아오는 농촌을 만들어야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받아들였다. 너른 농토를 지키며 경작할 젊은이들이 상모1리에 들어와 살지 않는 한 희망을 이야기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현실직시였다.

숱한 도전과 문제에 직면하고 있는 상모1리. 과거의 상처에 묶여 있는 현실을 극복하고 지금 끓어오르고 있는 주민들의 발전 열망을 동력으로 활용한다면 폭발적으로 성장 할 수 있는 마을이다. 모든 문제를 주민자발성에 의해서 풀어나가고자 하는 의지가 결연하다. 제주 최고의 명품마을로 거듭날 것이 분명해 보인다.

<공공미술가> <인터뷰 음성파일은 ihalla.com에서 청취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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