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훈의 제주마을 탐방](25)애월읍 구엄리

[양기훈의 제주마을 탐방](25)애월읍 구엄리
  • 입력 : 2015. 01.20(화)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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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수산봉이 보이는 마을전경(사진 위)과 돌빌레염전 및 갯바위.

세계 유일 '돌염전' 복원해 관광자원화를 꿈꾸며…
여성 설촌역사 주역으로 등장… 할망당 마을 당제 올려
주민 밭농사·어업을 통해 생업 이어온 반농반어촌 마을
돌빌레염전 '농어업유산 지정관리 기준 개정안' 마련
집중호우시 마을 안에 침수지역 발생… 고질적 문제도
느림의 미학 구현… 차별화된 '친환경 해안도로' 꿈꿔



엄쟁이라고 불러온 지역이다. 옛 문헌에 엄장포(嚴莊浦)라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지역명칭을 따서 포구 이름을 한문으로 표기한 것으로 보고 있다. 구전에 의하면 삼별초가 항파두리에 웅거하던 때에 토성 축조에 마을사람들이 끌려가 노역하였다고 한다. 설촌은 이미 13세기말 이전이라는 이야기다. 가장 먼저 이 지역에 들어와 살았다는 설촌 주체가 분명하게 전해 내려오고 있는 마을. 조두헌(80) 노인회장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송씨 할망이 맨 처음 이 땅에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 할망을 신당에 모셔서 마을 당제를 올린다."고 한다. '송씨 부인 일뤠한 집'이 그 곳이다. 독특하다. 보통 남성 위주로 설촌의 역사가 전해지지만 이 마을은 여성이 설촌의 주역으로 등장하고 있으니. 당집 뒤 팽나무가 신성해 보인다.

웃동네, 알동네, 모감동, 대흥동으로 구성된 마을이다. 비닐하우스를 이용한 오이농사로 유명하다. 너른 경작지를 기반으로 쪽파를 비롯한 밭농사와 대대로 포구에 도대불을 밝히며 어로활동을 통해 생업을 이어온 반농반어촌이다.

처음 들어와 살았다는 송씨 할망을 모신 당.

제주섬 생성기, 용암이 흘러와 바닷가와 이처럼 멋있게 만날 수도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마을이다. 침식을 거듭하면서도 현재와 같은 오묘한 해안절경을 만들어냈다. 굳은 용암을 자재로 파도가 수 만 년을 조각한 예술품이 해안도로를 따라 펼쳐져 있다. 포구를 중심으로 서쪽은 현무암 암반지대, 동쪽은 원담이 있는 호형구도를 지닌 해안가로 이뤄져 있다. 아름다운 마을 바닷가 1.5km 구간은 조상 대대로 어부와 해녀들의 생존 공간이었다.

특이한 해양문화자원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돌빌레염전이다. 용암이 바다와 만나며 식으며 형성된 암반지대가 두꺼워서 바다와 잇닿아 있으면서도 파도가 올라오지 못하기 때문에 그 위에 바닷물을 길어 올려 소금을 생산하던 곳. 마을 어르신들이 전하는 생산과정은 노하우의 연속이었다. 먼저 염분도 20%인 '곤물'을 만들고, 30일 정도의 증발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 과정에서 노동 집약형 경험치로 바닷가 현무암 위에서 만든 소금. 일반 소금보다 맛과 영양이 뛰어나 일본에서 전량 구매의사를 밝히고 있다고 한다.

행정 당국에서도 농어업유산의 가치를 인식하고 국가유산 등재를 추진했었다. 성과를 내지 못하는 과정에서 2013년 말에 '농어업유산 지정관리 기준' 개정안이 마련되었다. 강화된 기준을 살펴보면 구엄리 돌염전은 원형 복원 못지않게 문화자산으로서의 가치를 발굴해야하는 과제를 지니고 있다. 10여 년 전, 돌염전 복원 단계에서부터 주민들은 무형문화재처럼 기능보유자 지정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지금은 농림축산식품부가 그 내용을 등재 기준으로 들고 나온 형국이 된 것이다.

예전 뱃사람들의 길잡이 '도대불'.

독창적인 문화유산 하나가 해당 공무원들의 무사안일과 무능 때문에 내팽개쳐져 있는 모습에 분개하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것만 성과로 생각하는 졸렬한 행정이 낳은 결과다. 돌염전만 복원하면 뭐하나? 조상 대대로 바닷가 검은 현무암 위에서 소금을 만들어내는 기술력, 그 무형의 자산에 대한 발굴과 계승 먼저다. 연구용역팀이라도 시급하게 만들어서 구엄리 어르신들을 찾아다녀야 한다.

송승학 이장

송영민(53) 어촌계장은 기능전수자 지정의 시급성은 '돌소금 체험프로그램'의 핵심과제로 인식하고 있었다. 구엄 어촌체험마을은 해양수산부가 어촌관광의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해 선정한 국제어촌체험마을이다. 외국인 관광객이 "기능보유자가 누구냐?"고 물으면 국제망신 아닌가.

송승학(53) 이장은 신다리내가 지닌 문제 해결이 당면 과제라고 했다. 집중호우 시기에 냇가 위쪽은 폭이 4m인데 바닷가 쪽으로 가면 2m 정도로 폭이 좁아들어 있어서 마을 안에 침수지역이 발생하는 고질적인 문제를 풀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마을 발전을 위해서 새마을회 소유의 토지를 활용하고 싶어도 이상한 법 때문에 난관에 봉착해 있다고 한다. 지목이 밭으로 된 곳은 개인 명의로 등록되어 있다는 것. 몇 년에 한 번 씩 명의 변경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해소하고 마을공동체 명의로 만드는 방법을 찾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웃드르 송당리에서 시집와서 해녀 일까지 배워 다부지게 살아온 고수연(54) 부녀회장의 꿈은 지금 농촌 현실에서 아들과 이 아름다운 마을에서 함께 살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행복한 마을이기 때문에. 부녀회원들 중에 이색적인 친목모임을 소개 했다. 제주시 동쪽 지역에서 구엄리에 시집와서 살아가는 며느리들의 모임 명칭이 '동방불패'라고 한다. 마을 주민 대부분이 알고 있는 친목이다. 구엄리 사람들의 넉넉하게 열린 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구엄리포구와 해안도로.

마을 주민들의 공통적인 기대감은 해안도로에 대한 부가가치를 높이는 것. 농업 소득과 어업 소득만 가지고는 마을경쟁력 높이기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마을회가 추진해온 사업과 앞으로 펼쳐나갈 모든 사업이 성과를 내서 주민복지 향상에 기여할 수 있을 정도로 수익을 발생시키기 위해서는 해안도로를 찾는 방문객이 지금의 몇 배는 늘어나야 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파격적인 발상의 전환이 없는 한 불가능하다는 것도 자각하고 있었다. 다른 해안도로와 차별화 된 진정한 의미에서 느림의 미학을 구현 할 수 있는 친환경 해안도로를 꿈꾸고 있는 것이다.

300여 가구 1000명이 넘는 주민들의 미래는 오늘의 판단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자신의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은 마을 공동체가 획득 할 수 있는 이익에 비해 아주 작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의 마을. 해안도로의 가치와 함께 커갈 것이다.

<공공미술가> <인터뷰 음성파일은 ihalla.com에서 청취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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