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엔 토벌대, 밤엔 무장대"… 남원 노인들의 기억

"낮엔 토벌대, 밤엔 무장대"… 남원 노인들의 기억
6일 군법회의 직권재심에서 310명째 무죄 선고
8~9살 때 남원에서 토벌-무장대 목격한 노인들
법정에 출석해 당시의 끔찍한 기억들 꺼내 증언
  • 입력 : 2022. 09.06(화) 12:47
  • 송은범기자 seb1119@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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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직권재심을 통해 억울함을 푼 제주4·3 군법회의 수형인이 300명을 돌파했다.

제주지방법원 제4형사부(재판장 장찬수 부장판사)는 6일 군법회의 수형인 30명에 대한 직권재심에서 전원 무죄를 선고했다. 지난 3월 29일 40명을 시작으로 이날까지 총 310명이 억울함을 푼 것이다.

앞선 재판과 마찬가지로 30명 모두 행방불명 혹은 사망해 유족이 대신 재판에 참석했다.

이날 법정에서도 유족들이 70여년 묵혀둔 얘기를 꺼냈며 재판부에 억울함을 호소했다. 

9살이던 1949년 당시 아버지 故 김기생씨가 군인에게 끌려가는 모습을 목도한 김정규씨는 "할머니, 할아버지, 아버지와 보리밭에서 거름을 주고 있었는데, 군인들의 총성이 갑자기 울려퍼졌다"며 "할아버지가 '도르라(달려라)'고 말했고, 아버지와 나는 하천으로 도망간 뒤 돌 틈에 숨어 체포를 면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집에 돌아와보니 집이 불에 타 아무 것도 없었다. 여기에 밤에는 무장대가 마을 사람을 죽여 나무에 매달기도 했다. 이게 사람이 할 짓인가"라면서 "토벌대와 무장대의 화를 피하기 위해 가족이 산에 들어가 생활을 했고, 이후 내려오면 살려준다는 소식을 듣고 남원지서에 찾았다가 아버지가 군법회의에 넘겨져 행방불명됐다"고 증언했다.

10살 터울 친형을 잃은 고병호씨는 "1948년 남원중학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형이 느닷없이 찾아온 군인들에게 끌려간 뒤 행방불명됐다. 그 당시 8살이라 생생히 기억한다"며 "형을 잃은 뒤에는 방화와 양민 학살을 일삼은 무장대까지 기승을 부리면서 낮에는 숲이나 바다에 숨고, 밤에는 담을 쌓고 보초를 서는 생활을 하며 가족이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유족들의 증언이 끝난 후 무죄를 선언한 장 부장판사는 "오늘 무죄 선고로 마음의 응어리가 조금은 풀리길 바란다"며 "곧 추석인데, 예년보다 덜 서러운 명절이 되길 바란다"고 위로의 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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