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한라산국립공원 '흉물' 불법 철탑 혈세 들여 철거

제주 한라산국립공원 '흉물' 불법 철탑 혈세 들여 철거
민간사업자 무선기지국 오름 중턱 6년째 무단 점유
해당 법인 해체로 자진 철거 명령 이행 대상도 사라져
가치 있는 장비들 회수… 쓸모없는 고철만 오름에 남겨
  • 입력 : 2024. 06.03(월) 20:00  수정 : 2024. 06. 04(화) 20:54
  • 이상민기자 has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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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국립공원에 속한 제주시 용강동 개오리오름 중턱을 6년째 불법 점유하고 있는 철탑 모양의 무선기지국 설비. 철탑 기둥 사이로 뿌리를 내린 나무가 구조물에 막혀 성장을 멈춘 듯 하다. 강희만 기자

[한라일보] 한 민간 사업자의 무선기지국이 한라산국립공원에 속한 오름 중턱을 수년째 불법 점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사업자 측은 무선기지국 설비 중 돈되는 것만 골라 회수하고, 고철이나 다름 없는 수톤 짜리 나머지 설비는 오름 중턱에 그대로 방치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자진 철거를 요구할 방법이 없어 세금을 들여 치워야 할 판국이다.

지난 2일 찾은 제주시 용강동 개오리오름(견월악). 비포장도로를 따라 오름 정상 쪽으로 가자 하늘을 찌를듯한 수십 미터 철제 구조물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국유림이자 한라산국립공원에 속한 개오리오름은 통신·방송 목적의 무선기지국 설비가 집중 조성된 오름 중 하나로, 설치 갯수로만 따지면 도내 오름 중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철탑 모양의 무선 기지국 주변마다 일반인 출입 통제 목적의 울타리 또는 대문과 함께 설치 주체와 소유주를 알 수 있는 표시판이 있지만 오름 중턱에 있는 유독 한 개 철탑에만 그런 팻말이 없었다.

높이 10m 남짓의 이 철탑은 군데군데 녹이 슬어 있고, 주변엔 잡초가 무성했다. 또 철탑 기둥, 기둥 사이로 뿌리를 내린 어린 나무는 하늘을 향해 뻗어가다 구조물에 막힌 탓인지 더이상 자라지 못하고 성장을 멈춘 듯했다. 눈에 띄는 또다른 특징은 다른 무선기지국 설비와 달리 이 철탑 구조물에는 원반 모양의 안테나 등 주요 장비가 달려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또 철탑 바로 옆에는 마찬가지로 벌겋게 녹이 슨 철제 컨테이너 2개동이 흉물스럽게 방치돼 있다.

취재 결과 이 철탑과 컨테이너 2개동은 A업체가 지난 2009년 제주시의 허가를 받아 오름 84㎡에 설치한 통신 목적 시설물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불법 시설물로 전락해 년째6 오름 중턱을 무단 점유하고 있다.

개오리오름에 설치된 방송, 통신 목적의 무선기지국들. 사진에서 맨 왼쪽에 있는 철탑 모양의 무선기지국이 6년째 오름 중턱을 무단 점유한 시설물로 조만간 강제 철거된다. 강희만 기자

국유림의 경영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방송·통신 목적 시설은 5년마다 허가를 갱신하는 조건으로 국유림에 설치해 사용할 수 있지만 A업체는 2019년 허가 기간 만료 후 이런 갱신 절차를 하지 않았다.

시는 2019년 6월 A업체에 철탑 등을 자진 철거하라고 명령했지만 6년 째 이행되지 않았다. A업체 법인이 해산하면서 자진 철거 명령을 내릴 대상도 함께 없어졌기 때문이다.

시는 법인이 사라졌어도 최초 설치 허가 신청이 당시 대표이사인 B씨 명의로 돼 있기 때문에 B씨에게 무단 방치의 책임이 있다고 보고 B씨에게 연락해 철거를 촉구했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최근 법률 자문에서 B씨에게 자진 철거 명령을 내릴 수 없다는 유권해석이 나왔기 때문이다. 결국 시는 철탑과 컨테이너를 강제 철거하기로 결정하고 행정대집행을 예고했다. 행정대집행법에 따라 집행에 소요되는 비용은 원인 제공자가 내야 하지만, 이번 사례에선 청구 대상자가 없어 세금만 낭비하게 됐다.

강제 철거 대상인 철탑과 컨테이너는 값어치가 없는 고철 덩어리나 다름없다. 시는 A업체가 법인 해산을 전후로 자산 가치가 있는 무선기지국 주요 장비는 모두 회수하고 쓸모 없는 철제 구조물만 남겨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시 관계자는 "예전 사진과 비교해보니 (A업체 측이) 값 나가는 것들은 이미 다 떼어간 것 같다"며 "현재로선 (법인 해산으로) 소유자를 특정할 수 없어 행정대집행 계고서 수신인에 '미상'으로 기재할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상민기자 has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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