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국가 시험림 도난·훼손 왜 경찰 신고 미뤘나

제주 국가 시험림 도난·훼손 왜 경찰 신고 미뤘나
관리기관 범행 석달 전 이미 자연석 뽑혀 있고 산림 훼손 인지
용의자들 다시 현장 찾아 미리 뽑아둔 자연석 트럭에 싣고 도주
  • 입력 : 2023. 02.21(화) 12:11
  • 이상민기자 has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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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손된 한남시험림.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 제공. 연합뉴스.

[한라일보] 속보=제주지역 산림 자원 연구·보존을 위해 국가가 관리하는 시험림에서 자연석이 도난 당하고, 산림 자원이 무참히 훼손되는 사건(본보 2월21일자 5면 보도)이 발생한 가운데 시험림 관리기관의 안이한 대처가 도마에 오르고 있다.

관리기관은 사건이 발생하기 석 달 전 이미 땅에 박혀 있던 자연석이 누군가에 의해 완전히 뽑혀 있고, 산림 일부가 훼손된 사실을 확인했지만 정작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 신고가 미뤄지는 사이 범인들은 다시 현장을 찾아 미리 뽑아둔 자연석을 트럭에 싣고 유유히 사라진 것으로 추정된다.

21일 서귀포경찰서 등에 따르면 경찰이 범행 현장 주변 CC(폐쇄회로)TV를 확인한 결과 남성 2명이 지난 5일 오후 6시 40분쯤 굴착기를 실은 트럭을 몰고 서귀포시 남원읍 한남시험림 출입 통제구역에 자물쇠를 끊고 침입했다. 이들은 이튿날 오전 2시쯤 높이 약 180㎝에 폭 60㎝에 이르는 자연석을 트럭에 실어 도주한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육중한 중장비가 시험림을 드나들며 자연석 주변에 있던 연구 목적 나무 50그루도 훼손됐다. 특히 용의자들은 CCTV 카메라를 다른 방향으로 돌리고 옷으로 가리는 치밀함을 보였다.

경찰은 시험림 인근에 설치된 CCTV에서 자연석을 실은 것으로 추정되는 화물차를 포착해 용의자를 쫓고 있다. 간혹 방문객에 의해 시험림 내 자생 식물이 훼손된 적은 있지만 이번처럼 계획적 범죄가 일어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범행 조짐은 석 달전 부터 있었다. 한남시험림을 관리하는 국립산림과학원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이하 연구소)는 지난해 11월 말 이미 출입통제구역 내 자연석이 캐어져 있고, 나무 등이 훼손된 사실을 확인했다. 이후 연구소 측은 출입 금지 규정을 알리는 현수막을 걸고 길목에 굴착기를 세웠다.

그러나 당시 연구소는 정작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 연구소 내에 산림사범을 수사하는 특별사법경찰관(특정 범죄에 한해 경찰 직무를 대행하는 공무원)도 있지만 용의자 검거를 위한 조치는 없었다. 경찰 신고는 자연석이 도난 당하고 산림이 또다시 훼손된 후 최근에야 이뤄졌다. 산림자원의 조성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은 시험림에서 산림 자원을 훼손하거가 훔칠 경우 5년 이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연구소 관계자는 '석달 전에는 왜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당시에는 자연석이 뽑혀 있을뿐 도난으로 이어지지 않아 그런 판단을 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당시 절도는 미수에 그쳤지만, 자연석을 캐는 과정에서 연구용 나무가 훼손됐기 때문에 이미 일어난 산림 훼손 범죄에 대해선 용의자 검거를 위한 조치가 있어야 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자연석을 훔칠 줄을 몰랐다"면서도 "수사 요청에 대한 판단은 당시로선 하지 못했다"고 되풀이했다.

한편 한남시험림은 1922년 국가 소유의 국유림으로 지정된 후 수십 년간 제주도의 위탁 관리를 받아오다 지난 2002년부터 연구소가 관리하고 있다.

한남시험림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삼나무 조림지가 있으며 주로 붉가시나무, 굴거리나무 등 상록활엽수와 서어나무, 졸참나무등 낙엽활엽수가 서식한다. 도내에는 이같은 시험림이 한남을 포함해 서귀포·곶자왈 등 3곳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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