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창우의 한라칼럼] 법 어시도 살았던 삼춘들

[송창우의 한라칼럼] 법 어시도 살았던 삼춘들
  • 입력 : 2021. 02.16(화) 00:00
  • 이정오 기자 qwer6281@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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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겨울에는 예전 갖지 않은 기후로 제주에도 많은 눈이 내렸다. 눈이 내릴 때 꽃망울을 맺혔던 매화가 입춘이 지나자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했고, 금잔을 올려놓은 듯 꽃을 피운 수선화(金盞玉臺)도 봄이 우리 곁으로 성큼 다가왔음을 알리고 있다. 인간의 탐욕에서 번진 기후위기와 팬데믹 상황에서도 오랜 시간 계절에 적응해온 식물의 본성을 잊지 않고 제 역할을 하고 있다. 어릴 적 이맘때쯤 내가 살던 동네에는 우영 밭 한구석에 잘 익은 당유자가 몇 개 달린 당유자낭 아래 수선화가 피어나는 집이 있었다. 지금보다 훨씬 많은 눈이 내렸던 그 당시 초라한 그 집에 살던 남자삼춘은 아침 일찍부터 자기 집 마당을 쓸고 나서 잡 앞과 골목을 지나 다른 집 앞은 물론 온 동네 눈을 치웠다. 우리 또래 아이들에게는 비료포대를 갖고 나와 모처럼 썰매를 탈 기회를 박탈했다는 원망(?)을 들어야 했다. 하지만 동네 삼춘들과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그 삼춘을 "법 어시도 살 사람"이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눈만 치워서 그런 별명(?)을 얻은 것이 아니다.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호텔이나 장례식장에서 경조사를 치르는 것이 아니라 거의 모든 가정이 자신의 집에서 경조사를 치러야 했기에 수눌음이라는 제주의 미풍양속에 남아있던 시기이기도 했다. 경조사가 있는 집에는 그 삼춘은 나타났고,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마다하지 않고 나서서 하곤 했다. 장작을 패고, 물건을 옮기는 일을 도맡아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직장에서 그리 높은 직위도 아니고 말수도 적었으며 눈에 띄지도 않았지만 그 삼춘이 없으면 경조사는 물론 마을 일을 치를 수 없을 정도였다. 이런 삼춘은 내가 살던 동네에만 계시지 않았을 것이다. 대부분의 마을에는 이처럼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꼭 필요한 삼춘들, "법이 없어도 살 사람"이 계셨을 것이다. '법 없이 산다'는 건 평범한 사람들이 상식에 따라 행동하고 판단한다는 것일 게다. 그런데 요즘으로 돌아와 보면 간단한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어 우리처럼 보통사람들을 헛갈리게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니 참으로 놀랄 일이다. 똑 같은 일인데도 이 판사는 죄가 없다하고, 어떤 판사는 죄가 있다하니 말이다. 법을 집행하는 검사도 일반시민들에게는 엄격하게 법을 들이대다가도 자신들에게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참으로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도둑질을 하고, 남을 해치는 일이 잘못됐다는 것은 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들도 심지어 어린아이들도 판단할 수 있는데도 보수니 진보니 따지며 싸움하는 게 참 기괴한 일이 아닌가. 공생을 위한 필수 덕목은 단순 소박하고 상식에 근거해야 한다. 법이 없어도 살았던 그리고 살아가고 있는 선량한 우리 삼춘들은 지금도 우리 주변에 있는 평범한 시민들이다. 이들은 법을 잘 알지 못하지만 단순한 것을 복잡하게 만들지 않으며 자신의 목소리를 낮춘다. 그러면서 새소리와 벌레들의 소리에도 귀를 기울인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바이러스는 공생의 윤리를 부정하며 우리의 면역력을 끊임없이 갉아먹는 '탐욕'이라는 바이러스라는 어느 잡지의 한 구절이 생각나는 것도 어느 사람에게나 통하는 상식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말없이 묵묵히 법 없이 사는 우리 삼춘들을 화나게 하지 말아야 한다. <송창우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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