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칼럼] 막아도 막은 게 아닌 김석범의 입국

[한라칼럼] 막아도 막은 게 아닌 김석범의 입국
  • 입력 : 2015. 12.08(화) 00:00
  • 편집부 기자 seawon@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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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저녁, 특이한 출판기념회가 제주시 삼도동 북카페에서 열렸다. 작가가 없는 출판기념회였던 것인데 나는 그런 이상한 출판기념회에 근래에만 두 번 참석했다. 10월 16일 서울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에도 그 작가는 없었다. 자신의 책 출판기념회에 함께하지 못한 이는 바로 재일작가 김석범이다. 정부가 그의 한국 입국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서울에서도 번역자인 김환기·김학동은 있었지만 원작자 김석범은 없었고, 제주에서도 김석희 번역가는 있었지만 역시 김석범은 없었다.

김석범은 4·3 진상규명운동과 평화·인권운동을 펼쳐온 상징적 인물로 평가되어 지난 4월에 첫 제주4·3평화상을 받은 주인공이다. 70년 가까이 4·3의 아픔을 보듬고 살아온 제주도민들이 그에게 그런 영예를 부여했다고 할 수 있다. 마침 그의 대표작인 『화산도』와 『까마귀의 죽음』이 완역되거나 재출간되면서 작가 초청 행사가 마련됐으나, 정부가 그의 입국을 막은 것이다.

1988년부터 14차례 드나들었던 모국에, 그것도 영광스러운 4·3평화상을 받은 다음에 입국하지 못하는 90 노작가의 심경은 어땠을까? 그는 도쿄 '4·3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조동현 대표를 통해 메시지를 전해왔다. "여러분과 자리를 함께 하면서 말씀드리지 못하는 것이 유감스럽고 죄송합니다"로 시작되는 그의 목소리를 옮겨본다.

"지난 4월 1일 제주4·3평화상 시상식에서 한 나의 수상연설문에 대한 우익세력, 일부 미디어의 4·3 흔들기, 심지어는 정부가 거기에 가담하는 추태를 보인 것이 더욱 유감스럽습니다. (중략) 4·3 흔들기는 4·3을 부정하고, 반세기만에 겨우 얼어붙은 땅 속에서부터 햇빛 아래로 부활한 4·3의 기억과 역사를 다시 없애려는 용서할 수 없는 움직임입니다.

젊은이들은 과거를 알아야 합니다. 어른들은 과거를 모르는 후대들에게 과거를 알리고 상기시켜야 합니다. 어떻게 상기시킬 것인가. 우선은 부활한 기억을 다시 망각 속으로, 암흑의 땅 속으로 떠밀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산 자를 다시 죽은 자로 몰아넣게 됩니다. 4·3 흔들기 세력은 다시 역사를 왜곡하고 부활한 기억을 말살하려고 기회를 엿보고 있습니다. 최후 발악입니다. (중략) 그들의 최후 발악인 4·3 흔들기를 저 낭떠러지에 집어던져야 합니다."

김석범은 끝으로 소감이자 소망을 『까마귀의 죽음』 재발간에 즈음하여 쓴 저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갈음하였다. 그가 저자의 말에서 밝힌 바는 '4·3 해방'의 길이다. 그 길의 하나는 "진상조사보고서에서 국가범죄로 규정하고 있는 학살 책임자에 대한 조치"이고, 또 하나는 "평화공원에 누워 있는 백비(白碑)에 떳떳하게 정명(正名)을 해서 일으켜 세우는 일"이다. 그것을 '역사 바로 세우기'요 '역사적 과업'으로 생각한다고 그는 말했다.

그날 출판기념회 뒤풀이에서 우리는 작가의 육성을 만났다. 그는 여전히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우리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의 몸은 도쿄에 있었지만, 그의 마음은 제주에서 우리와 함께 어울리고 있었다. 우리는 그와 술잔을 나누고 있었다.

정부가 입국을 막는다고 해서 작가의 정신마저 막을 수 있는가. 눈에 보이는 것을 좀 막았다고 그게 얼마나 막히겠는가. 역사의 물줄기를 잠시 멈춰 세웠다고 기고만장하는 이들이여, 그 물줄기를 결코 거스를 수 없음을 정녕 모르는가. <김동윤 제주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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