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칼럼]제주의 육·해상 '재앙의 조짐' 직시하자

[한라칼럼]제주의 육·해상 '재앙의 조짐' 직시하자
  • 입력 : 2016. 06.21(화) 00:00
  • 강시영 기자 sykang@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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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구상나무가 '구상나무'로서 처음 채집된 지 올해가 99년이 된다. 내년이면 100주년이다. 영국 태생의 식물 채집가이자 식물분류학자인 어네스트 헨리 윌슨은 1917년 10월 하순에서 11월 중순 제주도를 탐사하는데, 이 때 처음으로 구상나무를 만난다. 이후 1920년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이곳에 분포하고 있는 특산식물이라는 점을 밝혀 아비스 코리아나(Abies koreana E. H. Wilson)라는 학명으로 미국 하버드대학교 부설 아놀드식물원 연구보고 1호에 발표하면서 신종으로 기재됐다.

구상나무가 한라산에서 처음으로 채집된 것은 윌슨보다 10년이 앞선 1907년 프랑스 출신 사제인 포리 신부에 의해서였다. 1909년에는 왕벚나무의 최초 발견자 타케 신부에 의해서 구상나무가 채집된 기록이 전해진다. 하지만 이 두 신부가 채집할 당시에는 이 식물을 '분비나무'로 알고 채집했다. 식물학계에 따르면 어떤 식물을 새로운 종으로 이름을 붙일 때는 기준표본을 설정하게 되는데 윌슨은 자신이 1917년 10월 31일 한라산에서 채집한 표본을 기준표본으로 했다. 윌슨이 한국특산 구상나무의 신종 기준표본을 채집한 날은 공식적으로 1917년 10월 31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식물학사에 있어서 기념비적인 일이다. 국립산림과학원 김찬수 박사가 "10월31일을 '구상나무의 날'로 정하자"고 한 주장에는 이런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하고 있다.

살아서 백년을 살고 죽어서도 백년을 산다는 구상나무. 구상나무의 생태적 수명은 어느 정도나 될까. 학계의 보고에 따르면 약 120년쯤 된다. 고사목의 연령으로부터 평가한 추정치다. 한라산 구상나무의 평균 수명이 60∼70년으로 추정된다는 보고도 있다. 그러나 이같은 학계의 보고는 한라산 생태계가 안정적인 상태에 있을 때를 전제로 한다.

한라산 구상나무가 세상에 알려진지 100년이 흐른 지금, 이 나무는 멸종위기의 종으로 지구와의 이별을 준비중이다. 한라산 구상나무가 금세기 안에 멸종될 수 있다는 경고음은 2000년대 초부터 들려 왔다. 당시만 해도 반신반의했다. 최근 연구 결과 한라산 구상나무 중 고사목의 비율이 절반 가까이에 이르며, 이 중 2010년 이후에 20.7%가 새롭게 발생하면서 고사목 비율이 급증했다. 한라산 주목도 쇠퇴하고 있다.

재앙의 조짐은 한라산과 육상의 식물 생태계만이 아니다. 제주 연안도 비상이다. 제주 해수면의 상승폭은 전 지구 해수면 상승폭보다 약 3배 빠르게 상승하는 수준이다. 학계에서는 해수면 상승폭과 해일, 태풍의 내습조건 여러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2100년에는 제주시 150.3㎝, 서귀포시는 182.8㎝나 해수면이 올라갈 것이라는 충격적인 전망치를 내놓고 있다. 이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면 2100년에는 마라도 면적의 약 17.8배가 바닷물에 잠기게 된다. 이미 도내 18개 지방어항 가운데 절반이 넘는 10개항이 침수피해를 입고 있는 등 피해가 도처에서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해수욕장 침식으로 모래가 유실되고 해안사구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수만~수십만 년을 견뎌 온 해안의 절경들은 불과 십수년 사이에 파괴되어 제주의 경관 목록에서 자취를 감추고 있다.

제주 육상과 연안의 재앙의 조짐들은 갈수록 울림이 커지고 있다. 불편한 진실은 '강 건너 불'이 아닌 '발 등의 불'로 이미 성큼 다가온 것이다. 우려스러운 것은 제대로 직시하고 대비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기후변화를 바라보는 시각의 전환이 절실하다. <강시영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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