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한 충전기에 '고장'…제주 공공기관도 전기차 '공포'

멀쩡한 충전기에 '고장'…제주 공공기관도 전기차 '공포'
삼도1동주민센터 정상 작동 충전기에 거짓 고장 표시
"우리도 불안해서…" 제주도에는 폐쇄·이설 검토 요청
건물 내부 충전기 구축 공공기관 진화 전문 설비 전무
  • 입력 : 2024. 08.08(목) 17:28  수정 : 2024. 08. 12(월) 12:42
  • 이상민기자 hasm@ihalla.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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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도1동주민센터 지하주차장에 조성된 전기자동차 전용 주차구역. 주차장 벽에 설치된 완속충전기에 '고장'이라고 적힌 A4용지가 붙어있다. 이상민 기자

[한라일보] 전기차 공포증(포비아)이 도내 공공기관으로 번지고 있다.

본보 취재 결과 도내 한 공공기관은 전기차 화재 불안이 커지자 지하주차장에 있는 멀쩡한 충전기에 '고장' 딱지를 붙여 민원인들이 전기차를 충전하지 못하게 꼼수를 쓰는가 하면, 문제의 충전기를 없애거나 다른 곳으로 옮겨달라고 제주도에 요청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이처럼 건물 내부에 충전기를 구축한 도내 공공기관 중 전기차 화재용 진화 장비를 갖춘 곳은 단 한 곳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8일 찾은 제주시 삼도1동 주민센터 지하주차장. 주차장 맨 안쪽에 조성된 전기차 주차구역 두 곳 중 한 곳엔 일반 승용차가 세워져 있고, 나머지 한 곳은 텅 비어있다.

또 주차장 벽에 설치된 완속충전기에는 빨간 글씨로 '고장'이라고 쓴 A4용지가, 바로 옆 벽면에는 '고장, 수리 요청 중'이라고 적힌 또다른 A4용지가 각각 붙어 있다.

그러나 해당 충전기는 정상 작동하는 멀쩡한 것이다. 지난 1일 인천 지하주차장 전기차 화재로 전기차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주민센터가 전기차를 충전할 수 없게 충전기가 고장났다고 거짓 표시한 것이었다.

주민센터 관계자는 "평소에도 고장이 잦긴했지만 현재 해당 충전기는 정상 작동된다"며 "전기차 화재 우려가 커지다보니 (예방 차원에서) 고장난 것처럼 표시했다"고 시인했다.

전기차에 사용되는 리튬이온배터리는 불이 나면 순식간에 온도가 1000℃까지 치솟는 열폭주 때문에 진화하기 힘들다. 더욱이 전기차 화재가 층고가 낮고 차들이 밀집한 지하주차장에서 발생한다면 진화는 더욱 어려워진다.

진입로 높이가 최소 3m 이상이어야 소방차가 주차장에 들어갈 수 있고, 진화 전문 장비인 이동식 수조는 최소 가로 4m, 세로 8m의 공간이 확보돼야 가동할 수 있다.

삼도1동 주민센터 지하주차장 진입로 높이는 2.1m, 주차면과 반대 주차면과의 거리는 2m 남짓으로, 화재 시 소방차 진입은 불가능하고 이동식 수조도 펼칠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삼도1동 주민센터는 지하주차장 전기차 충전구역이 애물단지처럼 여겨지자 전날 제주도에 충전기를 없애거나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이 가능한지 검토해달라고 요청했다. 도 관계자는 이런 요청에 대해 "삼도1동 주민센터가 스스로 결정할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삼도1동 주민센터가 자체 예산으로 전기차 주차구역·충전기를 폐쇄·이설하는 것도 쉽지 않다.

전기차 주차구역과 충전기를 폐쇄하면 2030년까지 전기차 비중 100%를 목표로 보급에 앞장선 제주도정 정책에 역행한다는 비판에 직면하고, 그렇다고 지상으로 옮기면 가뜩이나 모자란 일반 차량 주차구역이 줄어든다.

삼도1동 주민센터 외부 지상 주차 구역 중 전기차, 장애인 전용 구역을 제외하면 일반 차량이 세울 수 있는 주차면은 세 개에 불과하다.

나머지 공공기관도 전기차 화재 공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제주도에 따르면 지하 또는 건물 지상층 내부에 전기차 전용 주차구역과 충전기를 설치한 공공기관은 모두 17곳이다.

서귀포시청이 지하주차장에 충전기 5대를 설치해 가장 많고, 제주시청 별관 지하에도 3대가 구축돼 있다. 이들 17곳 공공기관 중 전기차 화재 진화용 질식소화 덮개나 소화 수조를 갖춘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제주도가 지난 4월 조례를 개정해 도지사가 전기차 전용 주차구역과 충전시설에 대한 화재 안전 설비 설치를 권고할 수 있도록 했지만 정작 공공기관조차 권고를 따르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도 관계자는 '공공기관도 권고를 이행하려고 하지 않는데 민간에게 화재 안전 설비 설치를 독려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공공기관부터 솔선수범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한편 제주도는 8일부터 도내 공공기관에 구축된 전기차 충전기를 점검하고 있으며, 현재 도내 전기차 운행 비중은 9%로 전국 1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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