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패션행사인 서울패션위크에서 제주를 모티브로 삼은 컬렉션을 선보여 주목을 받은 박린준 패션디자이너.
신진 디자이너 등용문 '2016 서울패션위크'서 컬렉션 선보여파보텔 기업의 초청 전시회 한국 디자이너로 유일하게 초대돼
국내에서 가장 큰 패션행사인 서울패션위크. 매 해 국내 패션 트렌드를 한 눈에 보여주는 서울패션위크는 신진 디자이너들에게는 가장 위상이 높은 등용문이기도 하다. 올해 2016 F/W 헤라서울패션위크에서는 패션업계의 시선이 제주로 쏠렸다. 제주 출신의 신진 디자이너가 제주를 모티브로 삼은 컬렉션을 선보이며 큰 호응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 주인공은 바로 '페일 터콰이즈(Pale Turquoise)'의 박린준(25) 대표다. 1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서울패션위크의 제너레이션 넥스트 서울(Generation Next Seoul)에서 화려하게 데뷔한 박 대표를 지난 15일 서울 동대문에서 만났다.
데뷔와 함께 각종 패션쇼 러브콜
"서울패션위크는 중견 디자이너가 작품을 선보이는 서울컬렉션과 신진 디자이너를 위한 제너레이션 넥스트 무대로 이뤄집니다. 제너레이션 넥스트 부문에는 브랜드 론칭 5년 미만의 디자이너가 참여할 수 있는 데 20여개의 브랜드가 선발돼 쇼를 하고 수주 상담의 부스도 마련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제주출신이 서울패션위크 무대에 선 것은 처음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여느 컬렉션에 비해 독특하고 색채가 뚜렷하다는 평가를 받았고, 특히 패션디자이너 분야에서 제주출신 디자이너에게 처음으로 주목하는 계기가 된 것 같아 뿌듯했습니다."
제주 옥빛 바다를 떠올리게 하는 그의 작품들.
2014년 패션 브랜드 '페일 터콰이즈' 를 런칭한 그는 지난해 코엑스 아쿠아리움 컬쳐 크리에이터로 선정됐고, 올해 서울패션위크에 진출하며 패션계에 무서운 신인으로 등장했다. 이 무대를 계기로 각국의 예술가와 신진 디자이너를 후원하는 파보텔(FAVOTELL) 기업의 런던 초청 패션 전시회와 상하이 초청 패션 전시회에 한국 디자이너로서는 최초로 초대됐으며 코엑스에서 열린 신한류 컨텐츠 패션 브랜드 쇼, 그리고 국내 대표급 디자이너들이 함께 한 서울스토리 패션쇼에 초청되는 등 바쁜 한 해를 보냈다. 최근에는 섬유패션 우수 기업인 충남섬유와 협업 컬렉션을 열기도 했다.
데뷔와 함께 각종 패션쇼의 러브콜을 받는 일은 신진 디자이너로서는 이례적인 일이다.
"제 디자인에 대해서는 신선한 시도라는 좋은 평가가 있는 반면, 과연 잘 팔릴 수 있겠는가라는 회의적 평가도 있는 등 호불호가 갈리는 편입니다(웃음). 그런데 현재 국내 패션업계는 대량 생산 브랜드(SPA) 브랜드의 점령과 도매시장의 소매화로, 독립 디자이너들이 자신의 창의성을 과감히 발휘하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따라서 외국 바이어들이 한국에 와도 살 만한 옷이 없다고 외면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때 저의 다양한 시도들이 패션 전문가들 사이에서 좋은 평가를 받게 되는 것 같습니다."
실제 그를 런던과 상하이 쇼에 초청한 파보텔 기업 측은 서울패션위크에서의 컬렉션에 대해 '어메이징(amazing) 하다'는 찬사를 내놓기도 했다. 외국 패션업계가 한국 디자이너를 다시 보게 되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최근 섬유패션 우수 기업인 충남섬유와 함께한 컬렉션의 경우 패션업계에는 섬유업계와 패션업계 협업의 모범적인 사례로 평가하고 있다.
"한국의 원단은 해외에 뒤쳐지지 않을 정도로 훌륭한 퀄리티를 자랑합니다. 그런데 그 원자재를 고급 상품으로 만들어줄 모델리스트(디자이너)가 원단기업 내에 부족합니다. 그래서 좋은 원단을 비싼 가격에 내놓아도 바이어들은 가격을 낮추려고 해 원단업계가 힘이 빠지곤 하지요. 저와 같은 디자이너들이 이 원단을 가지고 최고급 컬렉션으로 풀어내면 그것의 가치를 높이기 때문에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게 됩니다."
제주 자연·가치, 디자인에 반영
그는 작품의 모티브를 제주의 자연과 제주의 가치에서 찾음으로써 패션계에서 제주를 알리는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자신의 브랜드 '페일 터콰이즈'는 옅은 옥색이라는 뜻으로 제주 바다의 색깔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그의 컬렉션에서는 제주도의 옥빛 바다를 떠올리게 하는 컬러나 거북이, 암모나이트 등 해양 생물의 표피를 그래픽으로 사실감 있게 나염한 의류·잡화들이 등장한다. 제주 해녀에 대한 이미지를 디자인에 녹여내기도 했다.
"사실 제가 제주도 출신이어서 디자이너로서는 굉장한 이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제주의 옥색 바다를 보면서 자랐는데 옥색은 '초록이다', '파랑이다'라고 정의할 수 없는 오묘하고 몽환적인 컬러이지요. 제가 독특한 컬러 표현과 창의적인 디자인을 할 수 있는 기반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의 패션 컨셉은 고가의 옷이지만 환경적인 가치 또한 고려하는 '에코 럭셔리(Eco Luxury)'를 표방한다. 요즘 패션업계도 환경을 생각하는 '지속가능한 옷'에 대한 관심이 높다. 사람들이 치열하고 삭막한 삶을 살다가도 제주에 와서 힐링을 얻어 가는 것처럼 자신의 옷도 그런 느낌을 주길 바란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
"저는 제주의 드넓은 곶자왈이나 광활한 바다에서 '럭셔리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런 장엄한 자연으로부터 진정한 고급스러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지요. 저는 그런 제주도를 닮은 패션 컬렉션을 하고 싶습니다."
그는 제주에서 나고 자란 제주 토박이로 10대 때부터 디자이너라는 꿈을 키웠다. 첫 시작은 십자수였는데 외동아들의 취미에 대해 부모님의 걱정도 없지 않았다고 한다. 중학교 때는 감물 염색에 관심을 갖게 돼 감물 염색가를 직접 찾아가 2년 넘게 염색을 배우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그는 천에 색을 내는 나염과 무늬를 새기는 프린트 기법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그는 패션쇼에서 무대 디자인, 음악, 소품 등 연출도 도맡아 하고 있다. 패션쇼를 연출하는 총감독으로서의 역량도 패션업계에서는 주목하고 있다.
"해외컬렉션을 비롯한 패션쇼와 연극 등을 즐겨봅니다. 그러한 무대를 보면서 연출적인 것을 마치 스펀지처럼 흡수했던 것 같습니다. 옷을 만들 때부터 머리 속에는 무대 그림이 그려지지요. 이 옷은 몇 번째 모델이 입고 나와야 하고, 거기에 맞는 신발, 가방, 가발 등 모든 걸 총체적으로 구성합니다."
패션쇼는 모델 개런티, 무대 설치 등에 수 천 만원이 들어가는 대규모 작업이다. 다행히 그는 지금껏 큰 규모의 패션쇼에 초청되면서 대부분의 자금을 후원 받아왔다. 신인 디자이너로서는 갖기 힘든 기회다. 그 역시 앞으로 패션쇼를 열기 위해서는 투자자 확보가 절실하다. 한류 바람을 타고 국내 디자이너들이 세계 진출이 어느 때보다 용이한 시기란 점에서 패션업계 신인들을 위한 적극적인 투자가 아쉽다고 그는 말했다.
"신인 디자이너는 경제적으로 매시즌 패션쇼를 할 여건이 되지 않습니다. 투자를 받을 수 있다면 세계적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다재다능한 신인 디자이너가 많은데 경제적 뒷받침이 안 돼 성장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 정말 아쉽습니다."
"한국 대표 디자이너 되는게 꿈"
그는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경제적 어려움을 스스로 극복해 온 악바리이기도 하다. 대학을 다닐 때 집안 형편이 어려워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를 보탰다. 저녁 9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아르바이트를 한 뒤 학교 수업을 듣고 오후 4시부터 쪽잠을 잔 뒤 다시 일터로 나가는 생활을 보냈다. 지금도 그는 새벽 6시에 일어나는 걸 철칙으로 삼고 있다.
"서울패션위크에서 주목받은 뒤 최근 유명 여가수가 컴백 앨범에 제 의상을 착용했습니다. 디자이너로서 정말 기쁜 일이었지요. 지금은 주목받는 신인 디자이너지만 앞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습니다. 꿈이 이뤄지면 제주 출신 디자이너를 지원해주는 재단도 만들고 싶습니다. 지켜봐 주십시오."
[박린준 대표는…]
제주시 출생으로 노형초등학교와 한라중학교를 졸업한 뒤 고등학교 때 부산으로 이주했다. 서울직업전문학교를 졸업, 2015년 패션 브랜드 '페일터콰이즈'를 런칭했다. 2015년 코엑스 아쿠아리움 컬쳐 크리에이터로 선정됐고, 2016년 F/W 헤라서울패션위크 제너레이션 넥스트 서울, 2016 FAVOTELL London Exhibition Show, 2016 FAVOTELL Shanghai Exhibition Show, 2016 제2회 서울 스토리 패션쇼에 참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