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흘리에서 와산리로 내려가는 도로에서 멀리 알바메기오름이 보이는 와산리 설경(위), 마을에서 번영로로 올라가는 길에서 내려다본 와산리(아래).
설촌 역사 350여년… 당시 마을이름 와호산(臥虎山), 주민 호랑이처럼 용력과시- '호'뺀 '와산'으로 사용 주민들 "마을복지회관 노후화로 문화 복지 어려워 개발위원회 노력하고 있지만 행정 관심 절실"
터를 잘 잡은 마을이다. 대흘리에서 동쪽으로 내리막길을 따라 가면서 바라보면 안온하게 느껴지는 기품 넘치는 지역이 있다. 번영로에서 세미오름을 바라보며 내려가다 보면 차분하면서도 뭔가 끌어당기는 힘을 가진 마을을 만나게 된다. 마을 중심에 당오름이 있어서 세샘이라는 물이 솟아나 마을 형성의 근원이 되었다고 한다. 와산 본동을 비롯하여 종남동, 웃동네, 제비동, 섯가름, 무근가름, 동가름으로 동네 이름이 정해져 있다.
양효근(88) 어르신이 전하는 설촌의 역사는 350 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비문을 판단 근거로 했을 경우에 그렇다는 것이다. 오름에 하루 세 번 오르락 내리락 하면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속설을 소개했다. 마소를 풀어 놓고서 하루 세 번 이상 관리하러 다니면 부유함은 당연하게 따라온다는 옛 축산문화가 담겨져 있는 귀감. 원래 교래리 방면에서 살던 사람들이 차츰 아래로 이동해서 촌락을 번창시켰다고 한다. 축산 중심 마을이었다는 의미가 되고. "당시에 마을 이름이 와호산(臥虎山)이었습니다. 당오름의 형상이 누가 봐도 호랑이가 누워있는 모습이어서 그렇게 불렀지요. 제가 어린 시절 들어온 말로는 호랑이가 들어간 이름으로 마을 명칭을 쓰니 사람들이 거칠고 사나워서 용력을 과시하는 자가 많이 나타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를 걱정하던 마을 주민들이 호랑이를 뜻하는 글자를 빼버리면 그런 사람들이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여 그냥 와산이라 부르게 된 것입니다."
둥근 바위에 눈이 쌓여 특이한 마을 풍경을 연출.
무속의 영향력이 강했던 마을이기도 하다. 향토 유산이라고 할 수 있는 와산리 본향당(불도당)이 있다. 내력담이 스토리텔링 자원이다. 하늘에서 내려온 별공주 따님이 와산리에 불도삼승또가 되어서 임신과 양육을 관장하게 되었다. 옥황상제 셋째딸이 당오름 봉우리에 좌정하게 되자 자식 없는 여자가 "이 당이 영급이 있거든 포태를 시켜주십써!"하였다. 그 소원이 이뤄져서 당에 제를 지내려 하였으나 만삭이 된 관계로 산 위에까지 오르지 못하여 다시 소원하기를 "영급이 있거든 당오름 아래 편안한 곳으로 내려와 좌정하시면 제를 지내겠습니다"하고 아뢰었더니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큰 바위가 아래로 굴러 와서 멈춰 섰다. 이런 전설이 있어서 지금도 아이 못 낳는 사람들이 찾아와 치성을 드리면 효험을 본다는 소문이 있다고 했다.
와산 사거리에서 번영로로 올라가다가 선인동을 가는 길은 참으로 편안안 느낌을 준다. 당오름의 영향이라고만 하기에는 특이한 지형적 온화함이 있다. 그래서일까 와산리에 외부인들이 들어와 집을 짓고 사는 경우가 많아졌다.
고두진 이장
고두진(60) 이장이 설명하는 와산리의 현실은 이렇다. "농로 포장 공사에 중점을 두고 성과를 내고 있지만 아직도 미진합니다.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동서로 지나가는 옛16번 국도의 교통량보다 함덕 등에서 번영로나 남조로 방향으로 올라가는 차량들이 두 배 이상 많아서 좁은 마을 안길은 교통사고 위험에 항시 노출되어 있습니다. 이런 불균형이 해소되기 위해서는 종남밭 지역, 옛날 원님 행차 하던 길이라는 구한질 지역이 확포장 되어야 합니다. 행정에서 적극적인 의지를 가지고 있어야 가능한 일임에도 더딘 모습에 답답합니다." 확장된 도로망이 동서로 크게 지나가고 있지만 남북으로 연결되는 도로는 마을 안길이 그 역할을 하는 특수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교통량 조사를 바탕으로 도로확장이 이뤄져야 함에도 이런 현상이 빚어지는 것을 마을 주민들은 납득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총 면적 894㏊ 규모의 마을이다. 주민 수는 417명이며 기후적 특성이 있다. 경사를 따라 내려가는 지형을 가졌기 때문에 넓은 경지 면적에도 불구하고 집중호우, 습도, 안개에 취약하여 다양한 특용작물 재배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지만 감귤, 참깨 재배로 소득은 비교적 높은 편이라고 한다.
서쪽에 대흘리, 동쪽에 선흘1리와 남쪽에 함덕리, 위로는 교래리라고 하는 발전적인 마을 사이에서 웅크리고 있기에는 억울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와산리의 꿈은 그냥 누워있을 수 없다.
김순임(50) 마을회 사무장이 꿈꾸는 와산리의 미래는 밝았다. "도농교류의 장을 열어 청년들이 다양한 힐링 산업을 중심으로 부가가치가 높은 농촌 일자리가 늘어날 것입니다. 최근 스위스 마을과 같은 전원형 마을들이 형성되고 있는 것을 보더라도 와산리가 가지고 있는 잠재력은 정주여건 개선을 바탕으로 마을 인구가 급증 할 것입니다."
청년시절 들었던 듬돌을 다시 들어보이겠다는 양근효(88)어르신.
마을 주민들은 복지에 관심이 많았다. 노인 인구가 비교적 많지 않지만, 외부에서 들어와 살고 있는 주민 수가 늘고 있다는 이야기다. 와산은 쉽게 큰 길로 나가서 제주시와 여타지역으로 갈 수 있는 여건이지만, 자연환경도 농업경관을 많은 부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서 전원생활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는 곳이기도 하다. 문제는 마을주민들이 발전 방향으로 잡고 있는 힐링마을의 모습을 외부적인 투자보다 주민 역량을 강화하여 이룩할 것인가 하는 것. 고민이 깊다. 마을 번창을 위해 속도를 내고 있는데 주민들이 뜻을 모아 공동체가 이룩해야 할 수익구조 마련이 쉽지가 않아서이다.
눈 내리는 마을 안길 올레.
발전 목표는 소박한 농촌 현실을 그대로 담고 있다. 청정 자연이 간직된 생태마을, 마을회관 신축사업, 마을회관 주변부지 매입사업 등이다. 마을 주민들이 간절한 소망이 있었다. 마을 발전 정도에 어울리는 마을복지회관이 필요함에도 지금의 마을회관은 노후되고 비좁아서 주민들의 문화, 복지 욕구를 충족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 개발위원회가 노력하고 있지만 행정적 관심이 집중되지 않는다면 뾰족한 방법이 없다. 와산리의 지리적 가치를 증폭시킬 행정 지원이 절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