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훈의 제주마을 백리백경.. 가름 따라, 풍광 따라] (54)애월읍 장전리

[양기훈의 제주마을 백리백경.. 가름 따라, 풍광 따라] (54)애월읍 장전리
미풍양속 자긍심, 애향으로 승화시키는 마을
  • 입력 : 2023. 12.08(금) 00:00  수정 : 2023. 12. 09(토) 10:53
  • 송문혁 기자 smhg1218@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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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주거지역을 중심으로 바라본 마을의 형태가 평화롭다. 분지 지역까지는 아니지만 주변 지대가 높아서 중심부가 조금 낮은 평지를 이루고 있으니 그러하다. 촌락이 형성되기 전에 누구나 탐을 냈을 법한 땅이다. 이러한 땅 형세가 지닌 장점을 간파하여 활용한 것은 김통정이 이끄는 삼별초였다고 한다. 장전리(長田里)라는 지명은 역사적으로 군사훈련장에서 유래되었다는 주장이 마을 원로들의 공통된 견해다.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이렇다. 장전의 長이라는 글자를 대부분 사람들처럼 '길다'로 받아들였을 경우에 뒤에 田과 함께 쓰면 긴 밭이라는 넌센스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장전(長田)의 長은 길다는 뜻 이외에도 어떤 조직이나 기관에서 가장 우두머리, 높은 분을 뜻으로 쓰이기도 하거니와 田이 경작지 밭이라는 뜻 외에 시골마을이라는 의미로 뜯는 경우가 많으니 이를 조합하면 '어떤 우두머리의 마을'이라고 해야 한다는 것.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해석하면 장전리 일대를 군사훈련 장소의 책임자인 역장에게 지급된 토지 명칭에서 연유하여 유래된 것으로 '장군으로부터 하사받은 자랑스러운 이름'이 된다. 이를 뒷받침하는 고유지명이 있다. '사장밭'이다. 사장(射場)이란 활터를 일컫는 말이다. 현재 장전에 위치하는 지명 사장밭은 동에서 서까지 길이 300m, 남북 길이 200m 되는 넓은 들판이다. 이 밭이 군사들이 활터로 쓰이던 곳으로 받아들이면 마을 어르신들에 의하여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와 일치한다. 마을 명칭 자체가 마을의 시원을 이야기하고 있으니 삼별초 대몽항쟁 무렵 700년 전부터 이 지역에 사람이 살고 있었음을 알수 있다. 유서 깊은 마을이다. 그 사장밭은 세월이 흘러 개인소유로 되었다가 1946년 이전에 청년회에서 기금을 모아 구입하고 교육기관의 필요성을 느껴, 학교 부지로 기부하게 된다. 1948년 11월, 4·3광풍이 몰아쳐 소개령에 따라 장전마을이 소개되자 학교도 전부 소진되었다. 그 후 장전리가 재건됨에 따라 1950년 5월 25일 장전국민학교로 재인가를 받아 지금까지 2세 초등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그 밭의 역사가 마을의 공통분모를 이루는.

동쪽은 고성리와 유수암리, 서쪽은 상가리, 북쪽은 수산리, 남쪽은 소길리가 둘러쳐진 마을이다. 3월 말 4월 초순에 장전리에는 멋들어진 벚꽃터널이 생긴다. 수령이 50년 넘는 벚나무들이 길 중앙 하늘에서 서로 만나 눈부시게 화려한 아름다움을 연출하는 것이다. 그 환상적인 매력을 찾아서 많은 탐방객들이 찾아드는 섬 제주의 대표적인 벚꽃 명소다.

고용석 이장에게 장전리가 보유한 가장 큰 자부심을 물었더니 간명하게 "수눌음"이라고 답했다. 제주인의 전통적인 농경문화 속에서 품앗이 형태가 더욱 강고하고 우애가 넘치는 결속력으로 자리 잡은 일종의 정신문화를 장전리가 보유한 미풍양속의 첫 번째로 꼽은 것이다. 척박한 환경에서 마을 인구가 한정적인 상황을 살아온 조상들이 서로가 서로를 돕지 않으면 생존의 불가능했을 것이기에 형제처럼 마음을 열고 살아온 그 정신적 토대가 오늘의 장전리를 있게 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조상들의 전통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마을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근거가 있다. 가장 오래된 것이 1774년으로 기록된 호적중초가 고문서의 형태로 보존되어 관련 학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마을 구성원들의 기본적인 인적 사항을 기록하여 보관하는 것이야 봉건시대에도 당연하게 있어온 사실이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 혼란기를 겪으면서 이를 보존하고 있는 마을이 과연 전국적으로도 몇 곳이나 될까? 특히 4·3소개령으로 마을 전체가 불타버리는 과정에서도 이 문서들을 목숨처럼 지켜낸 당시의 마을 지도부와 대표자에게 기록문화의 입장에서 존경과 찬사를 보내게 된다. 마을회관을 방문 했더니 엄청난 두께의 책으로 편찬되어 나올 준비가 마무리 단계에 있었다. 조상들의 삶에 대단한 자부심을 느끼지 아니하고서는 이런 실천적 노력이 불가능하다. 이 문헌이 가지는 귀중한 가치에 행정이 나서서 전시관이라도 세워줘야 한다. <시각예술가>





겨울에도 살아있는 밭
<수채화 79cm×35cm>


마을 중심부에 이런 밭을 보유한 마을이 있을까? 장전초등학교 바로 서쪽 밭이다. 겨울날 주변의 나뭇잎과 줄기들은 누렇게 변했건만 강렬한 햇살에 초록 풀잎들은 연두색으로 빛나고 있다. 마을 이름에 걸맞은 그림을 그리려 욕심을 냈다. 그러다 보니 파격적인 구도가 생성되었다. 밭 주변으로 마치 마당놀이 관객들처럼 집들과 나무, 경계 돌담들이 놓여 있다. 길가 또한 저 밭의 관객에 불과하다. 밭의 역사가 마을 이름이 되고, 정신적 뿌리가 되고 있으니 겨울날에도 저 찬란한 빛을 그대로 유지해야 하는 모양이다. 중산간 마을이라고 할 수 있는 이 곳에 이토록 아름다운 겨울날의 밭이 있다는 것 자체로 아름다움이며 미학적 자긍심이다. 그리면서 얻은 사실 하나가 있다면 밭보다 눈부신 '빛 반사'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 하기야 저기에서 이뤄지는 광합성을 물리량으로 합산하면 엄청날 것이다. 앞에 누렇게 변하여 큰 돌들 사이에 헝클어진 풀잎들이 밭에 있는 연두색과 서글픈 대비 효과를 보이고 있다. 거기에서 주제의식을 얻어냈다. 어떤 시간성이 한 화면에 등장하는 것은 풍경화에 있어서 자연스러운 현상이거니와 마을의 역사 그 속에 사장밭이 지니는 의미를 알고서 바라보면 어떤 뜨거움이 흐르게 된다.

조금 심하게 욕심을 내게 된다면 밭 자체가 하나의 역사를 품은 문화재의 위상을 지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력한 환쟁이가 붓으로 모두 담아낼 수 없는 세월의 두께가 어떤 겨울도 이겨내며 오늘에 이르렀다.





냇가와 오르막이 동행하는
<연필소묘 79cm×35cm>


제주는 화산섬이기에 작은 골짜기이며 하천이 광범위하게 분포돼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하천을 따라서 형성된 길들이 숱하게 보이는 것 또한 매력적인 풍광이기도 하다. 그 많은 유사성 속에서 오래 기다려 이 길과 냇가를 그린 것은 화면구도의 입장에서 너무도 와벽한 조화를 이루는 곳이 여기이기 때문이다. 오르막길을 따라서 냇가도 함께 굽이굽이 돌아가는 것으로 착각하게 되는 오묘한 곡선의 흐름들. 이 냇가는 행정적으로 장전리와 유수암리의 경계를 이루는 위치에 있다. 생활권역으로는 장전리 정주공간 인근이다. 따라 올라가 발원지를 찾으면 녹고메오름에서 갈래로 나눠진 골에서 장전목장과 경마장 사이 구거에 도달하게 된다. 그리면서 안타까운 것은 이 지경의 공간적 특징을 우선해야 하는 관계로 겨울날 억새들과 나무, 풀잎의 색들을 입히지 못하였다. 냇가의 깊이와 오르막길의 관계를 화면이라고 하는 카테고리 속에서 쌓인 석축들과 함께 만끽하는 시각적 풍요다. 평범해 보이는 냇가와 오르막에서 서 소실점 뒤에 펼쳐질 미래에 대하여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큰 현무암 덩어리들로 하천과 경계를 이루는 길이 낭만적이면서도 환경친화적인 느낌을 전달하고 있다. 봄에 걸어 올라가며 느끼는 감정은 놀라우리만치 상큼하다. 식물의 다양성이 풍부하여 코끝으로 전달돼 오는 향기가 바로 장전리의 향기려니. 자연과 더불어 귀중한 조상들의 역사를 간직하는 마을에서 그 오래된 흐름을 화폭에 담았다. 아름다운 동행이다, 길과 냇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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