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큰 제주, 희망은 사람이다]김승익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

[더 큰 제주, 희망은 사람이다]김승익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
"관람객과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 생각만 해도 보람된 일"
  • 입력 : 2016. 01.13(수) 00:00
  • 부미현 기자 bu8385@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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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익 학예연구사는 2011년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로 임용된 이후 '미국미술 300년'(2013), '근대 도시 파리의 삶과 예술, 오르세미술관전'(2014), '폴란드, 천년의 예술'(2015) 전시를 기획했다. 부미현기자

소장품 36만여점, 연간 관람객 300만여명. 국립중앙박물관을 설명하는 수치들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소장품 대부분이 국보급 유물로 대한민국의 보고(寶庫 )로 불린다.

1909년 창경궁 제실박물관이 그 시초인 국립중앙박물관은 1945년 조선총독부 박물관을 인수해 국립박물관으로 개관했고 1972년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정식 명칭을 변경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2005년 10월 28일 서울의 중심 용산에 새로 둥지를 틀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문화강국을 지향해 온 정부의 지원과 함께 소속 학예연구직들의 노력으로 세계적 박물관이라는 지금의 위상을 갖추게 됐다. 특히 해방 이후 국립중앙박물관을 거친 많은 학예연구직들은 한국 문화의 가치를 정립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학예연구직은 역사적 유물이나 예술 작품이 지닌 가치를 연구하면서 소장품 관리와 보존, 전시, 교육업무를 수행하는 박물관의 핵심 인력이다.

국립중앙박물관과 12개 소속박물관의 학예연구직 160여명 가운데 6명의 제주출신이 활약 중이다. 문화의 변방으로 일컬어지는 제주 출신들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활약하고 있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이다. 이들 가운데 가장 막내인 5년차 학예연구사로서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시업무를 담당하는 김승익 학예연구사(39)를 지난 8일 만났다. 주로 고고학이나 전통미술, 역사학을 전공한 학예연구사가 대부분인 가운데, 처음으로 채용된 한국근대미술 전공자로 국립중앙박물관의 지평을 넓히는데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볼 때 제일 가깝게 살펴봐야 할 것이 근대라는 시기이고, 19세기 말 이후 서양의 문화가 들어와서 동서양이 만나는 시작점도 이 시기여서 근대미술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해외문화재를 국내에 소개하는 일을 담당하고 있는데요, 각 나라의 대표적 미술관이나 박물관과 교류전시를 할 때는 국가대표가 된 마음가짐으로 일합니다. 오랜 협의 끝에 귀중한 작품들이 국내에서 관객들에게 선보일 때 너무도 뿌듯함을 느낍니다"

김 연구사는 2011년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로 임용된 이후 '미국미술 300년'(2013), '근대 도시 파리의 삶과 예술, 오르세미술관전'(2014), '폴란드, 천년의 예술'(2015) 전시를 기획했다. 모두 해당 나라의 대표적 박물관 또는 미술관과의 긴밀한 협업을 통해 진행된 프로젝트다. 전시는 보통 2년여를 준비하는데 작품 선정, 전시 구성, 전시 도록 제작, 전시품 운송, 설치, 개막식 등이 모두 담당이었던 김 연구사의 몫이었다. 국립중앙박물관 임용 이전 2008년부터 2011년까지 서울대학교박물관에서 학예연구사로 활동한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

"제 전공 연구에만 함몰되지 않고 여러 가지 경험을 했던 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 한국근대미술이 저의 전공 분야이지만, 대학박물관에서 전통미술부나, 인류민속부에서 일을 하면서, 조선시대 서화나 민속학 관련 전시를 하기도 했고, 학술단체 활동을 하면서 연구자간 인맥도 쌓고 단체 운영과 관련된 다양한 일을 배웠습니다. 여러 국책 연구 프로젝트에도 참여해서 국가기관과 협업 했던 일도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가 되기 위해 여전히 많은 공립사립박물관이나 미술관의 학예연구사들이 도전한다. 학예연구사는 기본적으로 역사 유물이나 예술 작품에 대해서 가장 알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학예연구사가 석사학위를 받고 학예연구사를 시작한다. 요즘은 박사학위를 받은 연구사도 많은데 김 연구사 또한 연세대학교에서 학부 과정을 밟고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미술사학(근대미술사) 석·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해당 분야에 대한 지식과 함께 중요한 것이 실무경험이다. 그래서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작은 업무라도 실무 경력을 쌓아나가는 것도 필수적이다. 김 연구사가 갖춘 실무 경험들도 지금의 자리에 있게 한 밑거름이 됐다.

국립중앙박물관서 해외 문화재 기획 담당

전시 관련 해당 나라 박물관 대표와 협업

"오랜 협의 끝 귀중한 작품 전시 기획

해외교류전 국가대표의 마음가짐으로"



타 도시에 비해 문화 인프라가 상대적으로 빈약한 제주에서 나고 자란 그가 학예연구사가 된 것은 그 자신 또한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예술 분야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는데 우연히 미술평론집을 읽다가 제주출신 (강요배) 화백의 '마파람'이라는 작품을 접했을 때 자신의 운명이 결정된 것 같다고 김 연구사는 회고했다.

"그림은 분명 서정적인 풍경화였지만 제 눈에 보였던 것은 제주 사람의 삶을 담은 한편의 휴먼다큐멘터리였습니다. 이제 막 남쪽에서 거센바람이 불기 시작해 돌담위의 풀들이 살랑살랑 흔들리고 하늘이 어둑해지는 그 순간을 표현한 그림인데 그 때 받은 전율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당시 전 '이게 예술의 힘인가?'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림을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그림을 '읽고 싶다'는 생각은 자연스럽게 미술사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고등학교 3년 동안 줄곧 미술사학과를 지망했다. 비록 학부에서는 사학을 전공했으나 결국 대학원에 진학해 미술사학을 공부하게 되었다. 집안에서도 막내인 그에게 다른 진로를 권유하지 않고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을 적극 지지해줬다. 남과 다른 길을 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던 것이다. 학예연구사라는 직업을 목표로 한 것은 아니었지만 학부와 대학원에서 사학과 미술사를 공부하면서 자연스럽게 박물관과 미술관에 관심을 갖게 됐고 혼자만의 만족만을 위하는 게 아니라 대중과 교감할 수 있는 학예연구사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

그는 박물관을 엄숙한 기관이 아닌 일종의 놀이터가 되길 바란다. 편하게 유물 하나를 하루종일 봐도 되고. 가족끼리, 또는 혼자, 시간될 때 자주 와서 보고 느끼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김 연구사는 말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언제든지 찾을 수 있는 박물관이 그가 추구하는 바다.

"박물관을 가는 것은 삶이 풍요로워지는 것입니다. 문화생활이라는 것이 값비싼 공연을 보면서 여가시간을 보내는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가족들끼리 모여앉은 밥상에서 우리가 왜 이렇게 젓가락을 들고 밥을 먹는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이 진정한 문화생활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의 소소한 삶 하나하나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보는 것, 박물관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

고등학교 이후 줄곧 서울생활을 해오고 있지만 그는 힘이 들 때면 척박한 땅에서 고난의 역사를 살아온 제주인들의 삶을 떠올리며 힘을 얻는다고 한다. 그리고 종종 제주 출신 김광협 시인의 유명한 시 '살암시민 살아진다'를 떠올리면서 삶에 대한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에너지를 얻는다고 김 연구사는 말했다.

김 연구사는 한국인들이 사랑하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를 통해 관객과 만날 수 있는 지금은 더할나위 없이 행복하다. 아직 박물관에서 배워야 할 것이 많고 더 느끼고 경험해야 될 일이 많다는 그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우리 국민들에겐 교과서에서만 보던 한국의 대표적인 문화재들을 언제든 볼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되는 곳이죠. 저는 관객들과 함께 하는 순간이 제일 즐겁습니다. 박물관은 관객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연구하고 전시하면서 관객과 만나는 것은 제게는 항상 있는 일상이지만, 박물관을 찾은 관객들에게는 그 시간이 매우 특별하고 의미있을 것입니다. 그 순간에 제가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은 생각만 해도 보람된 일입니다."



■ 김승익 학예연구사는 누구?


김승익 학예연구사는 제주시 출신으로 제주남초등학교와 제주동중학교, 제주제일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연세대학교 인문학부(사학전공)를 졸업했고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미술사학(근대미술사) 석사, 동 대학에서 미술사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08년부터 2011년까지 서울대학교박물관에서 학예연구사로 재직했으며 2011년부터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로 임용돼 근무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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