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 잊은 여름꽃과 시기 이른 산목련 열매하늘하늘 억새·추석 차례상 오르는 양하도말찻오름·붉은오름서 바람과 함께 풍광 즐겨
지나는 여름을 붙잡고 싶었을까. 아니면 곧 찾아올 가을이 부끄러웠을까. 열 번째 에코투어에서 탐방한 숲길에는 지나간 여름의 흔적과 다가올 가을이 함께 있었다. 계절을 잊은 여름꽃과 벌초가 끝난 묘, 속속 가을 옷을 입기 시작한 잎사귀와 땅 위로 살짝 모습을 보인 양하들이 참가자들을 맞이했다.
지난 10일 진행된 제10차 제주섬 글로벌 에코투어는 사려니숲길 북쪽 입구를 시작으로 천미천~양하밭~표고밭길~삼다수숲길~말찻오름~숲길~붉은오름~사려니숲길로 이어진 코스였다.
에코투어 참가자들을 태운 버스가 도착한 곳은 사려니숲길 북쪽 입구에서 동쪽으로 500m 떨어진 숲 입구였다. 각자가 짐을 챙기자 본격적으로 탐방이 시작됐다. 숲길 속으로 5분 정도 걸었을까. 가을을 알리는 억새가 눈에 들어왔다. 길 주변에는 가을철 맛볼 수 있는 양하들을 다듬은 흔적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양하꽃.
일행은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는 숲을 한시라도 빨리 보고 싶어 발걸음을 재촉했다. 배롱나무 주변에는 후손들이 정성껏 다듬은 묘들이 눈에 띄었다. 다가오는 추석 전 조상묘의 풀들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정성스레 담아온 음식과 술을 올리는 훈훈한 모습이 그려졌다. 특히 동자석과 문인석 등이 잘 보존돼 있어 참가자들의 눈길을 붙잡았다.
10차 에코투어 참가자들은 여름날 흔적과 가을빛이 공존하는 숲길에서 추억을 만들었다. 억새가 피어난 길을 걷고 있는 탐방객들(사진 위), 드넓게 펼쳐진 양하밭에서 발길을 멈췄다(사진 아래). 강희만기자.
이어 우거진 숲에 들어서자 참가자들은 흙과 낙엽, 나뭇가지를 밟으며 탐방을 이어갔다. 숲 곳곳에서 뱀톱, 산딸나무 등이 탐방객을 반겼다. 곧 천미천이 모습을 보였다.
천미천을 지나 다시 숲이 우거진 길로 들어섰다. 선두에서 길을 안내하던 이권성 제주트레킹연구소장이 발길을 멈췄다. 드넓게 양하밭이 펼쳐지자 탐방객들에게 이를 소개해주기 위해서다. 제주에서 '양애끈'이나 '양애갓'이라고 불리는 양하는 가을철 핀 꽃의 어린순으로 추석 차례상에도 올리는 등 진귀한 식물로 꼽힌다.
삼다수길 천미천 상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사진위) 누린내풀(사진 아래 왼쪽), 뱀톱(사진 아래 오른쪽).
양하밭을 조금 벗어나자 계절을 잊은채 예쁘게 꽃망울을 터트린 누린내풀이 보였다. 7월과 8월사이 꽃을 피우는 누린내풀은 예쁜 자태와 달리 손으로 만지면 누린내가 나 이름이 붙여진 풀이다. 탐방객들은 손으로 만져보거나 사진을 찍으려고 주변으로 둥그렇게 모여들었다. 표고밭길을 향해 조금 더 걸어가니 산목련 열매가 셀 수 없을만큼 떨어진 곳도 나왔다. 하지만 주변을 돌아봐도 산목련을 찾을 수 없어 이리저리 살펴보니 주변 나무보다 산목련이 훨씬 높게 자라있었다. 9월초에 꽃을 피우는 방울꽃도 길가에서 탐방객들을 맞이했다.
말찻오름 등반로.
예전 말을 방목하며 항상 말을 볼 수 있다며 이름 붙여진 말찻오름에서 점심식사를 한 뒤 붉은오름 해맞이숲을 통해 붉은오름으로 향했다. 일행과 담소를 나누고 반대편에서 걸어오던 붉은오름 자연휴양림 탐방객들과 인사도 나누며 얼마나 걸었을까. 붉은오름 탐방로 입구가 금세 눈에 들어왔다. 다소 가파른 탐방로를 부지런히 오르자 한라산을 비롯해 주변 오름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가쁜 숨을 내쉬며 올라온 붉은오름 전망대에선 흐르는 땀방울을 식혀줄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이번에 처음 참가한 중학교 동창 현은영·고영미(54)씨는 에코투어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현씨는 "한라일보 지면을 통해 전부터 에코투어를 알았지만 주변에 같이올 사람이 없어 참가를 망설이다 친구와 시간이 맞아 이번에 처음 찾았다"며 "산행 초보이지만 코스 난이도가 크게 어렵지 않아 좋았고 함께 대화하면서 걸으니 더 많은 것들을 알게돼 자주 참가하고 싶다"고 말했다.
고씨는 "지금은 인천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 전에 30여년간 제주도에 살았는데 이처럼 제주의 속모습을 보진 못했다"며 "설명을 들으며 제주의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았고 안전요원이 있어 초행길에 가장 우려했던 안전문제가 해결돼 걱정도 덜 수 있어 탐방 내내 재밌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