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53] 3부 오름-(12)다랑쉬오름 지명 고구려어와 아이누어의 조합

[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53] 3부 오름-(12)다랑쉬오름 지명 고구려어와 아이누어의 조합
깊은 구멍이 있는 높은 오름 '다랑쉬오름'
  • 입력 : 2023. 09.05(화) 00:00
  •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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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을 압도하는 높이와
깊은 구멍이 있는 오름


[한라일보] 다랑쉬오름의 지명엔 어떤 뜻이 들어있을까? 이 오름의 이름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그것은 잘 모른다는 의미와도 상통하는 면이 있다. 문자화한 이름만으로도 다랑시악(多郞時岳), 대랑수악(大郞秀岳), 다랑수악(多浪秀岳), 월랑봉(月郞峰), 월랑수악(月郞秀岳), 월랑수(月朗岫), 월랑수(月郞峀), 다라쉬오름(다랑쉬오름) 등 8개가 추출된다.

민오름에서 일출봉 방향으로 찍은 모습, 중앙의 가장 높은 오름이 다랑쉬오름이다. 김찬수

이 오름의 특징은 뭐니 뭐니해도 주변 오름에 비해서 높다는 점이다. 폭발하듯 강력한 분화로 하늘 높이 분출한 화산쇄설물이 떨어지면서 만들어낸 자체높이 227m의 분석구다. 제주도 내 오름 평균 2.8배 높이다. 주위는 아끈다랑쉬오름, 돝오름, 용눈이오름, 은월봉, 안친오름 등 수많은 오름을 볼 수 있다.

또 한 가지의 특징은 백록담보다 깊은 최대 깊이 115m의 분화구가 있다는 점이다. 이런 분화구의 형태는 깊은 인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고대인들은 이런 특징을 이름에 반영했을까?

다랑쉬오름은 '다랑+쉬+오름'의 구조다. 따라서 다랑쉬오름의 의미를 해명하기 위해서는 '다랑'과 '쉬'의 뜻을 알아야 할 것이다. '다랑'은 '다라'에 일종의 연결어미 'ㅇ'이 붙은 구조다. 다랑쉬오름이라는 말은 지명이면서 산에 관련한 말이다. 따라서 산 혹은 지형과 관련한 어휘 중 '다라'의 연관어로 좁혀 검토할 필요가 있다.

산을 고구려어로 달이라 했다. 그걸 어떻게 알 수 있나? 이미 본란 17회(2022년 11월 22일자)에서 상세히 설명한 바 있다. 1145년 편찬한 '삼국사기 지리지'라는 책에는 지명을 고려어로 기록하면서 과거 고구려 시대에는 어떻게 불렀는지 대조하는 방식으로 상세히 기록했다.

예컨대, 여기에는 '토산현본고구려식달(土山縣本高句麗息達)'이라는 문장이 나온다. 이 말은 '토산현은 본래 고구려의 식달이다'라는 뜻이다. 이 문장의 구조는 '토산=식달'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러므로 토산의 산과 식달의 달이 대응한다. 즉, '산=달'이 되는 것이다.

'공목달일운웅섬산(功木達一云雄閃山)'이라는 문장도 나온다. '공목달은 웅섬산이라고도 한다'라는 뜻이다. 역시 '달=산'이다. '이산성목갓달홀(梨山城木加尸達忽)'이라는 문장도 나오는데, '이산성은 모갓달홀'이다라는 뜻이다. 역시 '산=달'이다.



'달'은 고구려어
'산' 혹은 '높은'의 뜻


이렇게 하여 고려시대 즉, 1145년경에 산(山)이라는 말은 고구려 때에는 달(達)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사실 당시 '산'이라는 말은 외래어다. 한자어이기 때문이다. 순우리말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순고구려 말은 '달'이다. 위의 책에는 이와 같은 용례로 달(達)이라는 단어가 14번 나온다. 이 중 말음절 표기가 11회, 어두 표기가 3회다. 위 문장에서 식달, 활달, 공목달 등은 말음절 표기다. 그런데 이와는 좀 다르게 달을성현후명고봉(達乙省縣 後名高峰), 고목근현일운달을참(高木根縣 一云達乙斬)의 달은 어두 표기에 해당한다. 문제는 이렇게 어두음일 때와 어말음일 때는 그 뜻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말음절로 사용했을 때는 '산'을 나타냈는데, 어두 표기일 때는 '높은'의 의미를 갖는다. 위의 예에서 식달, 활달, 공목달 등의 '달'은 모두 산의 의미로 쓴 것이다. 그러나 달을성(達乙省)의 '달', 달을참(達乙斬達)의 '달'은 모두 '높은'의 의미로 쓴 것이다.

그렇다면 실제 이 '달(達)'이라는 말은 어떻게 발음했을까? 학자에 따라 tar, tal, tara 등 다양하게 제시했다. 다랑쉬오름의 '다라'란 바로 이 '달(達)'에서 기원한 말이다. 이 '달'이 어두음으로 사용했으니 '높은'의 의미다. 그렇다면 왜 '달'이 아니라 '다라'로 되었나? '삼국사기 지리지'에 나오는 '달'의 용례를 보면 대부분 단독자로 쓰였지만 '달을(達乙)'로 표기된 사례도 나타난다. 이것은 언어변천과정으로 볼 때 당시는 폐음절 경향이 우세하였으나, 개음절로도 썼음을 알 수 있게 하는 부분이다. '안녕하십니까?'는 폐음절어, '안녀하시므니까?'는 개음절어라 보면 된다. 따라서 다랑쉬오름의 '다랑'은 '높은'을 의미하는 고구려어 '달'에서 기원한 말이다.



'쉬'는 아이누어에서 기원
'구멍' 이라는 뜻 가져


그런데 '달'이라는 말이 '높은' 혹은 '산'을 지시하는 고구려어라는 데에 상당히 거부감을 나타내는 경우를 보게 된다. 그러나 학자들은 위에서 보는 것처럼 고전에서 고구려어를 많이 발굴하고 재구성해 내고 있다. 고구려어 외에 북방의 여러 언어에서 같은 계열의 어휘가 산재한다. 중세 몽골어, 부리야트어, 칼미크어, 오르도스어, 돌궐고어, 야쿠트어에도 같은 계열의 어휘를 볼 수 있다. 역시 본 기획 17회에 다루었다.

그렇다면 '쉬'라는 말은 무슨 말일까? 이 말이야말로 우리말에서는 제주어에만 남아 있는 말일 수 있다. 이제 '쉬'가 무슨 뜻인지 알면 다랑쉬오름의 지명은 풀린다. 옛 기록에는 이 말을 표현하기 위하여 시(時), 수(秀), 수(岫), 수(峀) 등을 사용했다. 왜 이런 이상한 글자들을 동원할 수밖에 없었을까? 제주도 고대인들이 '쉬'라고 하는 이 말이 무슨 뜻인지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는 얘기가 된다.

이 말은 우리 사전에는 등재되지 않은 말이다. '쉬'란 아이누어로 '구멍'의 뜻이다. 아이누어에서 기원한 우리말은 많다. 그러나 이제는 대부분 완전히 토착화해서 차용어로 보지도 않는다. 그 사례는 앞으로 다룰 것이므로 여기서는 생략한다. '쉬'에 대해서는 아이누어 사전에 따르면 혈(穴), 즉, 구멍이다. 영어로는 홀(hole)이다. 그러니 다랑쉬란 오름 이름은 고구려어와 아이누어가 조합한 형태다. 다랑쉬오름의 특징은 깊은 분화구와 인접한 오름들에 비해 높다는 데 있다. 따라서 제주도 고대인들은 이 오름을 '(깊은) 구멍이 있는 높은 오름'의 뜻으로 불렀음을 알 수 있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전문가)>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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