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해녀 밥상을 탐하다] (11)에필로그

[제주해녀 밥상을 탐하다] (11)에필로그
'해녀밥상의 가치 알리기' 이제부터 시작이다
  • 입력 : 2017. 12.04(월) 20:00
  • 이현숙 기자 hslee@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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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기획취재에서는 제주해녀들의 밥상과 고향 제주를 떠나 타지에서 물질을 하고 있는 출향해녀들의 밥상, 일본의 해녀 '아마'들의 밥상을 다뤘다. ‘해녀밥상’은 투박하고 소박했지만 가족과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억척스러워야만 했던 해녀들 삶의 무게가 오롯이 담겨 있어 아름답고 뭉클할 수밖에 없었다. 사진=취재팀

제주·부산·일본 '해녀의 삶과 음식' 탐색 계기
추가 기록·정리 통해 콘텐츠 다각적 활용 필요
"별거 없다"던 밥상 통해 해녀들 삶 이해 유도

소박하면서도 정갈한 해녀의 음식은 사람들이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웰빙, 건강, 슬로푸드와 맞닿아 있다. 바다에서 잡아 올린 신선한 재료들, 그리고 해녀들의 정성으로 만들어낸 음식들은 제주만이 할 수 있는 독특한 관광체험 문화상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본보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기획취재 지원으로 '해녀밥상을 탐하다' 기획취재를 연재해 왔다. '해녀밥상'은 해녀들의 음식, 해녀들이 채취했던 해산물을 활용한 음식, 해녀들의 삶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음식 모두를 아우르는 것으로 규정했다. 소박하지만 자연이 숨 쉬는 해녀밥상을 탐색하는 작업은 힘들지만 행복한 작업이었다.

취재는 제주해녀들의 밥상과 고향 제주를 떠났지만 타지에서 물질을 하고 있는 출향해녀들의 밥상, 일본의 해녀 '아마'들의 밥상까지 탐색하는 여정으로 이뤄졌다. 해녀들에게 그들의 생명과도 같은 밥상을 함께 해달라는 취재팀의 요청은 쉬운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밥 한번 먹자"는 요청은 무모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힘들게 밥상을 함께 해준 이들은 하나같이 "별다른 것이 없다"고 했지만 그 밥상은 그들의 모든 이야기가 담겨 있어 감동적이기도 했다.

약속했음에도 치열한 삶 속에서 시간을 내어주지 못해 아쉽다는 해녀들도 있다. 강애심 제주도해녀협회장은 그 중 한 사람이다. 그가 그리운 음식은 '성게메밀조배기'였다. 몇 번의 전화와 문자연락, 그리고 만남을 통해 약속했지만 계속 어긋나고 말았다. 한 해녀는 소라젓갈을 만들어 주겠다고 했지만 조카의 장사를 돕느라 결국 시간을 내지 못했다. 또 다른 해녀는 고구마좁쌀밥을 함께 먹자고 했지만 그날 머리가 아파 드러눕고 말았다. 두통이 너무 심한 탓에 그저 인사만 하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이번 취재를 통해 많은 해녀들과 만났다. 제주의 해녀와 고향을 떠나 부산에서 수십 년 동안 물질을 하고 있는 해녀들, 그리고 일본에서 물질을 하는 제주출신 해녀와 일본의 아마들도 만날 수 있었다. 해녀들의 음식을 취재하러 갔다가 너무 추워 벌겋게 달아오른 해녀삼춘들의 손을 보고 발길을 돌려 따뜻한 캔커피와 영양갱을 사들고 다시 갔던 날의 기억은 취재팀에게 먹먹한 순간이기도 했다.

그러나 짧은 기간 동안 이뤄진 취재는 어쩌면 해녀들의 계급에 따르면 '상군' '중군' '하군'도 아닌 '똥군'의 물질 정도였을지 모른다.

해녀들이 잠수를 한 뒤 물 위로 올라와 숨을 고를 때 내는 숨비소리는 마치 휘파람을 부는 것처럼 들린다. 1~2분 정도 잠수하면서 생긴 이산화탄소를 한꺼번에 내뿜고 산소를 들이마시는 과정에서 '호오이' 소리가 난다. 해녀들이 숨비소리를 통해 빠른 시간 내에 신선한 공기를 몸 안으로 받아들여 짧은 휴식으로도 물질을 지속할 수 있는 것처럼 이번 기획은 어찌 보면 한 번의 잠수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한라일보 취재팀은 '숨비소리'를 내쉬고 해녀들의 밥상에 올려진 음식의 가치를 알리고 지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누군가는 해녀음식을 '연금술사'에 비유하기도 한다. 바다에서 채취해온 것들을 날것 그대로인 회로, 구이로, 불·물과 간장을 조합시켜 지짐으로, 소금과 시간을 더해 젓갈로 재탄생시킨다. 해녀는 연금술사가 되어 혼을 불어넣어 밥상을 차린다. 아직 제대로 정리하지 못했기에 끝났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해녀가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지만 해녀와 관련된 다양한 콘텐츠 가운데 해녀들의 삶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는 밥상에 대한 탐색은 계속되어야 한다. 부족함과 아쉬움이 큰 만큼 앞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것에 위안을 얻는다.

이번 기획에서 주목했던 건 단순히 해녀들의 삶과 함께했던 음식의 조리법이 아니었다. 취재팀은 해녀가 직접 차려낸 밥상에 오른 밥, 반찬 하나 하나에 담긴 의미에 주목하려고 노력했다. 취재과정에서 마주한 해녀밥상은 생각보다 더 투박했고 소박했지만 더없이 많은 의미가 녹아있었다. 차디찬 바다밭에서도 숨을 참아냈던 '해녀엄마'들의 밥상은 억척스러워야 했던 삶의 무게가 오롯이 담겨 있었다.

취재팀을 향해 "숨 한 번 참으면 돈이 얼만데…"라고 웃어 보이고는 냉기 가득한 겨울바다 속으로 유유히 헤엄쳐가는 해녀들. 점심때쯤 물질을 끝내면 꽁꽁 언 손을 녹이기도 전에 가족을 위한 밥상까지 차려내야 했다. 손으로 배추를 뚝뚝 끊어넣고 끓인 된장국으로 대충 한 끼를 때우고는 또 밭으로, 식당으로 일을 하러 가는 해녀엄마들. 자식들만은 고된 삶을 살게 하고 싶지 않았기에 밥 먹는 시간도 아까워 대충 차려낸 낭푼밥상. 소박했지만 해녀밥상이 아름답고 뭉클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취재팀은 이번 기획을 통해 제주선인들의 지혜도 엿볼 수 있었다. 시대의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고, 음식 또한 자연에서 얻는 선인들의 지혜를 배우는 일은 아직 멀기만 하다. 시대가 변하면서 예전 모습이 더 사라지기 전에 자료를 정리하는 작업이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취재가 마무리되어 가는 시점에 반가운 소식을 접했다. 제주학연구센터에서 올해 '해녀음식문화'아카이빙 사업과 '해녀의 집 활성화 및 해녀음식 개발'을 주제로 연구하고 책자를 발간한다고 밝혔다. 연구책임을 맡은 좌혜경 제주학연구센터 전문연구위원은 "'해녀밥상'을 제대로 계승하고 정리하는 작업은 의미가 크다. 문화적인 제주의 대표 콘텐츠로 가져가야 한다"고 전하기도 했다.

해녀음식을 탐색하는데 많은 이들에게 도움을 받았다. 제주음식에 대한 자문은 양용진 제주향토음식보전연구원장이 힘을 보탰다. 제주해녀문화를 지키기 위한 활동에 적극 나서고 있는 이선화 제주도 의원은 "문화관광의 아이콘이 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를 고민했다. 몇 년전부터 문화관광이라는 측면에서 해녀밥상을 접근해왔다"고 말했다. 그는 "해녀밥상이라는 것은 해녀들이 먹는 음식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며 "그 이유는 '소울'이 있기 때문이고 맛의 풍미도 있지만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제주여성의 삶이 함께 들어있는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제언도 아끼지 않았다.

취재팀은 밭일도 해야 하고 바다밭에도 들어가야 하는 고단한 삶 속에 조리시간이 짧아야 했던 제주의 해녀의 소박한 음식이야기가 매력적인 제주문화콘텐츠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해녀밥상의 이야기가 이번 기획취재를 계기로 해녀밥상축제, 웹툰, 영화, 애니메이션, 동화 등 다각적으로 담겨질 그날을 기대한다.

취재팀=이현숙·손정경·김희동천·강동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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