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觀] 사랑의 자격
  • 입력 : 2023. 03.10(금) 00:00
  •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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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더 웨일'.

[한라일보] 소파에 앉은 거구의 남자가 게이 포르노를 보며 자위행위를 한다. 보통 거구가 아니다. 자신이 앉은 소파가 좁아 보일 정도고 자위 행위 자체가 불가능해 보일 정도이다. 그의 쾌락을 향한 시도는 실패로 돌아간다. 심지어 낯선 이에게 이 은밀한 장면을 들키지만 감추지 못한다. 그렇게 잽싸게 아닌 척 하기에 그는 너무 비대하다. 무엇 하나도 감출 수 없는 사람, 사랑하기 어려운 주인공 찰리다. 272키로그램의 고래 같은 이 사내는 심지어 자신의 욕망만을 위해 가족을 등 진 적이 있는데다 여전히 스스로의 삶을 위해 작은 수고도 하지 않는 듯 보인다. 그는 혼자 움직이지 못할 정도의 상태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열차게 폭식을 한다. 그를 도와주는 유일한 친구인 리즈에게도 그는 골칫거리다. 게다가 유일한 친구에게도 숨기는 것이 많아 그를 실망시키곤 한다. 스스로의 감정을 달래는 일 말고는 관심 있는 것,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보인다. 물론 스스로를 달래는 일 또한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다. 삶을 방치하는 인물, 연민을 보내기엔 지독하게 이기적으로 보이는 사람, [더 웨일]은 정상성의 측면에서 여러모로 아웃사이더인 한 남자, 찰리를 통해 묻는다. 사랑하고 사랑 받는 일에는 무엇이 필요한가, 사랑하고 사랑 받을 자격은 누구에게 주어지는가.

[블랙 스완], [더 레슬러]등의 작품을 통해 자기 파괴와 구원의 영역을 배우의 힘을 빌려 꾸준히 이야기 해왔던 대런 아르노프스키 감독의 영화 [더 웨일]은 브렌드 프레이저라는 배우를 전면에 내세운다.

한때 [미이라]시리즈 등으로 월드 스타의 반열에 올랐던 헐리우드의 미남 배우는 어느 순간 대중의 시야에서 사라졌고 그가 272키로그램의 거구 찰리로 분해 [더 웨일]로 돌아왔다. 대중의 사랑을 받고 그 사랑을 자양분 삼아 활동하는 배우들에게 슬럼프란 치명적일 수 밖에 없다. 아무도 나를 원하지 않고 찾지 않는다는 외면의 비극은 명성을 쉽게 바래게 만들고 직업인으로서의 삶을 어둡게 만든다.

잊혀진 배우였던 브렌든 프레이저는 [더 웨일]로 '일생에 단 한 번 가능할 명연기'라는 극찬을 받으며 2023년 오스카 남우주연상 트로피를 거머쥘 가능성이 가장 높게 점쳐지고 있다. 그가 긴 시간의 슬럼프를 극복하고 화려한 재기에 성공할지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중이다.

사랑하는 일과 사랑 받는 일이 동시에 가능한 것처럼 행복한 일은 찾기 어려울 것이다. [더 웨일]의 찰리와 찰리를 연기한 배우 브렌든 프레이저가 여러 차례 겹쳐 보이면서 풍성한 뉘앙스를 남기는 것도 그 때문인 것 같다. 스스로의 욕망 앞에 솔직했던 한 남자의 비극은 오랜 시간 영화라는 무대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던 배우의 시간과 겹쳐진다. 그리고 그 배우가 선사하는 가히 가공할 정도의 생경한 외형과 그동안 이 배우에게 기대하지 못했던 깊은 수심의 연기는 감탄을 불러 일으킨다. 수많은 배우들이 작품과 캐릭터를 위해 외형을 바꾸는 일을 감행하지만 브렌든 프레이저의 찰리는 여러모로 놀라운 환골탈태다. 동시에 어떤 순간은 기예에 가까운 연기를 선보이는 배우를 보면서 드는 씁쓸함 또한 지울 수가 없었다. 잊혀진 배우가 사랑 받기 위해서는 이 정도의 변신을 감행해야 하는 것일까 하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렌든 프레이저는 [더 웨일]의 찰리를 통해 끝내 관객을 설득해낸다. 찰리라는 인물의 수많은 치부마저 사랑스럽게 보일 수 있는 데에는 브렌든 프레이저의 공이 컸다. 그는 오로지 사랑으로 똘똘 뭉친 거대한 덩어리 같은 이 인물을 구기지 않은 채로 포용한다. 매일의 자책 속에서도 사랑하는 이를 위해 뭉쳐진 고집을 놓지 않는 것, 그렇게 끝까지 사랑을 쥐고 놓지 않는 모습으로 관객을 마음을 뒤흔든다.

한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과연 무엇이고 누구일까. 사랑에 의해 망가져 버린 사람이 다시 사랑으로 회복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과연 사랑이란 것은 무엇일까. 연인과의 사랑을 택했던 찰리는 삶을 놓지 않기 위해 딸을 위한 사랑을 붙들고 있다. 어쩌면 사랑은 이토록 동시다발적으로 복잡하게 엉켜있는 전선 같은 건지도 모른다. 절연 상태의 인물인 찰리가 결국 절연이 불가능한 것이란 걸 알게 되었을 때, 온 몸의 전류가 피처럼 돌아 다시 사랑의 상태로 돌려 졌을 때 관객은 온전히 그의 감정에 전도된다. 사랑의 환희가, 사랑의 기적이 사실 사랑의 자격과는 무관한 것임을 알게 된 순간 나는 마음이 놓였다. 당신이 누구든 간에 얼마나 나쁘고 얼마나 한심하고와는 상관 없이 사랑의 온전함을 체험할 수 있으리란 믿음. 어쩌면 그 구원은 모두가 스스로에게 허락한 유일한 가능성 일지도 모른다.

여담이지만 이 작품을 통해 배우 브렌든 프레이저가 꼭 오스카 트로피를 들어 올렸으면 좋겠다. 상 하나가 한 배우에게 온전한 구원일 리는 만무하지만 '일생에 단 한 번 가능할 명연기'라는 찬사를 뒤엎을 또 한 번의 기회와 무대가 그에게 주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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