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놓고 오영훈 제주지사와 검찰이 벌인 법정 공방이 1년 10개월여 만에 오 지사의 판정승으로 끝이 났다. 검찰은 오 지사가 불법 선거운동의 최대 수혜자로 선거캠프를 동원해 계획·조직적으로 범행을 했다며 당선 무효형에 해당하는 징역 1년 6개월을 구형했지만 1~3심 법원 모두 이런 주장을 대부분 받아들이지 않고 일부 공소사실만 유죄로 인정해 벌금 90만원을 선고했다. 이번 확정 판결로 검찰은 무리한 기소였다는 비판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또 오 지사는 사법리스크에서 벗어나 도정 운영에 전념할 수 있게 됐지만 유무죄 판결을 떠나, 도덕적 책임에선 자유로울 수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경선 과정에서 오 지사 선거캠프 핵심 참모들이 각종 단체의 지지선언을 주도하는 등 불법 선거운동을 벌인데다가, 재판의 최대 쟁점이었던 '상장기업 20개 만들기 협약식'의 경우 상장 가능성이 희박한데도 오 지사의 공약 홍보를 위해 기업들이 동원되는가 하면, 또 선거캠프가 거짓 보도자료를 배포하는 등 재판 과정에서 퇴행·불법적 선거 운동 행태가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 검찰 무리한 기소였나=검찰은 오 지사가 지난 2022년 전국동시지방선거 과정에서 공식선거운동 기간 전인 그해 5월 16일 자신의 선거사무소에서 정모 제주도 중앙협력본부장과 김모 대외협력특보, 도내 비영리법인 대표 A씨, 경영컨설팅업체 대표 B씨와 공모해 '상장기업 20개 만들기' 공약 홍보를 위한 협약식을 개최하고 언론에 보도되게 하는 방법으로 사전 선거운동을 했다고 공소사실에 적시했다. 상장기업 20개 만들기는 오 지사 핵심 공약 중 하나다.
검찰은 상장기업 20개 만들기 협약식을 불법 선거운동으로 지목한 이유로 협약을 체결한 기업들이 상장 가능성이 희박한 점, 행사 당일까지 참여 기업들도 협약식이 열리는 줄 몰랐던 점, 오 지사가 행사장에서 자신의 공약을 언급한 점 등을 들었다.
당시 행사 목적이 상장 기업 육성을 위한 협약 체결에 있던 것이 아니라, 오 지사의 공약을 홍보하기 위한 선거운동이었고, 또 협약 체결 기업들은 이런 사전선거운동에 동원됐다는게 검찰 측 주요 논리였다.
또 검찰은 당시 협약식 개최 비용을 A씨가 자신이 대표로 있는 사단법인 자금으로 지급한 것도 부정한 방법으로 오 지사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한 것에 해당한다며 오 지사와 A씨에게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이와 함께 검찰은 오 지사 캠프 측이 더불어민주당 제주지사 후보 경선 과정에서 지지선언관리팀을 꾸려 제주대학교 교수와 어린이집 보육교사·121개 직능단체·2030청년세대 등 5개 단체의 지지선언을 주도하는 등 불법 경선운동을 벌였다고 주장했다.
1심에 이어 2심, 대법원까지 재판부는 검찰 측 주장대로 '상장기업 20개 만들기' 협약식과 각종 단체의 지지선언이 불법 선거운동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또 A씨가 협약식 개최 비용을 낸 것도 정치자금법 위반죄라고 결론냈다.
그러나 오 지사의 공소사실은 대부분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오 지사가 불법 선거운동을 주도했다는 검찰 측 주장에 대해 일관되게 "증거가 없다"고 했다.
공소사실 중 유일하게 받아들인 협약식을 이용한 공약 홍보, 즉 사전선거운동 혐의에 대한 판단에서도 재판부는 "오 지사가 협약식 개최를 직접 지시하거나 사전에 캠프 참모진으로부터 미리 보고 받은 증거가 없고, 행사 당일 날에서야 공약 홍보 목적으로 협약식이 치러진다는 사실을 인지한 것으로 보인다"며 적극적 관여가 아닌 '미필적 고의'만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오 지사가 선거캠프를 동원해 계획·조직적으로 범행을 했다'는 검찰의 주장을 깨고, '검찰이 증거 없이 상상력을 동원해 공소사실을 꿰맞췄다'는 오 지사 측 주장에 손을 들어줬다.
재판 출석 후 법원 나서는 오영훈 제주지사. 한라일보DB
▶사법리스크 벗어났지만 정치적 책임론 여전=오 지사는 벌금 90만원 확정 판결로 사법 리스크에서 해방됐지만 나머지 피고인들은 벌금 100만원 이상을 선고 받아 앞으로 5년간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박탈 당하고 공직에도 임용될 수 없다. 오 지사는 도정에 전념할 동력을 얻었지만 불법 선거 운동을 주도한 선거 캠프 참모를 그동안 주요 공직자로 임명해 도정을 이끌어 왔다는 점에서 정치적 책임론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오 지사 선거 캠프가 거짓 보도자료를 배포해 사실을 호도했다는 점도 논란거리다. 선거캠프 측은 지난 선거 때 보도자료를 통해 '오 후보가 상장기업 20개 만들기 업무협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지만, 정작 공판에서는 오 지사 측은 협약에 관여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고 당시 협약서에도 서명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오 지사는 협약식에서 "상장기업 20개 만들기 프로젝트는 제주와 청년의 미래를 위해 누군가가 나서 해야 할 일이며, 지금부터 반드시 실현해야 할 현안 과제"라며 "제가 발로 뛰면서 직접 보여드리겠다"고 강조했지만, 협약식 참여 11개 업체 중 상장 가능성이 있는 업체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협약 참여 업체 중에 1인 기업, 연매출액이 1억원이 안되는 기업, 심지어 대표가 사기꾼인 기업도 있었으며 오 지사도 법정에서 이런 문제를 인정했다.
아울러 캠프 측은 보도자료를 통해 제주 이전을 희망하는 수도권 기업들이 협약에 참여했다고 밝혔지만, 정작 수도권 기업 대표들은 법정에서 제주 이전 계획이 없다고 증언했다.
선거 캠프 측이 오 지사를 지지한 보육교직원 숫자 조정에 개입하고, 지지 선언 날짜를 임의로 바꾼 보도자료를 배포한 사실도 재판을 통해 드러났다. 게다가 재판에 출석한 한 증인은 지지선언 목적이 후보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라며 퇴행적 줄서기 선거 문화를 여과없이 증언하기도 했다.
좌광일 제주주민자치연대 대표는 "오 지사는 혐의 대부분에 대해 무죄 선고를 받았지만 일부 유죄로 인정된 벌금 90만원 판결에 대해선 도민들 앞에서 허심탄회하게 사과해야 할 것 같다"며 "또 세 과시용 지지선언과 줄서기 선거 문화 등 퇴행적 선거 병폐에 대해서도 우리 사회가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되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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