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첫 재판 당일 무죄 판결을 받아 영령을 위로하고 싶다고 했는데 그 마음을 미처 헤아리지 못해 재판장으로서 고개 숙여 사과합니다. 이제 이 법정에서 헌법과 법률에 의거해 양심에 따라 선고합니다. 피고인들은 각 무죄."
제주4·3희생자 추념식 다음날 열린 4·3 재심 재판에서 억울한 옥살이를 한 4·3수형인 64명이 70여 년 만에 누명을 벗었다. 4·3재심 전담 재판부 재판장으로 새로 부임한 판사는 2주 전 열린 공판에서 "고심해 판결문을 남기겠다"며 이례적으로 선고를 늦췄는데, 이날 사과와 함께 피해자들의 안식을 기원하며 유족들을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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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지법 제4형사부(재판장 강건 부장판사)는 4일 제주4·3사건 직권재심 권고 합동수행단이 군사재판 수형인 60명을 상대로 청구한 25·26차 직권 재심과 일반재판 수형인 4명을 대상으로 유족들이 청구한 특별재심 재판에서 피고인 모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피고인 대부분은 4·3 당시 국방경비법 위반죄 또는 내란죄를 뒤집어 쓰고 타 지역 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하다가 숨지거나 행방불명됐다.
검찰은 피해자 전원에게 무죄를 구형했으며 재판부도 "유죄로 인정할 만한 어떠한 증거도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번 4·3피해자에 대한 무죄 선고는 제주 출신 강건 부장판사가 올해 2월 제2대 4·3재심 전담 재판부 재판장으로 부임한 후 내린 첫 판결이다.
강건 부장판사는 "제주에서 나고 자란 제가 25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와 4·3 재심 재판을 맡게 됐다"며 "아직도 재심이 필요한 4·3 피해자가 많다는 사실에 '갈 길이 멀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먹먹하다"고 말했다. 또 강 부장판사는 "이번 판결로 형언할 수 없는 고초를 겪은 피해자들의 영혼이 안식할 수 있기를, 긴 세월 동안 한이 쌓인 유족들이 망인에 대한 기억을 새로하며 작은 위로를 받길 바란다"고 위로했다.
이날 재판에서도 4·3 유족들의 절절한 사연이 공개돼 법정을 숙연하게 했다.
고(故) 김병언씨 조카 김형남씨는 "4·3 당시 아버지, 할머니, 올케 등 일곱 식구가 다 죽었다"며 "이렇게 억울한 일이 어디 있나. 그런데 틈만 나면 폭도 소리를 듣고 살아야 했다"고 울부짖었다.
고 김두규씨 아들 김용진씨는 "어제(3일)만 해도 4·3에 대해 좌우파 간 시비가 있었다"며 "좌파 우파를 떠나 민주국가에서 어린애, 부녀자를 집결시켜 총살시키는 나라가 어디 있느냐"고 울분을 터뜨렸다. 이어 "(4·3당시 군경이 남자들을 전부 끌고 가니 가족들이 이를 염려해 남자 사진을 전부 불에 태워 버렸기 때문에) 사진조차 남아 있지 않아 아직까지 아버지 얼굴도 모른다"고 토로했다.
한편 이날 무죄 판결로 4·3직권 재심을 통해 누명을 벗은 피해자는 모두 731명으로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