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어의 흔적이 배어있는 넙게오름 지명
[한라일보] 서귀포시 안덕면 서광리에 있다. 17세기말 탐라도에 잉읍거악(仍邑居岳)이라 기록한 이래 여러 이름이 검색된다. 지금까지 기록상으로 나타나는 이름은 모두 열 가지다. 이들 중 광거리(廣巨里), 광거악(廣居岳), 광해산(廣蟹山), 넓게오름, 넙게오름의 5개가 같은 기원 지명어이고, 나머지는 다소 이질적인 이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중 백악(魄岳)이 별도의 이름이며, 잉읍거(仍邑居)와 잉읍거악(仍邑居岳)이 또 같은 기원어로 구분할 수 있다. 널개악 혹은 널개오름도 이질적이다. 나머지 하나는 광쳉이오름으로 상당히 독립적인 이름이다.
넙게오름 중턱에 있는 '넓게물', 얕은 못을 깊게 파고 석축을 쌓았다.
한자 이전 이름이 오래된 이름이라고 본다면 널개오름이 시초일 것이다. 넙게오름도 이른 시기의 이름으로 추정할 수 있다. 넓게오름은 '넙'이 '넓'이라는 뜻에서 온 것으로 보고 쓴 이름일 것이다. 광거리, 광거악, 광해산의 '광(廣)'은 '넙'이 '넓다'의 뜻을 갖는 것으로 보고 차용한 한자다. 다만 광거리(廣巨里)의 '거리(巨里)'는 '거'와 이중모음 '게'의 'ㅣ'를 표기한 것이거나 넙거리로도 불렀을 수 있다는 걸 시사한다. 광해악의 '蟹(해)'는 '게 해'자다. '게'라는 발음을 나타내려고 한 훈가자 표기 방식으로 쓴 것이다. 따라서 이들 광거리(廣巨里), 광거악(廣居岳), 광해산(廣蟹山) 등은 모두 넙게오름이라는 뜻이다.
잉읍거(仍邑居), 잉읍거악(仍邑居岳), 사실 이 한자 '仍'은 오늘날의 사전에는 '잉'으로 읽는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고대 지명 표기에서는 '넙, 너, 느, 넉'으로 읽는다. 간혹 '잉(芿)'도 같은 뜻으로 사용했다. '잉(芿)'은 고대에서는 발견되지 않고 중세국어 문헌에서 발견된다. 대신 '잉(仍)'은 고대에서만 발견된다. 17세기 탐라도 저자가 현존하지 않는 어떤 책을 참고했다면 백제 등 고대부터 이런 기록이 있었거나 아니면 중세국어로는 이런 기록이 있는 유일한 문헌이 될 것이다.
서광동리에서 설치한 넓게물 표지석, 나름의 유래를 설명했다.
'넙'은 '널', 개는 '갈'에서 기원
잉읍거(仍邑居)의 잉(仍)은 '너', 읍(邑)은 'ㅂ'을 나타내므로 잉읍은 '넙'이 되고 '거(居)'와 함께 넙거(오름)를 표기한 것이다. 따라서 이 표기는 '넙거'라고 읽어야 한다. 백악(魄岳)이란 지명은 '魄(백)'이 넋을 뜻하므로 역시 '넙'을 나타내고자 한 표기다.
그렇다면 '넙게오름'은 과연 '넓-'에서 기원한 말인가? 이 오름은 여타의 오름에 비해서 넓다고 할 만큼 넓은 오름이 아니다. 그리고 딱히 '게' 같다고 할만한 모양도 아니다. 그런데도 '넓고 게 같은 모양의 오름'이라고 설명한다. 어떤 책에는 '게'를 '케'로 해석했다. '케'는 나무나 잡풀들이 있는 일정한 지대라고 부연했다. '케'란 한국문화사 출간한 제주말 큰사전에는 '곳을 나타내는 말과 결합하여 근방, 일대, 도량'이라 풀었다. '나무나 잡풀…' 같은 뜻은 없다. 만약 이런 풀이가 맞는다 해도 '넓은 케'란 '넓은 나무나 잡풀들이 있는 지대'가 되어 이 오름의 특성과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 된다. 사실 제주어 '케'란 '~곳', '장소' 등을 나타내는 말이다. 아이누어 기원이다. 제주말 큰사전의 풀이와 잘 맞는다. 예컨대 오라2동에 은물케라는 곳이 있다. 은물이란 샘을 지시하는 고어다. 그러므로 은물케란 '샘이 있는 곳'이라는 뜻이다.
이 오름은 넓지도 게 같지도 않다. 그런데도 넙게오름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그 기원이 다른 데 있다는 뜻이다. 이걸 추정해 볼 수 있는 말이 널개오름이다. 물론 널게오름이라도 괜찮다. 제주도 사람들은 개를 게라고 흔히 발음한다. 넙게오름의 '넙'은 '널'에서 온 것일 것이다. '널'이란 얕은 물을 가리키는 '노르>널'에서 온 말이다. 개는 '갈>가'에서 기원한 말일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한경면 판포리에 있는 널개오름과 일치하는 이름이다. 얕은 물과 골짜기가 있는 오름이라는 뜻이다.
관전동 표석, 관전동을 '관에서 관리하던 땅'에서 유래한 지명이라 설명했다.
서광리·동광리·자단리·광청리·관전동 모두 여기서 분화
한편, "서광리는 본래 자단이, 자단리(自丹里) 또는 광청이, 광쳉이(光淸里) 지역이다. 18세기 중반에 동서로 분리되면서 광청이의 서쪽이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동광리는 한때 자단리에 속했다가 19세기 후반에 광청리로 개명된 다음 1910년경 광청리가 서광리로, 동광청리가 동광리로 개명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어느 인터넷사전 설명이다. 서광리와 동광리의 기원을 설명하는데 빠질 수 없는 지명들이 자단리, 광청이, 광쳉이, 광췡이, 광청리라는 지명들이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넙게오름을 현지에서는 '광쳉이오름'이라고 부른다. 이 말은 '광정이(廣井-)'에서 왔을 것이다. 현재 이 '얕은 물'의 상황을 보면 분명해진다. '노르'였던 것을 더 깊이 파고, 석축을 쌓아 우물을 만들었다. 그러므로 이 물은 넙게오름 우물이라는 뜻으로 '광정(廣井)'이라고 불렀을 것이다. 이 말은 격음화를 거쳐 '광청이>광쳉이'라고도 불렀을 것이다. 이런 추정으로 과거의 언어를 복원하는 것을 '언어학적 재구'라고 한다. 이 오름 가까이 있는 관전동이라는 지명은 '광정(廣井)'이 전승하는 과정에서 변하고 변하여 관전으로 바뀐 것일 것이다.
그럼 자단이 혹은 자단리는 어디서 왔나? 몽골고어에 못(pond) 혹은 물통(pool)을 '자다'라고 한다. 몽골문어, 칼미크어, 오르도스어 등 몽골어계의 여러 언어에서 유사하게 쓰인다. 그러므로 얕은 물을 지시하는 '노르'라는 말을 '넙'이라는 말에 흔적을 남긴 퉁구스계, 못이나 물통을 지시하는 '자다'라는 말을 '자단리'에 흔적을 남긴 몽골어계의 유산이라 할 수 있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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