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대학병원 배경으로인물과 상황 연결되는 장편역사의 의미 '소현재' 인상적
나 또는 주변과 닮은 사람들
경멸하는 것, 사랑하는 것도
결국은 사람이라는 말 공감
수도권 지역의 한 대학병원을 중심으로 한 50명의 이야기다. 의사나 환자만 아니라 병원 내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은 직원들과 병원 근처에 사는 주민, 상가나 영화관에서 일하는 사람들까지. 모두가 조연이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로, 단편적인 이야기의 연속인 듯 보이지만 사실은 모든 인물과 상황들이 연결되는 소설이다. 평범하고도 특별한, 사소하고도 소중한 일상 이야기. <저자 정세랑, 출판사 창비>
▶대담자
▷신가영(제주대학교 관광경영학과 4학년)
▷박라미(서귀포시민의책읽기위원회 위원)
정세랑의 장편소설 '피프티 피플'을 두고 이야기를 나눈 신가영(왼쪽)씨와 박라미 서귀포시민의책읽기위원. 사진=서귀포시민의책읽기위원회 제공
▷박라미(이하 박): 이 책은 많은 사람이 등장하는데, 이 책을 읽고 난 후의 소감은?
▷신가영(이하 신): 주인공이 없는 소설 혹은 모두가 주인공이 되는 소설을 쓰고 싶었다는 작가의 의도처럼 등장인물들 모두가 주인공이다. 사실 모든 사람은 스스로가 주인공인 삶을 살아가고 있고 타인은 가깝든 멀든 조연일 수밖에 없다. 조연이면서 주인공인 각자만의 이야기가 존재한다는 걸 인간의 시작과 위기, 끝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병원 배경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박: 가장 인상적인 이야기는 어떤 것인가?
▷신: 저는 '소현재' 편, 이호와 소현재의 대화에서 '우리가 하는 일이 돌을 던지는 거'라는 이야기다. 모두가 같은 위치에서 돌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시대, 다른 세대의 사람이 릴레이로 돌 던지기를 한다는 부분이 역사가 만들어지는 과정처럼 느껴졌다. 돌을 쥐고 있는 당사자는 시대의 끄트머리에 서 있기에 두렵기도 하고, 가끔은 돌을 반대로 던지는 사람이 나타나면 화가 날 때도 있겠지만,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면 그다음 세대가 바통을 이어받아 다시 돌을 던지는 거다. 그렇게 어떤 비바람에도 흔들림 없이 돌을 던졌기에 지금의 우리가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박: 저자는 책을 읽으며 등장인물 중 자신과 닮은 사람이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소설 속 등장인물 중 자기와 닮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있다면 누구이며, 어떤 모습이 닮았다고 생각하나?
▷신: 싱크홀에 빠진 애선의 작은 며느리이며 글쓰기 강사이자 시인인 배윤나와 닮은 것 같다. 저는 몽상가라는 말을 많이 듣고 실체가 없는 말을 한다고 핀잔받기도 한다. 그래서 윤나가 어머니의 김치는 수채화 맛이 난다고 표현한 걸 저는 나름대로 물기가 느껴지는 아삭한 식감의 김치라고 이해했는데, 다른 회원들은 애선처럼 엉뚱한 말이라고 생각하더라. 또 조심스럽고 예민하다는 점과 누군가를 관찰하는 걸 좋아한다는 점까지 닮은 것 같다.
▷박: 저는 평생 자기 일을 열정적으로 해 왔으며, 이제 그 운을 아이에게 좀 나눠주려 악수를 한 이호 선생님, 자신은 '지금껏 너무 많이 가졌으니 잃어도 좋다'는 말이 진정 행복한 삶이란 이런 게 아닌가 싶었다. 작품 속 인물 중 닮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누구인지?
▷신: 성폭력, 가정폭력 피해자 지원시설인 해바라기 센터를 맡아 운영하는 이설아. 나는 공감 능력이 과하다 싶을 정도로 강해서 약자들이 공격당하거나 피해를 받을 때면 마치 제가 당한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래서 이야기를 들으면 눈물 먼저 왈칵 나온다. 하지만 설아는 울지 않는다. 우는 시간에 실질적으로 그들을 도울 수 있는 일을 찾아낸다. 자금을 얻기 위해 바자회를 열고, 병원에 단기 일자리가 나면 쉼터 사람을 우선적으로 소개해 준다. 그런 설아의 현명함과 행동력을 닮고 싶다. 저도 약자들을 위해 눈물을 흘리는 게 아니라 그들이 눈물을 흘릴 때 곁을 지켜줄 수 있는 든든한 사람이 되고 싶다.
▷박: 등장인물 중 주변 지인과 닮은 사람이 있는가?
▷신: 이호의 아내를 '이름난 화가는 되지 못했어도 기본적으로 아름다움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여자였다. 아내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런 사람 곁에 있으면 얼마나 삶이 풍요로워지는지 알지 못했다'라고 설명하는 문장을 읽고 미술을 전공했지만, 전공과 관련 없는 일을 하는 친구가 생각났다. 그 친구는 안목이 뛰어나고 숨겨진 아름다움을 발견할 줄 아는 능력이 있어 그 친구와 함께 있으면 단순한 거리나 평범한 물건들도 다르게 보인다. 전공을 직업으로 살리지 못했지만, 그들이 배웠던 것이 무용한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과 차별화된 자신만의 단단한 지반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박: 이 책을 읽으면서 가슴에 와닿았던 상황이나 공감되는 문장이 있었다면?
▷신: '가장 경멸하는 것도 사람, 가장 사랑하는 것도 사람. 괴리 안에서 평생 살아갈 것이다' 이 문장을 읽을 때 기분 좋은 소름이 돋았다. 나는 신문이나 뉴스를 통해 인간이 저지른 잔혹한 사건 사고를 볼 때면 세상에서 가장 악한 생명체는 인간이 아닐까 생각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인간이 만들어 내는 아름다움들, 문학이나 예술작품뿐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때면 세상에서 인간만큼 신이 공들여 만든 생명체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결국, 내가 가장 경멸하는 것도, 가장 사랑하는 것도 사람이라는 말이 인간을 가장 잘 설명하는 문장이 아닐까 한다.
▷박: '피프티 피플'은 도마뱀처럼 내용과 상관없는 듯한 그러나 관계가 있는 의미들이 숨어 있다. 책을 읽으면서 이것은 왜 이럴까 하는 의문이 든 점은 있었는가?
▷신: 이건 저희 모임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는데 하계범의 이야기 중 '다음 주 수요일엔 모자를 사야겠군, 계범은 마음을 먹었다.'라는 마지막 문장이 매일 병원 건물 내에서 일하느라 딱히 모자가 필요 없던 계범에게 쉬는 날, 밖에 나올 일이 생겼으니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뜻으로 모자를 사야겠다고 생각했다는 분도 있었다. 나는 계범이 자신과 닮은 발가락이 없는 도마뱀 이야기가 나온 동화책을 읽으면서 동화 속에서 멋진 옷과 모자를 쓰고 이곳저곳 자유롭게 다니는 도마뱀의 모습을 동경하여 따라 하고자 한마음이 반영된 말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지금 생각해보니 두 의견이 합쳐진 복합적인 마음에서 나온 말일 수도 있겠다. <정리=서귀포시민의책읽기위원회>
해바른 독서모임
해바른 독서모임은 동광 해바른 작은 도서관 회원 4인이 만든 소규모 독서 모임이다. 2주에 한 번 책을 읽은 뒤 토론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키워드를 정해 시, 에세이, 동화 등 창작물을 쓰고 발표하며 소감을 듣거나 의견을 공유하고 있다. 이는 회원 중 작가가 있어 가능했고, 회원들의 글쓰기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되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