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안보와 직결 막대한 수익 창출하는 ‘블루오션’으로 부상
[한라일보] 미국은 세계 최대 콩 생산 국가 중 하나다. 2022년을 기준으로 브라질 1억2180만t, 미국 1억1255만t, 아르헨티나 4880만t 등 순이다.
미국은 2022년 한 해 동안 344억 달러(한화 44조7200억원) 어치의 콩을 해외로 수출했다. 금액으로는 전년에 비해 25.5% 가량 증가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데다 남미 지역 생산량 감소 등으로 가격이 오른 덕분이다. 수확된 콩은 중국, 멕시코, 유럽연합(EU), 이집트, 일본, 한국 등으로 수출됐다.
미국 주요 농업 작물 중 하나인 콩의 원산지는 만주와 한반도 일대이다. 윌리암 모스를 주축으로 꾸려진 '동양의 식물탐험대'가 1929~1931년 사이 한국·중국·일본 등지에서 채집한 종자가 발판이 됐다. 당시 채집된 종자 가운데 2/3 가량이 한국산이었다. 현재 미국에서 보관 중인 콩 종자 가운데 25%는 한국에서 가져간 것들이다. 지금처럼 종자 유출에 대한 제재가 엄격하지 않던 1970년대라 반출이 가능했다.
크리스마스 무렵이면 미국 내 가정에 세워지는 크리스마스 트리 또한 우리나라가 원산지다. 제주도 한라산에서 자라는 구상나무다. 한 식물학자에 의해 해외로 반출된 후 상업화됐다. 1900년대 프랑스의 한 신부가 채집, 미국 하버드대학의 식물분류학자인 어니스트 헨리 윌슨(Ernest Henry Wilson)에게 제공했다. 윌슨은 1917년 제주도를 찾아 구상나무를 눈으로 확인했다. 그는 구상나무를 새로운 종으로 여겨 학계에 신종으로 보고했다. 그래서 '아비에스 코리아 윌슨(Abies koreana WILS)'이라는 학명이 탄생했다.
구상나무는 원추형으로 균형이 탁월할 뿐만 아니라 가지가 튼튼하고 가시가 없어 조명·장식을 설치하기 편하다. 향기도 상쾌해 실내에 두면 천연 방향제 역할까지 한다. 해외에서는 '한국전나무(Korean Fir)'로 불리운다.
향이 좋아 입욕·방향제로 많이 쓰이는 미스킴 라일락도 한국 토종식물이다. 1947년 미국 농무부에서 파견된 엘륀 미더(Elwin Meader)가 서울 북한산에서 털개회나무 종자를 채취, 미국으로 가져가 파종했다. 서울에서 자신을 도와준 미스 김을 기억하며 '미스김 라일락'으로 명명했다. 작고 아담한 수형, 진한 향기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오래지 않아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라일락 품종으로 등극했다. 우리나라도 1970년대 후반부터 비싼 로열티를 주면서 수입하고 있다.
|콩·구상나무 등 고유종자 부지불식간에 유출
제주시 애월읍 고성리 한 농경지에서 잘 여문 콩수확을 하는 모습.
국내로 들여온 통일벼는 우리나라를 기근에서 구해냈다. 1965년 우리 정부는 필리핀에 있는 국제미작연구소(IRRI)에 벼 육종연구자들을 파견했다. 그들은 1969년 수확량이 많은 '인디카(indica)'와 밥맛이 좋은 '자포니카(japonica)'의 장점을 모은 품종인 'IR67'을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IR67'은 '통일'로 명명됐다. 강력한 정책에 힘입어 전국으로 보급됐다. 통일벼가 보급되며 1977년 쌀 총 수확량은 1960년대 후반에 비해 30%이상 증가했다. 정부는 1977년 12월 쌀 자급 달성을 공식 선언했다.
세계 곳곳에서 포성없는 전쟁이 한창이다. 새로운 종자를 확보하고, 그 권리를 지켜내기 위한 '종자전쟁'이다. 종자산업의 주도권을 둘러싼 싸움도 치열하다.
각국이 한 발의 물러섬도 없는 것은 바로 식량안보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막대한 수익까지 챙길 수 있는데다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서의 유용성이 확인되며 투자·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연관산업으로의 파급력까지 높아지며 '블루 오션'으로 부상했다.
세계 종자산업 시장 규모는 780억 달러(109조1064억원)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농작물이 450억 달러로 전체의 53%를 차지한다. 국가별로는 미국이 120억 달러로 가장 크며 중국·프랑스 등이 그 뒤를 잇는다. 한국은 4억 달러로 세계 시장의 1% 수준이다. 성장 속도 또한 매우 가파르다. 연 5% 가량 성장하는데다 연관산업에 미치는 영향까지 고려하면 파급효과는 더욱 크다.
|제주, 여러 자생식물 서식 종자산업 육성 최적지
종자전쟁의 시작과 끝은 모두 '종자'에 달렸다. 우리 고유의 종자를 보존·복원하고, 새로운 종자를 만들어 폭넓게 활용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 자생식물에 대한 연구·보존이 필수적이다. 더불어 예산·인력 등 적극적인 지원이 수반돼야 한다. 제조·건설업 등과는 달리 성과가 곧바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의 새로운 품종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짧게는 5년, 길게는 20년까지 반복되는 실험을 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사계절의 기온 변화가 뚜렷해 서식하는 식물군들이 다양하다. 특이성 또한 상대적으로 높다. 더욱이 우리 제주는 사계절뿐만 아니라 온대, 난대, 한대의 기후까지 교차하는 덕분에 '자생식물의 보물창고'로 불린다. 종자산업 육성에 있어 더할 나위 없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종자산업은 이제 걸음마를 겨우 벗어난 수준이다. 지난 2012년부터 종자산업 육성에 나섰지만 성적표는 초라하다. 예산은 찔끔인데다 그 방향성마저 잘못됐기 때문이다. 그나마 연구 결과가 지속 쌓이며 일부 성과를 이끌어 내기도 했다.
최근 '송악'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송악의 꽃에서 채집할 수 있는 꿀의 양이 아카시아보다 8배 이상 높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면서다. 잡초로 취급받던 쇠비름은 언제부턴가 건강 채소로 인기가 높다. 제주 토종 고추는 태국 고추와 교배를 통해 청양고추로 재탄생했다. 감귤·키위 등 분야에서 신품종이 개발·보급되며 외국산을 대체하고 있다. 우리 산야에서 자라는 자생식물의 가치가 무궁무진하다는 방증이다. 자생식물을 보전·복원하고, 활용도를 높여가야 하는 이유다. 지속적인 연구와 정부·지자체의 전략적인 지원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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