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쏘는 시늉만"… 치매도 지우지 못한 제주4·3

"총 쏘는 시늉만"… 치매도 지우지 못한 제주4·3
30일 군법회의 30명 전원 무죄 선고… 280명째
연행된 아들에 말 한 마디 못한 청각장애 母부터
오빠 희생 이어 언니는 강제결혼 당한 사연까지
재판부 "추석 때 친척들에 무죄 소식 전해달라"
  • 입력 : 2022. 08.30(화) 16:40
  • 송은범기자 seb1119@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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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지방법원 4·3재판부의 재심 재판에서 희생자 유족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한라일보DB

[한라일보] #어머니가 내 이름을 불러 본적은 한 번도 없다. 선천적인 청각장애로 인해 말을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태어나기 전인 1949년 어머니와 당시 10대였던 큰오빠·작은오빠는 밭에서 녹두를 따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경찰이 찾아와 큰오빠를 연행했다. 말을 못하는 어머니는 갖은 손짓과 신음소리를 내며 매달렸지만, 소용이 없었단다. 결국 큰 오빠는 육지 형무소로 끌려간 뒤 소식이 끊겼다. 여기까지가 어머니가 수화로 나에게 설명해준 4·3 얘기다.

이후 어머니는 치매에 걸리셨고, 4·3의 아픔이 떠올랐는지 총 쏘는 손짓이나 불이 나는 시늉만 반복하다 세상을 떠났다. 당시 10대였던 오빠가 무슨 죄고, 말 한 마디 못한 채 아들을 떠나 보낸 어머니는 무슨 죄인가. 4·3군법회의 희생자 문창호의 동생 문창선(70대 여성).

#우리 가족은 히로시마 원자폭탄에 이어 일본군의 제주 결7호 작전에도 살아 남아 운이 좋다고 소문 난 집안이다. 그런데 4·3은 피하지 못했다. 일본에서 학교를 나온 탓에 한국말이 서툴렀던 오빠가 1948년 군인들에게 잡혀간 뒤 육지 형무소에서 총살 당했기 때문이다.

도립병원 간호원으로 일하던 언니에게도 불행은 시작됐다. 당시 헌병대 군인 한 명이 언니에게 눈독을 들이더니, 갖은 협박 끝에 강제로 결혼한 것이다. 아흔이 넘은 언니는 지금도 죽지 못해 살고 있다.

이런 상황을 모두 겪은 어머니는 눈물로 세월을 보내다 돌아가셨다. 이제라도 가족의 한을 풀고 싶다. 군법회의 희생자 이방행의 동생 이운자(83·여).

4·3 재심 재판정이 눈물바다로 변했다.

제주지방법원 제4형사부(재판장 장찬수 부장판사)는 30일 군법회의 수형인 30명에 대한 직권재심에서 전원 무죄를 선고했다. 지난 3월 29일 40명을 시작으로 이날까지 총 280명이 억울함을 푼 것이다.

앞선 재판과 마찬가지로 30명 모두 행방불명 혹은 사망해 유족이 대신 재판에 참석했다.

재판에서는 앞서 소개한 사연 외에도 ▷10남매 중 3명이 양자로 입적한 사연 ▷형무소에 끌려간 아버지 대신 장례식에 참석한 소년 이야기 ▷4·3 당시 고아가 돼 식모살이를 했던 사연 등이 유족들의 입에서 터져 나오면서 법정은 훌쩍이는 소리로 가득했다.

무죄를 선고한 장 부장판사는 "곧 다가올 추석에 일가친척들과 만날 텐데 오늘 있던 일을 잘 설명하기 바란다. 그 설명으로 친척들도 조금이나마 위로를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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