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재정사 한 획 그은 제주인

지방자치재정사 한 획 그은 제주인
[더 큰 제주, 희망은 사람이다]한승섭 행정자치부 부이사관
제주-중앙 가교역할… "정부부처 공무원과 접촉 중요"
  • 입력 : 2015. 07.15(수) 00:00
  • 부미현 기자 bu8385@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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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생활 32년째를 맞고 있는 한승섭 행정자치부 부이사관은 제주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중앙에서 든든한 제주의 지원군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오랜기간 제주지역 공무원들에게 중앙절충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부미현기자

제주도가 특별자치도로 승격한 뒤에도 여전히 중앙 정부 부처와는 긴밀한 협조체계 구축이 요구된다. 국비 지원 없이는 제주도가 스스로 자립할 수 없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매해 예산정국에 제주도가 중앙 절충에 사활을 거는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다. 중앙 절충에서 있어서 정부 부처에 제주의 목소리를 조금이나마 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다름아닌 제주출신 부처 공직자들이다. 공직생활 32년 경력의 한승섭 행정자치부 부이사관(56)의 경우 좀 더 특별하다. 제주시 동사무소에서 공직생활을 시작, 시청과 도청을 거쳐 정부 부처로 소속이 바뀐 뒤에도 제주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중앙에서 든든한 제주의 지원군 역할을 하고 있다. 지방재정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교부세 분야에서 특히 전문성을 인정받아왔으며 제주도 공무원들에게 오랜기간 중앙 절충 노하우를 전수해왔다. 한 부이사관을 지난 11일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에 위치한 한라일보 서울지사에서 만났다.

한 부이사관은 지난해 11월 부이사관 승진과 함께 2015년 경북문경 세계군인체육대회 조직위원회 운영본부장으로 파견 근무 중이다.

"1989년 현 행정자치부의 전신인 내무부 교부세과 창설멤버로서, 7급부터 4급까지 교부세분야에서만 총 15년을 근무했습니다. 내무부에서는 행정주사 시절부터 서기관 승진시(2005년)까지 대부분의 기간을 기획예산담당관실, 교부세과 등 국가재정과 지방재정을 담당하는 부서에 근무했습니다. 교부세업무는 재원을 자치단체에 배분하는 것인 만큼 업무수행에 공정하고 사사로움이 없어야 합니다. 제가 이 분야에서 가장 오랜 기간을 재직한 것도 저의 강직한 성격과 성실성, 전문성을 인정받은 것이라 자부합니다."

지방7급 공직 입문 후 내무부 전입
동사무소부터 행자부 등 경험 다양
지방교부세 법정률 인상 ‘화제인물’
제주도의 중앙절충시 지원군 역할
"평소 정부부처 공무원과 접촉 중요"


그는 교부세제도계장 근무 당시 난공불락이었던 지방교부세 법정률(내국세의 13.27%)을 막강부처인 기획예산처와의 오랜 협상 끝에 15%로 인상시켰다. 이는 지방자치재정사에 획기적인 사건으로 손꼽힌다. 그리고 특별법에 따라 제주도에 대해서는 보통교부세가 일반적인 산정방식에 따라 배분되지 않고 법정률(3%)로 제도화함으로써 제주도가 재원의 안정적 확보를 도모할 수 있도록 한 것도 그가 교부세계장 당시 담당했던 일 중 하나다.

그는 1991년 도입된 뒤 2005년 폐지된 양여금업무를 담당할 때 전국의 수 많은 비포장 지방도로들, 특히 도로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제주도의 비포장도로가 대부분 포장되면서 낙후된 교통여건을 획기적으로 개선시키는 데도 기여했다.

그는 지방공무원에서 중앙부처 고위공직자로 승승장구했다. 제주대학교 행정학과 4학년 때인 지난 1983년 제주도 지방7급 공채에 합격하고, 이듬해 2월 제주시 화북동에 첫 발령을 받았다. 시장님의 연설문 작성을 한번 해보라는 인사담당자의 권유로 1개월 만에 제주시청 총무과(시정계)로 발탁됐고, 다시 1년여 만에 제주도청으로 인사 발탁되어 당시 제주도 특정지역개발사업을 총괄하는 종합개발담당관실에 근무했다.

"최초 발령을 동사무소에 받고 이후 3년만에 시청과 도청을 거쳐 중앙에 전입했다는 점은 매우 특이한 기록인 것 같습니다. 어쩌면 전무후무한 기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과거 모든 행정계층의 근무경험이 중앙에서 지방행정분야 업무를 수행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그는 도청 근무 2년차에 전국적으로 치러진 현 행정자치부의 전신인 내무부 전입시험에 합격했는데 당시 내무부 전입시험은 지방의 경력 공무원들을 중앙에 배치함으로써 업무 효율성을 기하기 위한 제도였다. 전국에서 20명 선발에 220명이 응시할 정도로 경쟁률도 높았다. 내무부는 당시 '광화문 청사는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다', '내무부 공무원은 군복을 입지 않은 군인'이라는 말이 돌 정도로 업무 강도가 세고 위계질서도 엄격했다. 소관 부처가 해결하지 못한 과업도 내무부는 해결해낸다는 인식이 존재했다. 승승장구하던 그에게도 내무부 발령 초기는 시련의 시간이었다.

"제주에서 받던 봉급과 별반 차이가 나지 않는 급여를 받으면서 서울 생활을 시작했기에 경제적 어려움이 매우 컸습니다. 경기도에 집을 구해 야근 뒤에는 총알택시를 타고 가는 적도 많았지요. 매일 매일이 힘들었고 제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무수히 했지만 당시 내무부 공무원들은 모두가 국가와 민족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하고 버텨낸 것 같습니다."

이후 그는 내무부 기획예산, 교부세과, 행자부 민방위기획, 교부세과, 행안부 제주도지역협력관, 재경부지역특구과장, 기록원 기록편찬문화과장, 이북5도 사무국장, 안행부 감사담당관 등을 거치며 고위공무원으로 성장했다.

제주에서 나고 자라, 제주대학교를 졸업하고, 제주에서 공직생활 초년생 시기를 보낸 그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중앙부처와 제주를 연결하는 중요한 연결고리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제주에서 3년여 간 근무했던 경험은 그가 여전히 제주 현안에 관심을 기울이고 중앙 부처의 시각에서 제주도에 조언을 시시때때로 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그는 제주에 뼈있는 조언도 서슴치 않았다.

"지방정부가 중앙절충에 나설 때 제가 반드시 강조하는 게 있습니다. 성수기에 열번 찾아가지말고 비수기에 한번 가라는 것입니다. 작고하신 신철주 북제주군 군수님은 중앙 부처에서 그런 면에서 정평이 나 있었습니다. 남들이 하지 않을 때 적극적으로 중앙 부처 공무원을 만나, 여유있게 현안을 설명해야 기억에 남고, 효과적이죠."

여기에다 그가 또하나 강조한 것은 제주 공무원들의 중앙 인력 교류 확대와 이를 위한 인센티브 강화다. 제주특별자치도 공무원들이 더 넓은 시각을 가져야 특별자치도도 성공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지방출신, 지방대 출신이기 때문에 안되고 어렵다는 생각을 미리 할 필요가 없습니다. 적어도 끊임 없이 시도하고, 노력하는 사람한테는 의외로 세상은 공정합니다. 저 또한 지금까지 공직생활을 하면서 지방·지방대 출신이기 때문에 일반 경쟁에서 특별히 밀리거나 손해를 봤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렵다고 시도 자체를 안하는 것 보다 시도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고, 당장의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보다 멀리, 보다 넓게 보다 지속 가능하게 도전하라'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습니다."



2015 세계군인체육대회 조직위원회 운영본부장


한승섭 부이사관은 누구?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 출신으로 제주대학교 행정학과 4학년 때인 지난 1983년 제주도 지방7급 공채에 합격하고, 이듬해 2월 제주시 화북동에 첫 발령을 받았다. 1개월 만에 제주시청 총무과(시정계)로 발탁됐고 다시 1년여 만에 제주도청으로 인사 발탁돼 당시 제주도 특정지역개발사업을 총괄하는 종합개발담당관실에 근무했다. 1987년 1월 내무부(현 행정자치부)가 전국적으로 모집 시행한 내무부 전입고사에 합격, 같은해 2월 내무부로 전입했다. 내무부에서는 행정주사(90년) 시절부터 서기관 승진때(2005년)까지 대부분 기획예산담당관실, 교부세과 등 국가재정과 지방재정을 담당하는 부서에 근무했으며 이후 제주도 지역협력관과 재정경제부 지역특구과장 파견, 국가기록원 기록편찬문화과장, 이북5도 함경남도사무국장, 행안부 공무원노사협력담당관, 민간협력과장, 감사담당관을 역임했다. 지난해 11월 부이사관으로 승진한 후 현재까지 2015 경북문경 세계군인체육대회 조직위원회에 파견돼 운영본부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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