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창간 35주년 한라일보가 만난 이화여대 최재천 교수

[기획] 창간 35주년 한라일보가 만난 이화여대 최재천 교수
[창간 35주년/ 특별대담] (1)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
“기후변화 대응 안 하면 제주가 가장 먼저 위기 직면”
기후 온난화 지속될 경우 제주에 뎅기열 첫 진입
남방큰돌고래 생태법인 지정 국민 인식 대전환 계기
개발-보전 놓고 갈등 빈번 탄소중립... 2공항 건설 '이율배반'
  • 입력 : 2024. 04.22(월) 00:00  수정 : 2024. 04. 23(화) 08:50
  • 부미현 기자 bu8385@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가 저출생과 기후변화의 충격을 가장 먼저 맞게 될 제주가 앞으로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해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부미현기자

[한라일보] 한라일보는 창간 35주년을 맞아 국내 저명 석학과의 인터뷰를 두 차례 걸쳐 보도한다. 첫 인터뷰에서는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인류가 직면한 팬데믹, 기후 위기, 생물다양성 고갈의 문제를 고찰해온 최재천(70)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생명다양성재단 이사장)를 만나 지속가능한 제주를 위한 제언을 들었다. 지난 16일 이화여대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최 교수는 "제주와 같은 섬 지역은 작고 고립된 생태계여서 기후변화의 충격에 대응이 어려울 수 있다"며 대비가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근 제주에도 집중호우나 가뭄 등 기후변화 위기가 가시화되는 것 같아 우려가 많다. 제주에도 기후변화 위기가 오는 것인지.

제주도는 우리나라 제일 남단이어서 기후변화의 최전선에 있다. 기후변화로 인해 제일 먼저 맞닥뜨리는 현상이 평균기온의 상승인데, 그로 인해서 열대나 아열대에 있던 현상 또는 생물이 점점 우리나라까지 올라온다. 땅덩어리가 큰 육지면 충격을 완충할 수 있는 여러 장치가 있을 수 있으나 제주도와 같은 섬의 작고 고립된 생태계는 충격 흡수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생태계가 갖는 네트워크의 복잡성이 결여돼 충격에 대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제주에서 일어나는 생태계의 변화는 상당히 예민하게 들여다 봐야 한다.

-제주도의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기후변화 위기도 큰 것인가.

그렇다. 열대에 가면 뎅기열이라는 전염병이 있다. 그게 지금 대만까지 와 있다. 대만에서 창궐한 뎅기열 바이러스를 옮기는 모기는 바람만 제대로 불면 우리나라로 쉽게 올 수 있다. 작은 곤충들은 대륙 간 이동이 훨씬 유리하다. 상승기류를 타고 오르다가 제트기류를 만나면 순식간에 움직인다.

기후변화의 추세가 이어진다면 우리나라에서도 언젠가는 뎅기열 전염병이 돌기 시작할 텐데, 제일 먼저 감지하는 건 제주도가 될 거다. 다른 지역으로 갈 수도 있지만 아마도 제일 남쪽인 제주도로 올 가능성이 크다. 앞으로 기후변화 때문에 열대성 질병이 우리나라에 계속 진입할 것이고 그걸 미리 준비하고 있어야 초동대응을 잘할 수 있다.

-그런 문제는 국가 차원에서 접근해야 하는 것인가.

제주도에서 기후변화를 연구할 수 있도록 국가 차원에서 제주대학교에 관련 센터를 만들거나 교육 측면에서 특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실 오래전부터 그런 얘기를 종종 해왔다. 하지만 우리 정부가 문제의 심각성을 여전히 잘 모르는 것 같다. 외국의 경우 기후변화 이슈가 제일 중요한 정부 정책 중의 하나다. 그나마 제주도가 최근 이런 문제에 대해 조금 앞서가는 것 같아 기대를 하고 있다.

-코로나19와 같은 새로운 감염병과 기후변화는 어떤 관계가 있나.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연구진이 2021년 5월에 '사이언스 오브 더 토털 인바이런먼트'라는 학술지에 논문을 냈다. 지난 100년간 박쥐의 분포데이터를 분석했더니 중국 남부 지역에 100년 동안 박쥐 40여종 정도가 진입해서 정착했다는 것이다. 박쥐들은 바이러스를 늘 달고 사는 동물이다. 이번 세기 우리가 겪은 사스, 메르스, 코로나19 모두 박쥐가 매개한 걸로 역학조사 결과 드러났다. 그 논문에 의하면 박쥐는 한 종이 2.67종류의 코로나바이러스를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40여 종이니 100종류 이상의 코로나 바이러스다. 기후변화가 이대로 계속 진행되면 열대에 사는 박쥐는 끊임없이 온대 지역으로 옮길 것이고 그들이 가지고 오는 바이러스 때문에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은 확률적으로 점점 자주 발생할 수 밖에 없다.

-제주도는 '2030년 탄소배출 제로'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탄소중립은 달성하기 쉬운 목표가 아니다. 많은 나라가 선언은 했지만 다 힘들어한다. 제주가 종종 테스트베드가 되곤 하는데 선도적인 역할을 해줄 것을 기대한다. 지난 제주도정에서 탄소중립을 강조했는데 당시 도로도 많이 만들고 제주 제2공항도 추진한다고 해서 말과 행동이 반대로 가는 것처럼 보였다.

기후변화 최전선에 서겠다면서 공항을 만들어달라는 것도 거꾸로 가는 것이다. 제주는 어쩔 수 없는 면이 있겠지만 현 제2공항 부지 주변에는 제주가 화산섬이다 보니, 우리가 잘 모르는 동굴이 굉장히 많다. 그런데 동굴 속에 사는 생물에 대한 연구가 거의 안 돼 있다. 굉장히 소중한 자연인데 공항을 본격 건설하면 상당 부분 훼손될 수밖에 없다는 게 생물학자들의 걱정이다.

-제주에서는 개발이냐 보전이냐 갈등이 지속돼 왔다.

그런 갈등은 어디에나 있다. 국립생태원 초대 원장으로 취임했을 때 생태원이 위치한 충남 서천 주민들이 공장은 짓지 않고 연구소를 지어놨다고 불만이 많았다. 그런데 국립생태원을 보기 위해 백만 명씩 찾으니 환경을 훼손하지 않고도 지역 경제가 되살아났다. 제주나 제 고향 강원도만큼은 환경을 잘 보전하면서 가는 게 긴 안목으로 볼 때 훨씬 현명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제주도도 저출생 고령화 문제가 사회적 고민이다.

전국적으로 합계출생률이 0.7인데. 세종시는 1을 넘는다. 열심히 여러 가지 조건을 촘촘하게 잘 만들면 출생률을 어느 정도는 회복할 수 있다는 걸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케이스다. 제주에서도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 여러 시도를 해보고, 만일 출생률이 회복되는 걸 보여주면 우리나라에 크게 기여하는 것이다.

-남방큰돌고래 생태법인 제도화 워킹그룹 위원장을 역임했다. 생태법인 제도는 생소한 개념이다.

간단히 말하면, 자연에 인간의 권리에 준하는 권리를 주겠다는 것이다. 생태법인 제도가 만들어지면 후견인이 돌고래의 권한을 대변할 수 있다. 앞으로 거의 모든 생물들이 어느 순간 다 자기 권리 주장할 수 있는 시대가 되면 인간이 함부로 못한다. 모두가 함께 사는 그런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 굉장히 중요한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남방큰돌고래 새끼 6마리가 서귀포시 대정읍 바다에서 1년 사이 잇따라 폐사하는 일이 벌어졌다.

종종 있는 일이다. 지금 아무리 규제하고 호소해도 돌고래 관광 배들이 너무 가까이 접근하고 있다. 지금은 그러면 안된다는 법의 저촉을 받을 뿐인데 돌고래가 생태법인이 되는 순간 가까이 오지 말라고 스스로 주장할 수 있다. 자연과 우리의 관계를 제대로 정립하지 않으면 앞으로 팬데믹은 끊임없이 일어날 것이라고 본다. 과연 그게 우리가 원하는 삶일까. 돌고래 생태법인은 일대 전환의 기점이 되는 것이다.

-육지에서 온 이주민과 제주 도민이 잘 어울려서 살 수 있을까.

뜻밖에도 다수의 외지인이 짧은 시기에 제주로 이주해오면서 제주도민들이 배타성을 고집하기 힘든 상황이 아닌가 싶다. 제가 보기엔 이걸 거부할 게 아니라 이럴 때일수록 서로 마주 앉아서 얘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마을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시도에 기대를 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제주도민들에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

대한민국이 상당히 많은 분야에서 세계적 수준에 도달했는데 결정적으로 모여 앉아서 합의를 도출하고 토론하는 걸 못한다. 제주 70만 도민이 대의 민주주의가 아니라 직접 민주주의를 테스트해보면 어떨까. 브라질의 작은 도시 포르투알레그리에서는 예산의 절반을 시민들에게 맡겨서 시민들이 모여 예산 집행을 논의한다고 한다. 최근 제주에서는 갈등이 빈번한 것처럼 보이는데 제주에서 직접 민주주의 실험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조만간 '숙론(熟論)'이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할 예정이다. 제주도민들이 제 책을 같이 읽으면서 숙론의 방법론들을 실험해볼 수 있으면 참 좋겠다. 서울=부미현기자 bu8385@ihalla.com

최재천 교수는

1954년 강원 강릉에서 태어나 서울대 동물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에서 생태학 석사를, 하버드대에서 생물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시간대,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를 거쳐 현재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다.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한국생태학회장, 국립생태원 초대원장을 역임했다. 제주남방큰돌고래 제돌이 야생방류 시민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기사제보
▷카카오톡 : '한라일보' 또는 '한라일보 뉴스'를 검색해 채널 추가
▷전화 : 064-750-2200 ▷문자 : 010-3337-2531 ▷이메일 : hl@ihalla.com
▶한라일보 다음채널홈 바로가기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6151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