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칼럼]일 못하는 농부 이야기

[한라칼럼]일 못하는 농부 이야기
  • 입력 : 2016. 03.15(화) 00:00
  • 편집부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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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칩이 지났으니 개구리가 땅에서 나와 울어대며 짝을 찾는 조급하고 안쓰러운 소리를 내고, 하늘은 잔뜩 흐려서 아침부터 촉촉하고 따뜻한 가랑비가 대지를 적신다. 겨우내 농민들을 슬프게 만들던 비는 며칠 따뜻한 날씨로 이제 막 꽃을 피운 매화나무가지와 모진 추위와 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건재함을 과시하는 풀잎에 빗방울로 반짝거리고 있었다. 농부는 비를 빨아들인 흙냄새를 맡으며 붉은 싹을 올리기 시작한 작약을 보곤 긴 한숨을 내뱉고 허전함이 싱그러워야 할 넓은 밭은 더욱 침울한 미래로 보이기 시작했다.

농부의 사연은 이러했다. 2년 전 바로 오늘 트랙터로 일군 밭에 비료를 뿌리고 농산물원종장에서 분양받은 1년생 백하수오 모종을 심기 위해 관리기로 속살이 드러나도록 이랑을 높였다. 농부는 이랑에 새로운 생명을 잉태할 것이라는 꿈을 담았다. 이랑이 높았기 때문에 트랙터를 쓸 수가 없어서 인력을 빌어 잡초방지와 수분증발을 억제하기 위한 검은 멀칭비닐을 씌우고 백하수오 모종을 심었다.

그해 4월은 춥기도 했지만 바람도 몹시 사납게 불어 백하수오 심은 밭뿐 아니라 작약밭과 소엽밭의 비닐이 날려 난리도 아니었다. 어른으로서 미안하고 비통한 세월호 참사가 있던 날이 지나 하순이 되자 백수오와 작약이 싹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했으나 그들보다 훨씬 먼저 서양민들레와 솔잎미나리와 같은 잡초들이 올라왔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와 봄을 지나 여름으로 가는 안개와 점점 뜨거워지는 태양, 이러한 계절적 변화는 나의 바람과는 달리 잡초가 백하수오보다 훨씬 빨리 밭을 덮었다. 그들과의 공존이라는 말은 그저 단어에 지나지 않았다. 고랑에서, 백하수오를 심은 구멍에서, 바람에 날리거나 찢겨진 비닐 사이를 비집고 나오는 잡초는 쉬지 않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부직포를 깔고 핀으로 고정했다. 덩굴식물인 백하수오가 뻗어나갈 수 있도록 대나무를 쪼개서 박고 백수오가 타고 올라갈 수 있도록 유인줄을 메는 일, 다시 검질을 매는 일 등 모든 것이 돈이었다. 많은 자금을 들여 2년이 지나 지난 겨울에 중장비를 빌려 수확을 했으나 수중에 들어온 돈은 투자 대비 거의 건지지 못했으니 농부의 한숨에서 단내가 날만도 한 것이 아닌가.

온몸이 닳아 없어질 지경으로 열심히 뛰어다니는 수고에 비해 성과는 거의 없는 이상주의자의 현실이다. 이는 이 농부의 사례 뿐 아닐 것이다. 감귤농사를 짓는 농부건, 양배추나 요사이 돈이 된다는 다른 작물을 재배하는 농민이건 이러한 상황은 언제든지 닥칠 것이다. 농산물 가격이 오른다면 수입농산물을 풀 것이기에 점점 힘들어질 것이다. 무엇인가. 자동차와 스마트폰, 공산품을 생산하는 기업에는 돈이 넘쳐난다는데 정작 그것을 생산하는 노동자와 1차 산업에 종사하는 농민들은 어렵다. 이렇게 불만을 이야기하고 이에 대한 대책을 촉구하는 사람들을 좌파라고 몰아붙일 것이 아니라 정부나 지방정부 지도자들이 나서야 한다. 이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사람들의 생존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초보 농민입장에서만 본다면 이제 나이 60살, 남들은 인생을 즐겨야 할 나이에 '개고생'을 하며 농사를 지어 입에 풀칠이라도 할 수 있겠느냐는 핀잔도 듣는다. 그러나 흙에서 나오는 냄새가 좋다며 자신을 위로도 해보지만 남들은 땀에 젖은 몸에서 나는 고약한 냄새가 싫은 모양이다.

땅이 뜨거워지는 봄, 이제 올라오는 잡초가 두렵다. <송창우 약초농사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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