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기(Astragalus mongholicus, 몽골)
‘황기’ 종류·학명부터 논란 많아제주황기 격리분포종 양상 보여
아르바이헤르에서 물자를 보충한 탐사대는 쭉 뻗은 아스콘 포장도로를 내달렸다. 시야는 가릴 것 없이 탁 트였고, 태양은 구름한 점 없는 창공에서 빛나고 있었다. 몽골의 초원은 넓다. 지구의 표면이란 이런 것인가 하는 장대함을 느끼며 가던 중이었다. 노란 꽃 무더기가 눈에 들어 왔다. 황기의 일종이다.
황기는 우리나라에서 많이 소비하는 한약재의 하나다. 특히 여름철에 즐겨먹는 삼계탕에는 이 약재가 필수적이다. 콩과에 속하는 다년초다. 지하부가 마치 인삼처럼 생겼는데 1m 정도로 아주 길게 생장한다. 이걸 말린 게 황기다. 그런데 이 식물의 정체가 아주 복잡하다.
우선 궁금한 것이 이 식물의 학명이다. 대부분의 자료에 아스트라갈루스 멤브라나케우스로 돼 있다. '한국 속 식물지'에도 같은 학명으로 실려 있다. 그런데 국립수목원 국가생물종지식정보의 내용은 이와 좀 다르다. 여기에는 아스트라갈루스 몽골리쿠스로 되어 있는 것이다. 학명은 그 식물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일차적인 정보이므로 아주 중요하다. 우리나라 최고 권위의 출판물과 국가기관이 서로 다르게 종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다.
황기 무리는 전 세계적으로 약 3000 종이 알려져 있다. 그 중 2500종이 유라시아대륙에, 500종이 아메리카대륙에 분포한다. 이곳 몽골에도 68종이 분포한다. 이처럼 황기 무리는 많은 종을 거느리고 있다. 그리고 대체로 분포범위가 광범해 수많은 생태형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러므로 지역에 따라 형태에 많은 차이를 보이므로 이름도 다르게 붙여진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엔 황기를 포함해서 자운영, 자주황기, 자주개황기, 개황기, 강화황기 등 6종이 있다. 그 중 제주도에 분포하는 종은 자운영, 자주개황기, 황기 등 3종이다. 자운영은 경작지에 땅을 비옥하게 할 목적으로 널리 재배한다. 질소고정박테리아와 공생하기 때문이다. 제주도에서도 그다지 많이 볼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귀화한 것이 관찰된다.
한라산에 자라고 있는 황기
자주개황기는 성읍, 송당, 종달 등에서 관찰된다. 다년초로 줄기가 여러 개가 나온다. 잎은 깃모양 복엽인데 소엽이 11개에서 21개까지 있다. 꽃은 7~8월에 자색으로 핀다. 뿌리가 마치 황기처럼 굵고, 땅속 깊게 들어간다. 이 종은 분포 측면에서 매우 흥미로운 종의 하나다. 우리나라에서는 함경북도와 제주도에서만 자라고 있는 것이다. 왜 국내에서는 한반도 최북단과 제주도의 동부지역 오름들에서만 자라는 것일까? 이 종도 목축과 관련이 있는 것인가?
세계적 분포를 보면 중국의 넓은 지역 해발 3700m 이하에 분포하고 있다. 러시아(극동 시베리아), 일본에서는 홋카이도와 혼슈의 후지산을 비롯한 고산에 자란다. 우리나라에는 높은 산에 자라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 제주도에는 그다지 높지 않은 오름의 풀밭에 자라고 있다. 몽골, 카자흐스탄, 북아메리카에도 분포해 있다.
자주개황기(stragalus laxmannii, 한라산)
주로 축축한 자갈 또는 모래토양으로 되어 있는 강가나 풀밭이다. 이 종도 학명이 다소 혼란스럽다. 우리나라의 모든 문헌에 아스트라갈루스 애드수르겐스로 인용하고 있으나 국제적으로는 2010년 '중국 식물지'에 여러 가지 지역 종들을 아스트라갈루스 락스마니로 통합한 후 이를 받아들이고 있다.
이렇게 되면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 자주개황기의 학명 아스트라갈루스 애드수르겐스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게 된다. 그 외에도 일본의 특산으로 알고 있었던 아스트라갈루스 후지산엔시스를 포함한 여러 학명들이 동반 폐기되는 것이다. 어쨌거나 제주도에 자라고 있는 자주개황기는 이와 같은 분포특성 때문에 한라산의 종의 기원을 밝히는 또 하나의 중요한 단서다. 유라시아대륙과 아메리카대륙의 고위도 지방과 일본열도의 고산에 자라는 종이 어떻게 한반도의 북단과 제주도의 풀밭에 자라고 있는 것일까. 격리분포의 한 예로서 중요한 의미를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한라산 황기
그럼 황기의 경우는 어떤가? 사실 제주도에 분포하고 있는 이 종은 제주황기 또는 한라황기라는 명칭을 써 왔다. 학명 역시 아스트라갈루스 나카이아누스 등으로서 황기와는 다른 종인 제주 특산종으로 알고 있었던 종이기도 하다. 이러한 명칭이 위에서 언급한대로 국명은 황기로, 학명은 아스트라갈루 멤브라나케우스로 통합해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마저 국립수목원 국가생물종지식정보에서 사용하는 바와 같이 지금은 아스트라갈루스 몽골리쿠스로 통합되었다는 것이다. 이 학명이 지칭하는 식물을 몽골황기라고 구분하여 쓰는 학자들도 있지만 황기와 제주황기 등 여타의 많은 이름들을 통합해 사용하는 것이므로 국명은 그대로 황기를 쓰는 것이 타당하다.
몽골 황기
한라산에서 황기는 주로 해발 1400m 이상의 고지대에 분포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저지대에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간혹 오름의 풀밭에서도 관찰이 된다. 그런데 제주황기는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키가 30㎝ 이내로 1m까지 자라는 황기에 비해서 현저히 작은 특성을 갖고 있다. 그 외의 여러 형질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또한 중국이나 일본의 여러 관련 학자들은 한라산에도 이 종이 분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공통적으로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부분은 제주황기에 대해서 충분한 검토를 하지 않았다는 점을 말해 주는 점이 아닐까. 따라서 이 종에 대해서는 좀 더 자세한 검토가 필요하다.
어쨌거나 황기는 한라산을 비롯한 한국, 러시아(극동 시베리아), 몽골, 일본(홋카이도의 저지대와 고산, 혼슈의 고산), 카자흐스탄, 중국(해발 800~2000m의 스텝 초원, 다소 건조한 관목숲, 침엽수림과 산악지대)에 분포한다. 한라산의 황기 역시 자주개황기처럼 격리분포의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로서는 보배로운 종들이다.
글·사진=국립산림과학원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 김찬수, 김진, 송관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