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어머니 떠난 지 30년 만에 드러난 비밀 '4·3 피해자'

[현장] 어머니 떠난 지 30년 만에 드러난 비밀 '4·3 피해자'
20일 4·3 직권재심 30명 무죄… 370명째
재판 통해 비로소 피해 사실 알게된 유족
"생전 입 밖에도 안꺼내… 4·3 공부하겠다"
북촌리 피해 유족은 "원한 풀어달라" 호소
  • 입력 : 2022. 09.20(화) 12:22
  • 송은범기자 seb1119@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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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어머니가 돌아가신지 30년이 지나서야 딸은 가족의 비밀을 알게됐다. 가족이 제주4·3 피해자라는 사실을.

제주지방법원 제4형사부(재판장 장찬수 부장판사)는 20일 군법회의 수형인 30명에 대한 14차 직권재심에서 전원 무죄를 선고했다. 지난 3월 29일 40명을 시작으로 이날까지 총 370명이 억울함을 푼 것이다.

앞선 재판과 마찬가지로 30명 모두 행방불명 혹은 사망해 유족이 대신 재판에 참석했다.

이날 재판에서는 가족이 4·3 피해를 입은 사실조차 몰랐던 사례도 있었다. 1948년 제주에서 목수로 일하다 느닷없이 군·경에 끌려가 행방불명된 故 현지옥씨의 외손녀 전영신(49)씨 얘기다.

전씨는 "할아버지가 끌려갈 때 어머니는 8살이었다. 모든 걸 기억하고 있을텐데 나에게는 이러한 사실을 입 밖에도 꺼내지 않았다"며 "이번에 직권재심을 청구한다는 검찰의 연락을 받고서야 진실을 알 수 있었다. 어머니는 31년 전인 1991년에 이미 돌아가셨다"고 설명했다.

이어 "할아버지가 행방불명된 이후 할머니는 도저히 제주에서는 살 수 없다고 판단해 어머니를 비롯한 삼형제를 데리고 부산으로 이주했다"며 "하지만 할머니 역시 어머니가 16살이던 1954년에 돌아가셨다"고 증언했다.

전씨는 "어머니가 왜 말을 하지 않았을까… 아마도 자식인 나에게까지 피해가 갈까봐 말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재심 재판을 받으러 제주에 간다고 하니 19살 난 아들이 4·3이 뭔지 궁금해 하더라. 이제라도 가족 모두가 4·3에 대해 알아보겠다"고 말했다.

1949년 군법회의 피해자 故 한중섭씨의 조카인 한재우(55)씨는 "큰아버지인 한중섭 어르신은 북촌에서 오현중을 다닐 정도로 수재였지만, 4·3의 광풍을 피할 수 없었다. 당시 임신 2개월이던 큰어머니 역시 북촌에서 총살을 당했다"며 "생전에 할머니는 당신 아들 얘기를 나에게 자주 해주며 슬퍼하셨다. 할머니의 원한을 풀고 싶다"고 호소했다.

1948년 군법회의 피해자 故 김문희씨의 여동생인 김축생(85)씨는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던 오빠는 4·3이 터졌다는 소식을 듣고 가족을 구하기 위해 제주에 온지 3일 만에 변을 당했다"며 "4·3 당시 오빠 3명을 비롯해 아버지, 할머니, 올케 등 집안이 멸족을 당했다. 나라에서 이제라도 누명을 벗겨준다니 감사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이날 무죄를 선고한 장 부장판사는 "4·3이 1차 비극이라면 남겨진 유족들이 말 한마디 못한 채 숨죽여 산 세월은 2차 비극"이라며 "이제는 좀 떳떳해지시라"고 유족들을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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