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이다 어두운
황혼이 내린다 서 있기를
좋아하는 나무들은 그에게로
불어오는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으며
있고 언덕 아래 오두막에서는
작은 사나이가 사립을 밀고
나와 징검다리를 건너다 말고
멈추어 선다 사나이는 한동안
물을 본다 사나이는 다시
걸음을 옮긴다 어디로?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삽화=배수연
이쯤에서 황혼이 내린다는 것은 참 좋은 소식이다. 사물과 존재들이 하루 동안의 움직임을 가만히 내려놓을 수 있고 사느라 이리저리 뚫린 빈틈을 메워 주는 저녁이라는 너른 물줄기 안에 크고 작은 종소리 같은 인간의 말들도 모아 내려보낼 수 있다. 황혼은 어두울 수밖에 없는 시샘이나 질투나 괴로움 같은 감정들을 다독이고 우연이나 변수 같은 것으로 바람 잘 날 없는 나무도 잘 서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준다. "어두운 황혼"은 양초를 받쳐들고 있는 분위기다. 황혼은 알 수 없는 "작은 사나이"가 시를 쓰듯 걸음을 옮기며 징검다리가 있는 얕은 물빛에 속마음을 조금 비춰보는 것까지도 지켜준다. 어느 문학상 수상의 자리에서 최하림 시인은 이런 말을 했다. "저는 담장을 튼튼하게 하고, 그 속에서 개인적으로 살고 싶습니다. 개인이 확실하게 존재하지 않고 개인이 행복하지 않은 공동체는 의미를 잃습니다." 작은 사나이는 진실된 마음이 통하는 곳으로 간다. 개인이라는 생각도 잊어버린 채, 아마도 그가 한 페이지씩 넘기고 있는 단단한 시 속으로 깊이.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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