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찬미의 한라칼럼] 코로나 위기 중에서도 일상의 재난을 생각하며

[고찬미의 한라칼럼] 코로나 위기 중에서도 일상의 재난을 생각하며
  • 입력 : 2020. 05.12(화) 00:00
  • 강민성 기자 kms6510@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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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가 전 인류를 삽시간에 운명 공동체로 만들고 있다. 수많은 국가들, 심지어 선진국들마저도 사상 초유의 세계적 재난 앞에서 속수무책인 가운데, 유독 우리나라가 이 위기를 꽤 성공적으로 수습해 나가는 중이다. 국난 극복시마다 드러나는 우리 국민의 공동체 의식과 의료진의 헌신 그리고 정부의 대응 능력이 합쳐진 K-방역으로 전 세계의 주목까지 받고 있다. 이렇게 대재난을 함께 이겨내면서 국가에 대한 우리의 긍지도 한층 높아지게 됐다. 코로나 종식은 아직 멀고 재확산 가능성도 있지만 그간의 축적된 경험과 저력을 바탕으로 앞으로의 위기도 의연히 대처해 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하지만 최근에 발생했던 이천 화재가 들떠 있는 우리에게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과연 재난 예방과 위기관리를 자부할 정도로 우리사회가 성숙한 게 맞는지를. 이 사고는 사전에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인재였다. 게다가 2008년에 비슷한 화재가 있었던 만큼 당시 해당 기업에게 책임을 제대로 묻고 산재 예방 제도를 정비하여 잘 준수했다면 큰 피해가 반복되지 않았을 것이다. 사고 발생까지는 막을 수 없다 해도 일용직 근로자 사망으로 이어지는 참극이 되풀이되는 걸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경험해보지 못했던 코로나 바이러스와의 고투에 비하면 이 일상의 재난은 예측 가능해 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데도, 우리는 그다지도 무신경했고 그 결과 뼈아픈 실수를 거듭하고만 있다.

예전에 우연히 스치듯 본 책 줄거리가 요새 자꾸만 떠오른다. 신이 이기적인 인간을 깨우치기 위해 한 인간의 수명을 전혀 모르는 다른 인간과 짝을 지어 삶을 동시에 마감하게 만든다는 내용이다. 그래서 그 책의 세계 부호들과 권력자들은 자신과 같은 운명일지 모를 그 누군가가 헛되게 죽지 않도록 전 세계 기아와 질병, 빈곤 문제에 사활을 건다. 인류의 난제가 인간의 선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이기심으로 해결된다는 역설적 결론이,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력에서 비롯된 것 같아서 당시 씁쓸히 웃기만 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기상천외한 그 가상 스토리가 지금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감염 확산을 막는데 정부 당국과 국민이 총력을 기울인 것은 타인을 위한 배려도 있었겠지만 언젠가 자신에게 올 피해와 위험을 차단하고픈 게 더 큰 이유가 아니었을까.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바이러스가 거대한 부와 권력을 가진 이도 예외 없이 모두를 위협하기에, 언제든 내가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바이러스 퇴치에 가능한 온 힘을 모은 것 같다. 자신의 안위에는 신경을 곤두세우지만, 우리 이웃 취약계층의 도처에 널린 일상의 재난과 사고에는 그만큼 관심을 두지 못하고 문제를 보고도 방치하고만 있다. 진정으로 성숙한 시민의식이란, 내 일이 아니어도 사회적 약자에게 관심을 보이고 온갖 위험과 부조리로부터 그들을 지켜내는 능력과 사회적 책임감으로 입증돼야 한다. 코로나 사태로 드러낸 대한민국의 역량이 부끄럽지 않도록, 우리 사회에서 그 힘이 정작 필요한 곳에 잘 쓰일 수 있는 방향으로 이제 우리 관심과 시선을 모으고 집중할 때다. <고찬미 한국학중앙연구원 전문위원·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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