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인천 모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발생한 전기차 화재 현장. 연합뉴스
[한라일보] 제주지역 지하주차장에 설치된 전기차 충전기가 400개가 넘는 것으로 파악됐다.
전기차 화재는 진압이 어렵고 또 지하에서 발생할 경우 협소한 구조 특성 상 대규모 피해로 이어질 수 있지만 현행법 상 전기차 화재 전용 진화 장비 설치를 강제하는 규정이 없다.
이런 이유로 타 지자체는 전기차 화재 진화 장비 설치를 유도하도록 조례를 제정해 설치 비용을 지원하고 있지만 정작 전기차 선도 도시라는 제주엔 지원 근거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7일 제주특별자치도 등에 따르면 제주도소방본부는 지난달 31일 각 소방서에 공용 전기차 충전기가 설치된 지하주차장을 전수 조사해 진입로 높이, 주차장 넓이 등을 파악하고 그 내용을 기입한 카드를 만들어 관리하라고 지시했다. 조사 대상은 건물 지하에 전기차 충전기를 구축한 44곳으로, 총 설치 대수는 441개다.
소방본부는 지하에서 전기차 화재가 발생하면 진화가 어렵기 때문에 효율적 대처를 위해 조사에 나선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교롭게도 전수 조사가 시작된 다음날 인천 모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전기차 화재가 발생해 차량 140여대가 불에 타고 23명이 다치는 등 큰 사고가 일어나면서 전기차 화재에 대한 불안이 커졌다.
전기차에 사용되는 리튬이온배터리는 불이 나면 순식간에 온도가 1000℃까지 치솟는 열폭주 때문에 진화가 힘들다. 소방당국은 전기차 화재가 발생하면 산소를 차단하는 질식소화 덮개를 덮은 뒤 차량 주변에 울타리처럼 틀을 둘러쳐 수조를 만들고 그 안에 물을 채워 불을 끄는 '이동식 수조'를 동원한다. 차량 전체를 물에 잠기게 해 치솟은 열을 떨어뜨리는 방식이다.
전기차 화재가 층고가 낮고 차들이 밀집한 지하주차장에서 발생한다면 진화는 더욱 어려워진다. 소방본부에 따르면 펌프차가 지하주차장에 들어 가려면 진입로 높이가 최소 3m는 돼야한다. 또 이동식 소화수조를 펼치려면 최소 가로 4m, 세로 8m의 공간이 있어야 한다. 인천 전기차 화재에서는 이런 조건들을 충족하지 못해 소방차가 진입할 수 없었고, 이동식 수조도 펼칠 수 없었다.
현재 소방설비 기준을 정한 '소방시설 설치 및 관리에 관한 법률'과 전기차 충전시설 설치 규정을 담은 '환경친화적 자동차의 개발 및 보급 촉진에 관한 법률'에는 전기차 화재 전용 소화 장비 구비 규정이 없다.
소방본부는 이런 법적 한계로 올해 1월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신규 건축물에 한해 전기차 충전시설을 가급적 지상에 두고, 부득이 지하에 설치할 경우 불에 잘 타지는 않는 방화구획과 전기차 화재 진화에 필요한 소화 수조를 설치하도록 권고하고 있지만 말 그대로 권고여서 강제성이 없다.
조례도 마찬가지다. 올해 4월 개정 시행된 '제주전기차활성화조례'는 충전시설 지상 설치와 화재안전설비 설치를 권고만 하도록 규정됐다. 소화 수조 1대 당 가격은 800만원으으로 건축주가 권고를 지키려면 추가 비용을 감내해야 한다.
반면 인천시는 조례로 전기차 화재 안전 설비 설치 비용을 지원하고 있다. 인천시는 이 조례에 따라 내년까지 모든 아파트에 질식소화 덮개를 보급할 예정이다.
도 관계자는 '전기차 화재 진압 장비 구입비 지원 계획이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 "현재로선 답변하기 힘들다"고 했다. 한편 제주에 설치된 공용 전기차 충전기는 8000여대, 전기차 비중(실제 운행 기준)은 9.09%로 전국 1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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