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머스 해리스의 소설을 영화로 옮긴 살인마 캐릭터인 '한니발 시리즈'는 앤서니 홉킨스가 열연한 '양들의 침묵'(1991)을 시작으로 '한니발'(2001), '레드 드래곤'(2002) 등으로 이어졌다.
피터 웨버가 연출한 '한니발 라이징'은 '양들의 침묵'의 완결편으로, 전편에서 희대의 탈출극을 감행한 지능적인 살인마 한니발이 자취를 감춘지 10년 후의 이야기다. 영화는 한니발 렉터 박사의 어린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그의 실체를 밝혀낸다. 앤서니 홉킨스가 빠지고 '인게이지먼트'로 얼굴을 알린 프랑스의 가스파르 울리엘이 한니발의 어린시절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2차 대전의 화염이 채 가시지 않는 소련 공산주의 치하의 리투아니아의 고아원에 실어증에 걸린 한 소년이 있다. 이 소년이 바로 이후 세계를 들썩이게 한 살인마 한니발 렉터 박사다. 소년은 전쟁의 포화속에서 여동생 미샤와 겨우 살아남았지만 숲속에 숨어있다가 독일군에 발각된다. 추위와 굶주림에 떨던 독일군은 여자아이를 살인후 식육한다. 끔찍하게 여동생을 잃은 소년은 충격으로 실어증에 걸리고 밤마다 악몽에 시달린다. 고아원 아이들의 괴롭힘과 엄숙한 규율에 반항하며 평범하지 않는 소년으로 변모하고 기막힌 방법으로 탈출을 감행한다.
탈출에 성공한 그는 유일하게 살아있는 친척인 삼촌이 살고 있는 파리근교로 향한다. 하지만 삼촌은 이미 운명을 달리하고, 혼자 남은 미망인 레이디 무라사키만이 그를 반긴다. 한니발은 레이디 무라사키의 헌신적인 보살핌과 가르침속에 지친 차츰 안정을 되찾지만 계속되는 악몽의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독일군에게 처참하게 죽임을 당한 여동생에 대한 기억으로 복수를 본격적으로 준비한 한니발의 잔혹하고 질긴 피의 여정이 시작되는데….
영화는 살인마의 길을 걷게 된 한니발을 통해 인간심리에 내재돼 있는 잔혹성을 끄집어낸다. 극 후반 한니발이 잔인한 방법으로 살인하고 인육까지 먹는 등 전작들의 그것을 뛰어넘는 장면들이 이어진다. 하지만 감독의 시선에선 연민이 느껴진다. 베일에 가려졌던 한니발 렉터 박사의 어린 시절을 집중 조명하면서 그가 태생적인 살인마가 아니라 지워지지 않는 유년의 참혹한 기억이 공포와 복수심을 유발시켰다는 식으로 관객을 끌어당긴다.
가스파르 울리엘은 앤서니 홉킨스의 연기력에는 못미치지만 젊은 시절의 한니발을 창조해냈다. 중국배우 공리는 한니발의 이룰 수 없는 첫사랑이자 숙모인 레이디 무라사키 역을 맡아 원숙미를 뽐내며 극의 한 축을 이룬다. 18세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