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어 쓰게마씨](14)놀이패 한라산

[제주어 쓰게마씨](14)놀이패 한라산
표준어 대사? 상상허지 못허쿠다
  • 입력 : 2008. 07.03(목) 00:00
  • 진선희 기자 jin@hall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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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패 한라산 단원들이 '세경놀이' 공연을 끝낸 뒤 한자리에 모였다. 맨뒷줄에 일어선 이는 왼쪽부터 홍진철 여상익 김영진 김경훈 우승혁 최희영 윤미란씨. 앞줄 앉은 이는 왼쪽부터 고혜숙 강창훈 (한사람 건너)부진희씨. 두번째줄 앉은 이는 한송이씨. /사진=강경민기자

이 땅에 발디딘 민중의 삶을 토박이 언어로

4·3에서 굿놀이까지 제주어 마당극에 담아



"거양, 동네 사름덜이영 수눌어가멍(품앗이하면서) 검질(김) 메게마씀. 삼춘, 거예 우리 밧디(밭에) 검질 메줍서. 검질 메주민 다음에 삼춘네 밧디 도와드리쿠다."

지난달 28일 서귀포시 표선면 하천리에 있는 표선생활체육관. 장맛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이날, 놀이패 한라산이 마당굿 '세경놀이'를 들고 그곳을 찾았다. 서귀포시 여성농민회가 마련한 여성농민한마당에 초청돼 공연을 벌인 것이다.

행사장 밖의 날씨는 꿉꿉했지만 마당판엔 열기가 피어올랐다. 농사의 신 '세경신'을 통해 풍농을 일궈내며 상생하고 공존하는 공동체의 모습이 제주사투리에 실려 복원됐다. 들네 역을 맡아 여장을 한 남자 단원이 임신에서 출산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능청스럽게 연기할 때는 객석에서 웃음보가 터졌다. 정남, 들네, 삼승할망, 팽돌이 등이 등장해 소 몰며 밭을 갈고, 애를 낳고, 김을 매던 한 시절의 농촌 풍경을 풀어가자 관객들은 한마디씩 거들었다.

표선리에서 왔다는 여든셋의 할머니는 "난 저것보다 더 고생핸. 아기낭 얼마 안되엉 아기업엉 물졍오고, 바당에 물질허레 갔주. 기십(배짱)으로 농사지어서"라며 지나온 생을 어제일처럼 떠올렸다.

행사장을 찾은 관객들이 제 일인 양 마당판에 빠져들 수 있었던 이유중 하나는 제주어로 공연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공연을 자주 접하지 못했던 관객들도 "게메(그러게 말이야), 겅해났주(그랬었지)"라거나 "저 말 하나도 틀리지 안허여"라는 반응을 보였다.

1987년 창립한 놀이패 한라산에는 제주어가 늘 따라붙었다. 창립공연 '그날 이후'를 시작으로 '4월굿 한라산', '꽃놀림', '목마른 신들', '헛묘', '전상놀이', '땅풀이' 등 모든 작품의 대사가 방언으로 쓰여졌다. 제주 4·3을 이야기하든, 제주무속 굿놀이를 변주하든, 지역의 현안을 다루든 제주어가 함께였다. 놀이패 한라산이 애정어린 마음으로 품어안은 제주섬 민중들의 언어는 바로 제주방언이기 때문이다.

"제주사람으로 등장하는 인물의 대사를 표준어로 바꿔버리면 그 정서를 제대로 전달 못한다. 몸에 안맞는 옷을 입은 느낌이다. 배우들도 표준어로 대사를 쓰면 연기를 못하겠다고 한다."

김경훈 대표의 말이다. 놀이패 한라산은 전국민족극한마당 등 제주섬 밖에서도 수십차례 공연을 벌여온 단체다. 혹, 다른 지역 관객들과 만날 때 제주어 공연의 한계를 느끼진 못했을까. 김 대표는 "별 어려움이 없었다"고 말한다. 제주방언 대사를 30% 정도밖에 못알아듣는 것 같았지만 이야기의 흐름을 이해하고 웃음이 나와야 할 때 정확히 웃더라고 했다.

놀이패 한라산은 제주에 전해오는 굿놀이 일체를 마당극으로 만드는 작업을 이어갈 계획이다. 이들은 앞서 굿놀이에서 소재를 끌어온 세경놀이, 전상놀이, 영감놀이를 공연한 적이 있다. "묵묵히 제주섬 백성들의 살아있는 이야기를 할 뿐"이라는 놀이패 한라산이 굿놀이에서 어떤 감동을 빚어낼 지 기대를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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