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겨울을 접으며 봄으로 가는 요즘 비가 내리는 날이 잦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날은 공치는 날, 멍하니 빗방울이 줄줄 떨어지는 천막에 앉아 돌담과 들판과 밭에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새싹들을 바라다보면서 새삼 인간의 눈(目)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갖게 되었다. 지구상에 나타난 생명체들이 눈을 갖게 된 것은 빛을 감지하게 되는 동시에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일대의 혁명이었다.
나보다 작은 상대를 만나면 잡아먹을 수 있고 반대로 자신보다 덩치가 큰 생명체가 나타나면 살기위해 줄행랑을 쳐야 하는 약육강식의 무시무시한 세계가 열렸음을 의미하기도 했다. 인간도 예외는 아니어서 힘이 센 동물에게 쫓기던 신세였지만 우연이라는 진화를 통해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직립보행으로 자유로운 손놀림은 무기를 만들고 공동체생활로 그들과 맞설 수 있었다.(커진 뇌, 火食, 여성들의 지혜 등 다른 요인도 많지만) 보다 큰 변화는 주로 앞발로 땅을 짚고 다니며 바닥을 보면서 먹이를 찾던 인간은 두 발로 걷게 되면서 한층 높은 곳에서 멀리 내다보는 것은 물론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수시로 하늘을 바라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낮에 뜨는 태양과 밤에 나타나는 별과 달을 바라보는 눈은 계절을 예측하며 최상의 포식자로 변하도록 했으며 결국 인간 사회의 계급을 만들어 버렸다. 모든 동물에게 나타나는 계급은 인간들처럼 대물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우리 사회에 나타나고 있는 계급은 자신의 선택에 의해 이루어진 것도 아닌데도 그것을 극복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운이 좋아 재물이나 권력이 많은 좋은 집안에서 태어났을 뿐인데도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눈은 어쩌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대를 이어 잘사는 사람들은 '이대로'라고 외치며 우리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 수도 있지만 그 반대편에 서있는 사람들은 다르다. 결혼을 포기하고 설령 결혼했다고 해도 팍팍한 현실 때문에 자식을 낳지 않으려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어떤 이에게는 인간으로 태어난 삶까지 포기하도록 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우리사회는 이 양극화로 점점 벼랑 끝으로 몰고 있는데도 국가는 이를 타개할 뚜렷한 대책도 없는 것 같다.
권력이 있고 돈을 많은 가진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으로 나뉘는 양극화가 심화되면 부자들이 아무리 높은 울타리를 치고 그들끼리만 잘 살아가려고 해도 결국 그들 역시 살 수 없는 곳으로 변하게 될 게 뻔하다. 결국 그들끼리 서열이 정해져 다시 양극화가 생겨나며 그들의 세계도 사라질 터이니까 말이다. 결국 뜨거워지는 지구에서 모두가 사라지지 않으려면 우리 공동체가 힘없는 이들을 보듬고 돌봐야 한다. 비록 힘은 없지만 현실을 직시하고 우리가 연대해 나서야 하지 않을까. 다가오는 봄을 바라보는 눈에 대한 생각이다. <송창우 전 제주교통방송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