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함성을 생각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대한민국"을 외치며 전국을 붉은 물결로 휘덮었던 2002년 월드컵일 것이다. 하지만 2002년보다 전에 대한민국의 6월을 뜨겁게 했던 함성이 있었다.
1987년, 민주주의 쟁취를 위한 '6월 항쟁'의 그 뜨거운 함성이다. 1980년대 중반 5·18 민주화운동의 정신을 이은 학생과 시민들의 반독재 투쟁은 치열해지고 있었다. 전두환 정권은 간첩사건과 용공 사건을 조작해 이를 탄압했고 그 과정에서 고문이 자행되었다. 잔인한 과정 속에서 서울대생 박종철이 사망하게 되었다. 경찰은 "탁치니 억하고 쓰러졌다"고 발표했고, 국민들은 믿지 않았다. 이후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을 통해 경찰의 사건 조작과 은폐 사실이 알려지자 국민들의 분노는 폭발하였고 시위는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전 대통령은 대통령 직선제 요구를 거부하고, 4·13 호헌조치를 발표했다.
6월 10일, 축하와 감격의 꽃다발과 함께 분노와 규탄의 함성이 공존하던 날이었다. 차기 대통령 후보로 노태우 후보가 선출되던 날, 전국 22개 시에서 6월 민주 항쟁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시위 도중 최루탄을 맞고 혼수상태에 빠진 연세대 이한열 학생의 소식은 시위 확산의 기폭제가 되었다. "독재타도, 호헌철폐, 민주쟁취"를 외치며 서울의 시위대는 늦은 밤까지 명동성당에서 농성을 벌였다. 시민들은 자발적인 모금과 격려의 글로 지지를 보냈으며 넥타이 부대라 불리는 20~30대 사무직 시민들의 지지와 동참으로 6월 민주항쟁은 힘을 얻어갔다.
식지 않는 시민들의 투쟁 끝에 대한민국 역사상 아홉 번째 개헌이 이루어졌다. 6·29 민주화 선언을 통하여 시민들의 요구를 수용하였고, 이후 5년 단임의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하는 9차 헌법 개정을 통하여 제6공화국이 탄생하였다.
6월 민주항쟁은 남녀노소, 지역과 계층을 가리지 않고 온 국민이 민주주의라는 목표 아래 하나가 되어 수십 년에 걸쳐 국민의 목소리를 무시하던 군사독재체제를 청산하고 국민의 손으로 정부를 세울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우리의 자랑스러운 역사이다.
유신헌법 제 1조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국민은 그 대표자나 국민투표에 의하여 주권을 행사한다.'를 최초의, 그리고 현재의 대한민국헌법 제 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로 돌려놓기 위해 투쟁했던 뜨거운 함성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는 민주주의 안에서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6월의 새벽을 연 이들은 달도 없는 밤에 빛나는 깜깜한 별과 같았다. 춥고 깊었던 밤이지만 어둠 속에서 더 빛나는 별처럼 그들의 투쟁은 빛났고 새로운 새벽을 열었다. 우리는 평소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행동을 거창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민주주의는 우리 삶의 배경 그 자체이다. 음식메뉴를 결정하는 사소한 대화에서부터 대표를 선출하는 투표까지 민주주의 절차를 따른다.
우리의 삶이 곧 '민주주의'인 것이다. 현재 살고 있는 삶이 당연하다고 느끼며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우리는 다시 춥고 깊었던 밤으로 돌아갈지 모른다.
많은 소식들이 쏟아지는 지금,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우리의 삶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 것일까. 수많은 피와 눈물로 얻을 수 있었던 지금의 삶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우리의 삶을 발전시키는 것은 특정 운동가의 몫이 아니다. 평범한 삶 속에서 이뤄나가야 할 우리들의 몫이다. <강유나 제주대학교 언론홍보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