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한라산 정상이 지척인 곳, 해발 1000m 가까이 되는 능화오름(고도 975.5m)이다. 원시림을 연상케 하는 삼림지대가 광활하게 펼쳐져 있다. 이곳은 일반인들에겐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예전 한라산 등정로이자, 19세기말 민란의 시기엔 제주 역사와 깊은 관련이 있다. 능화오름 일대는 행정구역상으로는 제주시 오라2동, 한라산국립공원 내에 위치한다. 입산허가를 받아야 출입할 수 있는 곳이다.
화전 특별취재팀이 능화오름 일대를 찾은 것은 지난 8월 14일이다. 지난해 11월에 이은 조사다. 취재팀은 정상부 아래 분지에서 화전 마을 주민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집터와 흔적들을 찾아냈다. 사람들이 떠나고 잊혀진지 1세기 이상 지났지만 화전민들의 흔적은 생생했다. 주거·생활상을 보여주는 집터와 통시(화장실), 빗물을 모으고 사용했던 인공연못(집수정) 등이 뚜렷하게 잘 남아있다. 문헌으로 전해지는 능화동 화전 마을 현장이 드러났다.
'제주군읍지 제주지도' 상의 능화오름 화전동(붉은 원).
집터는 규모가 기다란 직사각형(9m×4m) 구조다. 돌을 다듬지 않고 외담으로 담장을 쌓았다. 담장은 일부 허물어졌지만 높은 곳은 1.5m쯤 된다. 사람들이 드나들었던 출입구(너비 1.2m)는 가지런히 쌓아 올린 모습이다. 사람들이 떠난 지 오래여서인지 내부는 조릿대가 무성하고, 썩은 나뭇가지와 허울어진 돌담들이 흩어져 있다. 내부 바닥에서 시설이나 구조물을 확인하기가 어려운 상태다.
이곳과 남쪽으로 20여 m 떨어진 곳에 보다 규모가 작은 또 다른 집터(5.2×3.8m 크기)가 있다. 외담으로 담장을 쌓았으며 일부 허물어진 상태로 있다. 현재 남아있는 집담 높이는 1.3m 정도다. 화전민들이 사용했던 통시는 집터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허물어졌지만 통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집터 주변으로는 조릿대가 무성하고, 키 큰 나무들이 듬성듬성 자라고 있다.
잊혀진 100여 년 전 삶의 현장
눈길을 끄는 것은 빗물을 한 곳으로 모으고 이용했던 인공연못이다. 인공연못은 집터에서 동쪽 방향에 자리하고 있다. 주변은 전체적으로는 능화오름 정상부 아래여서 경사가 져있고, 바로 옆으로는 탐라계곡의 깊은 단애가 수직으로 뻗어 내린 곳이다. 제주시내를 관통하는 한천 상류지점으로 바닥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깊다.
능화오름 능화동 화전 마을에 남아있는 인공연못(집수정)을 취재팀이 조사하고 있다.
연못은 거의 원형 구조로 크기는 직경 9m, 깊이 1m 정도다. 지표면을 파내서 별다른 시설 없이도 경사지를 따라 자연스럽게 빗물이 모여지도록 된 구조다. 연못 둘레로 진흙층이 드러나 있는 것을 보면 물이 쉽게 빠지지 않는 토양 특성을 파악하고 이용했다. 바닥의 퇴적층을 일부 걷어내자 스며들어있던 물이 드러난다. 이곳에 빗물이 모이면 상당기간 물 빠짐이 없이 이용이 가능했을 것으로 보인다. 해안변 마을 지대와는 다른 자연환경과 척박한 토양 조건 속에 살아야 했던 화전민들의 애환과 삶의 지혜를 볼 수 있는 공간이다.
이곳 능화오름 화전마을은 한말인 1899년(광무 3) 5월에 제작된 '제주군읍지 제주지도'에 표기된 9곳의 화전동(火田洞) 가운데 한 곳이다. 지도에 표시된 것처럼 이곳은 남쪽으로 두리봉(斗里峯)을 비롯 주변이 소두리봉(小斗里峯), 능화오름(菱花峯, 971.7m), 천산림(千山林)으로 둘러싸인 분지를 이루고 있다. 두리봉은 큰두레왓(1630.7m), 소두리봉은 족은두레왓(1343m)이라 불린다. 말 그대로 하늘아래 첫 동네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능화동 화전 마을 집터 단면. 외담 형식으로 쌓아올렸다. 특별취재단
제주에는 '한라산 아래 첫 마을'로 불리는 마을이 있다. 안덕면 광평리의 경우도 화전이 행해지던 마을이다. 해발 500m 지대에 위치하고 있어서 '한라산 아래 첫 마을'이라 했다. 고도상으로나, 지리적 여건으로 보면 능화동 화전마을은 이와는 다르다. 그만큼 고지대이자 오지에 위치해 있기도 하다.
옛 한라산 등정로변에 마을 자리
'제주군읍지 제주지도'에 표기된 9곳의 화전동은 대부분 넓은 개활지에 위치하고 있다. 이와 달리 능화동은 유일한 분지형 화전마을이다. 조선시대 국영목장인 10소장 가운데 한천을 경계로 한 3소장과 4소장 경계지점, 상잣성 위쪽에 자리하고 있다. 이는 국영목장을 넘어선 산간지대에서도 화전이 이뤄지고, 화전 마을이 자리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한라산 고지대에 위치한 조릿대 속 농화동 화전 마을의 집터. 직사각형 구조로 10여 평 정도 된다.
이곳은 한라산 등정을 위해 오르던 옛 등정로와도 연관돼 있다. 탐라계곡(한천)을 끼고 있는 능화오름 위쪽으로는 큰두레왓-삼각봉-장구목-서북벽으로 해서 한라산 정상까지 이를 수 있다. 예전 한라산 북쪽 등정로와 거의 일치한다. 한라산 북쪽 등정로는 제주목을 출발하여 한천변을 따라 방선문과 탐라계곡으로 해서 백록담을 오르는 코스다. 이 코스를 이용해 19세기 중후반 제주목사 이원조(1792~1871)와 제주에 유배된 최익현(1833~1906) 등이 1841년, 1875년 각각 한라산을 올랐다.
일제 강점기 일본인 학자가 한라산 등정에 나서면서 능화동 화전 마을에서 묵었다는 기록도 있다. 이치카와 상키(市川三喜)는 1905년 한라산 정상등반과 채집에 필요한 물품을 구하기 위해 능화동을 방문했다. 그리고 '濟州島紀行'(1905)을 통해 방문 기록을 남겼다. 상당기간 능화동 화전 마을이 유지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산악인들에 따르면 한라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기 이전까지는 이 코스를 이용해서 등정에 나서기도 했다고 한다. 1970년 3월 한라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고, 차츰 정규 코스 이외에는 통제가 이뤄지면서 잊혀져갔다. 고지대인 능화오름 기슭에 화전마을이 형성된 것도 이 같은 입지 여건과 무관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조릿대 속에 묻혀있는 화전 마을 흔적은 그 지난한 흐름과 삶을 말없이 보여주는 현장들이다.
<특별취재단=이윤형 선임기자·백금탁 정치부장·진관훈(제주문화진흥재단)·고재원(제주문화유산연구원)·오승목(다큐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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