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칼럼]지금은 문성담 기자와 김응천 교사가 없을까

[한라칼럼]지금은 문성담 기자와 김응천 교사가 없을까
  • 입력 : 2016. 03.01(화) 00:00
  • 편집부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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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신문기자 문성담이 갑자기 행방을 감췄다. 그의 아내는 이튿날 오후에야 남편이 다니는 신문사의 연락을 받았다. 편집국장 비서는 출장 중임을 전할 뿐, 무슨 일로 어디 갔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문 기자는 나흘 만에 귀가했다. 그는 자신이 출장 다녀온 얘긴 '절대 비밀'로 해달라고 했다. 부부간에 왜 그러냐는 아내의 대꾸에 그는 "제발, 그러면 그런가 보다 해요, 좀! 쥐약이라도 먹고 콱 죽고픈 맘이라구요!"라며 오열했다. 그는 잠들었다가 단말마 같은 비명을 질러대더니 토악질했다. 그의 몸을 씻던 아내는 깜짝 놀랐다. 남편의 등판과 어깻죽지 사이에 선홍빛 피멍이 문신처럼 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문 기자는 혼자 횡설수설하는가 하면, 근무를 제대로 못하더니 결국 사표 내고 말았다. 이불 속에서만 지내다가 오랜만에 아내와 외출했다가 갑자기 혼자 귀가해버리기도 했다. 그는 "나를 도살장 똥돼지 취급했던 바로 그 사람이 식당 입구에 숨어서 날 감시하고 있었다구요"라며 안절부절못했다. 충격적인 스트레스에서 비롯된 우울장애라는 판정을 받았다.

이 젊은 기자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 진상은 그가 얼마 후 잠자리에서 심장마비로 죽고나서야 알 수 있었다. 신문 1면의 다음과 같은 기사 때문이었다.

"朴正熙 大領은 維新 憲政의 生命力은 累卵의 國難에 대처하여 우리 힘으로 富强하고 건전한 福祉 國家 建設과 民族 文化의 滿開를 위한 民族中興의 基盤을 다지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大統領'에서 '統'을 빼뜨린 것이었다. '대통령'을 '대령'으로 만든 교정상 실수로 인해 그는 기관에 끌려가 3박4일 동안 '도살장 똥돼지 취급'을 받았다. 기관에서는 의도된 실수로 몰아세우며 배후 불순 세력을 밝히라고 했다. 문 기자는 "한 번만 용서해 주신다면 위대한 구국의 영도자이신 박정희 대통령 각하를 위해 살신성인하겠다"고 빌었다.

1972년 10월 하순, 전국 비상계엄령 선포와 야간통행금지, 대학 휴교령, 언론사 사전검열제 등 비상조치 특별선언이 있은 지 며칠 뒤의 일이었다. 길게 소개한 이 이야기는 고시홍 단편소설 <귀양풀이>의 내용으로, <물음표의 사슬>(삶창, 2015)에 실려 있다.

소설이지만 상당한 개연성을 지닌 이야기다. 실제로 신문 오탈자와 관련돼 자행된 폭력적 사건들이 간혹 발생했다고 한다. '大統領'을 '犬統領'으로 바꿔 난리 났었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재발방지를 위해 문선공들은 아예 '대통령'을 한 글자처럼 묶어놨다고 한다.

1950년대에도 제주도에서 그 비슷한 사건이 일어난 적이 있었다. <서귀필화사건에 면소 언도>란 제목의 <제주신보> 1953년 10월 30일자 기사에는 "8월 15일 서귀국민학교 교정에서 거행된 광복절 및 이 대통령 재취임 1주년 기념 서귀면민경축대회 석상에 현양된 서귀농고 플래카드에 '偉大한 令導者 李承萬 大統領의 뒤를 따르자'고 '晩'을 '萬'으로 '領'을 '令'으로 기재하여 국가보안법 위반죄로 기소된 서귀농고 교원 김응천" 관련 내용을 보도하고 있다. 현수막 한자를 잘못 썼다고 국가보안법 위반죄로 구속되어 재판까지 받았던 것이다.

이런 권력의 폭력은 1950년대, 1970년대에만 일어났던 '그때 그 시절' 이야기일 뿐일까? 김응천 교사, 문성담 기자 같은 억울한 민초들은 오늘날 우리 주변엔 과연 없을까? <김동윤 제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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