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렸을 때부터 프랑스 화가 밀레의 그림을 좋아했다. 어린 아기를 문턱에 앉히고 엄마가 아기에게 밥술을 떠넣어 주는데 두 언니가 앞에 앉아서 동생을 귀여운 표정으로 지켜보는 그림은 나의 어린 가슴에 행복의 이미지를 아로새겨 주었다. 어린아이가 팔 벌린 엄마를 향해서 아장아장 걸어가는 그림은 인생의 사랑과 평화를 그대로 표현한 그림 같았다.
미국 보스턴 미술관에서 밀레의 그림을 직접 눈앞에 보았을 때, 어린 시절의 아름다운 이미지가 가슴 속에 그대로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지금은 고인이 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철학자·교육자·수필가인 안병욱 교수의 수필 '행복의 메타포'에 나온 삽화(揷話)다. 이 대목은 필자의 소년시절 어머님 모습과 너무나 닮았다. 아기에게 밥을 먹여 주시던 일이며…, 필자가 4학년 때 가을 어느 날 아침 어머님께서 누님을 데리고 부엌용 땔나무 하러 가셨을 때 우는 아기(기어 다니는 어린 동생)를 밥도 먹여 주고 등에 업어 재우기도 하며 돌보던 중 해 질 무렵에 어머님과 누님이 오셨을 때의 표현키 어려웠던 기쁨이며…, 땔나무와 뒷정리를 끝낸 어머님께서 아기룰 향해 반갑게 두 팔을 벌리셨을 때 아기가 너무 좋아 소리를 내며 빠르게 기어가는 모습에 안도감과 행복감을 느꼈던 일… 등이 그리움으로 눈 앞을 스친다.
필자는 6남 3녀 중 셋째로서 동생이 많았다. 가정생활은 주로 아버님의 목수일 소득에 의존하는 빈곤한 생활이었다. 그래서 청소하기, 아기 돌보기 등 부모님 일손을 도와야 했다. 아기는 아랫니가 2개 정도 돋은 젖먹이였지만 이유식이 필요했다. 쌀이 있을 때는 쌀밥이나 흰죽을 먹였지만 쌀이 없을 때는 가족이 평소 먹는 보리밥을 어머님이 씹어서 먹이곤 하셨다. 보리쌀도 없을 때는 찐 고구마를 씹어서 먹이면서 배고픈 아기를 달래셨다. 그리고 아기가 먹다가 뱉으거나 흘린 음식은 숟가락으로 받아 먹곤 하셨다. 그런 모습에 일시적으로 불결한 표정을 짓는 손윗자녀인 우리들에게 "건강한 어미 입으로 씹어서 먹이는 것은 괜찮다. 너희들도 이렇게 자라서 건강한 청소년이 되었다…."라는 어머님 말씀에 감격했다. 이러한 어머님의 분신 같은 사랑은 곧, 태아가 모태에서부터 영양 공급을 받으며 발육하는 과정의 연장이라 할 수 있다. 아기가 한층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더욱 감동 깊은 점은 아기가 음식을 제대로 씹지 못하여 기도가 막힐 것을 염려해서 용량이 작은 '아기 숟가락'과, 그리고 아기가 함께 식사하는 다른 사람들처럼 먹을 수가 없어서 울거나 혼자 먹으려고 욕심을 내지 않고 천천히 안심해서 먹을 수 있게 해 주려고, 또 이유식으로 쌀밥 등을 먹이기 위해 '아기 밥그릇'을 따로 미리 마련한 점이다. 이러한 내리사랑과 행동으로 인식이 전환된 어버이는 위기발생 등 어떤 환경에서도 배고픈 아기를 생존시킬 수 있으며, 아기처럼 치아가 약한 연로하신 부모님을 모시는 경우에도 신선한 식재료로 깨끗이 씻고 조리해서 뼈나 가시가 없고 부드러운 부위로 살을 발라내어 드림으로써 이를 보는 자손들에게 보여지는 훌륭한 경로효친 교육이 된다.
이렇게 자라 장성한 자녀들 대부분은 어디를 가나 늘 부모님을 걱정하며 잘 모시려는 치사랑의 그리움을 낳는다. TV '동물의 왕국'의 어미새가 생각난다. 아기새에게 먹이를 줄 때는 어미새의 위 속에서 반 정도 소화시켜 먹이며 뱉거나 흘린 음식은 어미새가 다시 받아 먹는다. 그리고 먹이를 주고 나면 아기새의 분변을 입으로 물고 간다. 미물이지만 심금을 울린다…. <정한석 전 초등학교 교장·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