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굽형분화구 너머의 곶자왈에는 골프장 조성공사가 한창이다./사진=강경민기자 gmkang@hallailbo.co.kr
‘도너리오름’
안덕면 동광리와 한림읍 금악리를 잇는 한창로에서 한창 공사 중인 블랙스톤골프장 남쪽으로 난 옆길을 따라 가면 도너리오름에 도달할 수 있다. 도너리오름은 산의 지세가 돌아서 흘러 내린 데서 이름이 유래하기도 하고 굼부리 바깥쪽이 넓게 벌어져 도(어귀)가 널찍하다는 데서 이름 붙었다고도 한다. 또한 돼지가 내려오던 곳이라고 해 돗(돝)내린오름이라고도 하며, 오름의 지세가 골체(삼태기 종류)와 같다는 데서 골체오름이라고도 한다.
오름을 오르기 위해 오름 북쪽에 다다르니 토석 채취로 능선이 휑하니 없어져 버린 모습을 먼저 보게 된다. 지난 80년대 초부터 건축자재로 이용하기 위해 합법적으로 토석을 채취한 후 복구시키지 않아 붉은 송이들이 드러나 있다. 복구시키지 않았다는 건 오름의 훼손상태가 더해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실제로 오름을 오르면 발 밑에서 송이가 ‘송이송이’ 흘러내리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말굽형 분화구 능선을 따라 오름 정상에 오르니 북쪽으로 제주 최대의 곶자왈이라 불리는 한수기곶이 한눈에 들어온다. 도너리오름은 한수기곶의 시발점이 되기도 하는데 오름분화구에서부터 해안마을까지 이어진다. 여느 곶자왈과 마찬가지로 이곳도 이미 인간의 손에 파괴되어 가고 있다. 지난해 완공돼 세계최고의 골프스타가 다녀갔다는 라온골프장이 들어선 데 이어, 최고급 시설을 갖췄다는 블랙스톤골프장도 막바지 공사가 한창이다. 요즘 건설되는 제주의 골프장은 하나같이 곶자왈지대에 들어서 있다. 마치 곶자왈을 파괴하려고 작정이나 한 것처럼.
오름 정상에서 남쪽을 향하니 또 하나의 분화구가 모습을 드러낸다. 북쪽의 말굽형분화구와 달리 원형분화구로 하나의 오름이 두개의 분화구를 지닌 특이한 형상을 갖추고 있다. 눈발이 휘날리는 추운 날인데도 북쪽 정상 밑의 분화구 쪽에는 온기가 넘쳐나 제비꽃 등이 피어 있다. 멀리서도 지열로 훈기가 넘쳐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오름을 내려와 4·3의 아픔이 서린 안덕면 동광리 큰넙궤를 찾아갔다. 철문을 설치해놨지만 자물쇠가 채워지지 않은 채 방치돼 있다. 아직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아 4·3유족회에서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동굴 속은 암흑과 침묵의 세계다. 눈을 감으나 뜨나 똑같은 이 동굴에서 동광리 주민 1백20여명이 목숨을 지키기 위해 50여일 이상을 숨어살았다. 그러나 이후 그들 대부분은 토벌대에 잡혀 총살됐다. 아직까지도 큰넙궤는 여전히 아무말 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특별취재팀
[탐사포커스]‘큰넙궤’…4·3 아픔 서린 동굴
큰넙궤(궤는 동굴이라는 뜻의 제주어)는 동광리에서 서북쪽으로 2.5km쯤 되는 곳에 있는 천연동굴로 4·3 당시 무등이왓(동광리) 사람 1백20여명이 50∼60일 동안 숨어 살았던 곳이다. 무등이왓은 1948년 이전만 해도 200여호가 넘는 큰 마을이었다. 300여년 전 관의 침탈로 쫓겨난 화전민들이 마을을 이뤄 수차례 농민 봉기를 일으킨 진원지이기도 하고 1946년에는 미군정의 곡물 수집정책에 항의해 마을 주민들이 보리공출반대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공출반대 운동 이후 유격대의 근거지와 가깝다는 이유로 탄압이 이어지고 무차별 학살과 방화가 시작됐다. 학살에 대한 두려움에 떨던 주민들은 “왜정 때 폭탄에도 끄떡하지 않은 큰 굴”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간다. 주민들이 이 굴을 찾았을 때는 이미 동광리 하동(아랫마을)에서 온 사람들이 숨어 지내고 있었다. 이들은 서로 의지하며 암흑 속에서 꺼져가는 자신들의 생명을 부지해나갔다.
나중에 이 곳은 토벌대에 의해 발견되었다. 주민들이 기지를 발휘해 겨우 목숨을 건진 후 대부분은 15Km쯤 떨어진 한라산 영실 근처의 볼래오름까지 피신했다. 볼래오름은 유격대의 활동 근거지였는데 마을 사람들은 유격대들과는 약간 떨어진 볼래오름 근처 초기(표고버섯)밭에서 주로 살았는데 피난민이라고 따로 취급받았다. 그러나 약 보름 후에 바로 이곳에서 토벌대의 추격을 받아 모두 잡혔다. 이들은 그 해 12월 24일 정방폭포 근처에서 모조리 총살됐다.
이때 희생된 이들을 위해 마을 근처에 봉분만 만들어 놓은 헛산(헛묘)이 생겼다. 동광 6거리 근처에는 시신 없는 무덤이 9기가 있는데 이들 중 2기는 부부합묘이다. 4.3 진압과정에서 마을을 떠났던 사람들은 대부분 죽고 살아남은 10여 가호 정도의 사람들이 1956년경에 마을을 재건하러 올라왔다. 그러나 번성했던 마을에 함께 살았던 사람들에 대한 쓰라린 기억 때문에 무등이왓을 버리고 현재의 동광리 하동으로 내려와 마을을 재건해 살고 있다.
<출처:이영권의 제주역사이야기 www.jejuhistory.com>
[전문가 리포트]도너리오름 주변의 식물들
도너리오름은 제주도 서부지역 중산간을 대표하는 ‘한수기 곶’의 모태가 되는 오름으로, ‘한수기 곶’은 북제주군 한림읍, 한경면, 남제주군 대정읍, 안덕면 등을 포함하는 청수곶, 저지곶, 서광곶, 월림곶 등으로 불리는 곶을 모두 아울러 불리우는 이름이다.
‘곶’이란 요즈음은 보통명사처럼 ‘곶자왈’이라 불리우는데 과거 중산간 부락에서는 이용이나 규모의 차이에서 ‘머들’, ‘자왈’, ‘곶’이라고 따로 불러 왔었다.
‘머들’이란 경작지나 목장에 경작과 목초지 조성을 위해 돌무더기를 쌓아 놓거나 용암류가 소규모로 분포하는 장소이며 ‘자왈’은 머들보다 규모가 크고 곶보다는 연속성이 없는 고립된 반점상 관목지나 숲을 ‘자왈’이라 부르고, ‘곶’은 부락 또는 면단위로 넓게 분포하는 숲을 ‘곶’이라 불렀다.
주로 ‘곶’은 소나 말을 방목하거나 인근 부락에서 필요한 목재, 땔감을 충당하는 장소로 이용되다가 산림보호와 연탄과 가스 등 취사연료의 변화로 현재와 같은 숲으로 생태적 천이 현상을 보이고 있다. 즉 초기에 찔레, 청미래덩굴, 쥐똥나무, 보리수나무, 꾸지뽕나무, 산딸기류 등 관목이 자리잡고 더 진행되면 예덕나무, 소태나무, 팽나무, 작살나무,곰솔 등 이차림이 형성되고 나중에는 원식생인 구실잣밤나무, 조록나무, 생달나무, 후박나무, 육박나무 등 상록활엽수가 분포한다.
도너리오름 주변 식물도 이와 유사하여 오름 주변은 쥐똥나무, 찔레, 산딸기, 청미래덩굴 등이 분포하고 말굽형 분화구 안쪽으로 들어 갈수록 윤놀이나무, 팽나무, 예덕나무 등 초기 수종들이 분포하고, 사람 손길이 닿지 않는 분화구 사면에는 아왜나무, 생달나무, 구실잣밤나무, 조록나무 등 상록활엽수들이 자라고 있다.
분화구 정상 부위에는 양치류의 일종인 부처손이 대규모로 분포하고 있고 한라산 아고산대 이상에만 분포한다고 알려진 ‘왜구실사리’가 도너리오름에 분포한다는 보고가 있어 탐색을 하여 보았지만 발견하지는 못하였다.
도너리 오름 주변 곶자왈은 동쪽지역의 곶자왈과 식생이 많은 차이을 보인다. 즉 동쪽 지역은 곶 속에 많은 습지가 분포하여 물부추, 제주고사리삼 등 희귀식물과 상록활엽수가 분포하고 있지만 서부 지역의 곶자왈은 투수가 잘되어 비교적 건조한 장소에 서식하는 세뿔석위, 더부살이고사리 등이 분포하고 있다. 또한 제주도 동쪽의 선흘곶에서 세계에서 유일하게 제주도에만 자생하는 ‘제주고사리삼’이란 식물이 근래에 조사되어 보고되고 있는 등 곶자왈을 대상으로 분포하거나 서식하는 동식물에 대한 정확한 조사도 시급하다.
과거는 이용가치가 없어 버려진 장소에서 생성된 숲이 오히려 현재와 같은 곶자왈로 남아 제주의 경관과 수자원함양, 희귀동식물의 분포지, 생태학습원 등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는데 도너리 오름 정상에서 바라본 모습은 중간 중간 파헤쳐진 모습이 사뭇 애처롭다. 과연 지방세 얼마와 소수의 사람들이 즐기는 스포츠를 위하여 후대에 물려줄 중요한 자산을 훼손할 가치가 있는지 정책 입안자와 허가권을 가진 분들의 냉정한 통찰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강영제 탐사위원(난대산림연구소/식생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