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해녀 밥상을 탐하다](4)성산읍 삼달2리 3대 해녀밥상

[제주해녀 밥상을 탐하다](4)성산읍 삼달2리 3대 해녀밥상
"모성애로 버텨냈던 거친 바다가 선물해주는 음식들"
싱싱한 보말에 메밀가루로 부드러움 살린 보말국
새콤한 '우미무침' '톳무침' 바삭한 '깅이튀김'도
  • 입력 : 2017. 10.23(월) 20:00
  • 이현숙 기자 hslee@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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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째 이어 물질을 하고 있는 모녀의 해녀밥상. 사진=김희동천 기자

외할머니·어머니·딸로 이어진 건강한 맛
"아들 보말·소라 좋아하는 것 보면서 물질 포기 안해"

마을 해안에 갖가지 고기가 많이 모인다고 해서 '주어'라고 불렸던 성산읍 삼달2리. 마을 해안에는 '주어코지'가 자리잡고 있다. 자그마한 마을이지만 푸근한 마음을 가진 해녀들이 10여명 정도 물질을 하고 있다. 여전히 바다는 이들의 생활터전이다.

이 마을에는 고령해녀부터 30대 해녀까지 활동하고 있다. 물질을 하느라 사람이 아무도 살지 않았던 독도까지 가서 몇 년 동안 살았고, 한반도 부속 섬이란 섬은 대부분 가 봤다는 90세 해녀 할머니는 지금은 물질을 할 수 없지만 하루에 몇 번 바다에 가보는 것이 일상이라고 했다. 물에 들어가지 못해도 바다가 보고싶어 가만히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의 물질로 얻은 해산물과 해조류는 자녀들의 밥이 되었고 책이 되었을 것이다. 삼달2리에서 3대째 이어서 물질을 하고 있는 강영희·채지애 모녀의 '해녀밥상'에는 어떤 음식이 올라올까. 그리고 3대를 잇는 동안 녹록지 않았을 이들의 삶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소라성게무침·우미무침·깅이튀김·청각무침·톳무침

▶피하려고 했지만 운명처럼 다가온 길 '해녀'=어머니가 해녀였지만 아버지는 아내의 고생을 알기에 딸에게 해녀가 되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그녀는 해녀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운명'은 해녀의 길로 가게 했다. 어머니는 이웃마을 남자와 결혼을 하게 됐다. 시집살림은 너무 어려웠고 결국 아버지가 반대했던 해녀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그렇게 40년 동안 물질을 하면서 삼형제를 키웠다.

서귀포시 성산읍 삼달2리 해녀 강영희(65)씨의 이야기다. 그는 어머니 오계월(90·온평리)씨에 이어 해녀를 하고 있다. 자신도 딸에게 해녀가 되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지금 딸 채지애(35)씨도 그의 뒤를 이어 해녀가 되었다. 이제 어엿한 4년차 해녀이다. 어머니 강씨는 '대상군'으로 마을에서 최고의 실력을 가진 해녀이다. "가난한 집에 시집와서 물질을 하지 않을 수 없었죠. 또 일찍 남편을 잃고 지독하게 살았죠. 그래서 딸은 하지 않았으면 했고, 딸도 전혀 다른 길로 가는 듯 했어요."

하지만 딸 채씨는 서울에서 두 아이를 낳고 이유없이 아팠다. 그 아픔이 제주바다를 보면 치유가 됐다. 그는 몸과 마음이 지친 상태였다. 그때 말없이 다 내어주는 바다의 품에 안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에 반대했던 어머니를 설득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딸에게 가장 큰 힘이 되었던 건 엄마가 그랬든 '모성애'였다. "어린 아들이 보말을 너무 맛있게 먹는 거에요. 그래서 소라와 보말을 계속 잡아주겠다고 약속했죠."

그는 단순히 생계를 떠나 해녀가 충분히 가치 있는 직업이라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그의 이야기는 제주 해녀 이야기를 다룬 동화 '엄마는 해녀입니다'(고희영·에바 알머슨 작)의 소재가 됐다. "동화에는 엄마가 늘 제게 해주신 말씀 '너의 숨만큼만 있다 오너라'는 말이 나와요. 늘 그 말을 잊지 않으려 합니다." 그는 제주포럼 등 다양한 행사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강영희·채지애 모녀.

▶서울에서도 그리웠던 '우미무침'=어머니 강씨는 물질 실력 못지 않게 몇 시간 만에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 취재진에게 내보일 정도로 음식솜씨가 뛰어났다. 그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음식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적지 않지만 그중에서도 미안한 일이 떠오른다고 했다. 오래전 딸은 '소라'를 먹이고 아들에게 몰래 '전복'을 먹였던 때가 있었다. "전복이 워낙 귀해서 애들이 어렸을 때는 아들만 몰래 전복죽을 먹이고 딸들은 소라죽을 먹이곤 했는데, 어느날 큰 딸이 눈치를 챈 거예요. 딸이 서운해 하는데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미안하죠."

딸 채씨는 "어렸을 때 어머니가 해주신 우미(우뭇가사리)를 참 맛있게 먹었어요. 또 엄마의 소라성게젓은 비린내가 나서 싫었는데 타지생활을 하면서는 그 맛이 너무도 그리웠어요."

말려놓은 우뭇가사리를 몇번이나 씻고 말리면 미색으로 변한다. 이것을 삶아서 하루 종일 불려두면 묵과 같은 탱글탱글한 반고체 상태가 된다. 모래와 같은 이물질이 있을지 모르니 겉면은 깎아내 버리고 썰어서 무쳐먹어도 되고, 냉국을 해도 되고, 미숫가루 등을 섞어 간식으로 먹어도 좋아 다양한 요리에 쓸 수 있다.

이날 모녀가 함께 요리한 '우미무침'은 식초, 설탕, 간장, 마늘을 넣어 우미 본연의 맛을 좀더 살려 내놓았다. '소라성게무침'은 배를 마늘처럼 찧어서 넣는 것이 특징이다. 어머니 설명에 따르면 믹서로 갈아넣으면 식감이 안 살아나기 때문이다. 성게는 냉동실에 얼려놨던 채로 넣고 소금, 마늘, 고추를 조금 넣고 무치면 된다. 고추도 다 텃밭에서 키운 것들이다.

이들 모녀는 물질도 하지만 텃밭농사로 감귤과수원도 하고 있다. 두 아이를 돌보고, 물질에, 해녀를 널리 알리기 위한 다양한 활동에, 1만6500㎡(5000평)이나 되는 감귤과수원을 하느라 매일매일이 정신이 없지만 그래도 해녀를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강씨의 음식은 대부분 설탕 대신 배를 으깨서 넣는다. 믹서기에 곱게 갈기 보다는 도마에 올려 툭툭 칼뒷자루로 두드리면 금세 달콤한 향이 퍼진다. 부엌 창을 내다보니 바로 텃밭(우영팟)이 있다. 배추, 호박, 고추, 부추 등 음식의 재료가 되는 야채는 대부분 이곳에서 나온다. 고추장도 직접 담근 마늘고추장이고, 된장도 구수한 향이 가득한 집된장이다. 참깨도 집에서 직접 키우고 털어서 수확한 것이다. 이들의 하루는 도무지 24시간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메밀가루가 들어가서 부드러운 보말국=지애씨의 아이들이 좋아하는 보말을 이용한 음식도 밥상에 자주 오른다. 강씨의 보말국에는 메밀가루가 들어가는 게 특징이다. 메밀은 맛을 부드럽게 하는 역할을 한다. 강씨의 보말볶음에는 손주들의 입맛과 건강을 고려해 직접 수확한 방울토마토로 만든 소스가 들어가 특별한 맛을 낸다. 강씨는 건강한 밥상에 대해 관심이 많다.

또하나의 음식은 '깅이(게)튀김'이다. 잡아놓은 게는 민물에 하루 담궈두면 비린내나 뻘 같은 게 나온다. 검정빛깔의 게에 밀가루나 부침가루를 묻혀 적당한 기름에 튀겨낸 후 따로 간장 양념장을 만들지 않고, 뜨겁게 튀겨진 상태에서 간장을 조금 뿌려 무친다. 이것도 어머니 강씨의 특별한 조리법이다. 뜨거울 때 그 위로 간장을 뿌려줘 스며들게 해서 따로 간을 할 필요가 없다.

이밖에도 다양한 해조류를 재료로 한 음식을 내보였다. 봄에 채취했던 청각에 고추장과 달짝지근한 배를 넣은 청각무침은 쫄깃한 느낌까지 준다. 압권은 톳무침. 강씨는 "어릴적 어머니의 톳무침에는 없었지만 요즘에는 톳무침에 생두부를 부숴 넣는데 그맛이 참 좋다"고 말했다. 채소와 맛과 어우러진 톳무침에 두부의 건강함까지 더해져서 최고의 웰빙요리가 탄생한 셈이다. "두부를 넣어야 단백질도 보충되고 식감도 좋지. 참기름도 집에서 수확한 깨로 만들어서 향이 좋아요." 우영팟에서 딴 늙은호박으로 만든 황금색 호박죽을 후식으로 챙기는 어머니. 이들 모녀의 음식은 그야말로 '최고의 밥상'이었다.

손질해 말려놓은 우뭇가사리.



밥상 한가득 음식을 차려낸 모녀. 사진=김희동천기자



새콤달콤한 맛의 톳무침.



취재=이현숙·손정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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