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이 사는 법](39)테이핑 전문강사 이성미씨

[이 사람이 사는 법](39)테이핑 전문강사 이성미씨
"테이핑 요법 통해 자연치유에 관심"
  • 입력 : 2009. 10.31(토) 00:00
  • 진선희 기자 jin@hall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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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핑이 지닌 무한한 가치 때문에 지금까지 테이핑을 할 수 있었다"는 이성미씨가 스포츠테이핑센터 방문객을 대상으로 색색의 테이프를 이용해 테이핑 요법을 실시하고 있다. /사진=이승철기자 sclee@hallailbo.co.kr

제주서 시작된 국내 테이핑 역사 일궈
봉사회 만들어 7년째 마을 순회 강좌


그의 전자우편 주소는 '테이핑119'다. 테이핑(taping)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는 사람. 제주시 오라동에서 스포츠테이핑센터를 운영하는 이성미씨(44)다.

"국내에 처음 테이핑이 소개된 곳이 제주도예요. 그걸 모르는 분들이 많아요. 테이핑이 뭔지도 모를 때 제주는 물론이고 전국을 다니며 열정적으로 강의했던 날이 있었습니다."

더러 1920~30년대 유럽을 효시로 꼽지만 언제부터 테이핑의 역사가 시작되었는지 정확치 않다. 다만 1980년대 초반 일본에서 다양한 테이핑 요법이 나오면서 각지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이성미 대표가 테이핑에 쓰이는 베이지색 테이프를 처음으로 손에 쥔 게 1994년이었다. 서귀포에 머물던 재활의학과 의사인 어강 박사를 도우며 트레이너로 활동한 게 계기였다. 어 박사와 동행하거나 홀로 경기 부천, 인천, 대구, 부산, 서울의 병원 등을 순회하며 테이핑을 알렸다.

테이핑 요법은 인체 근육과 동일한 수축력을 가진 테이프를 피부에 붙여 들어올림으로써 피부와 근육 사이의 공간을 확보해 혈액, 림프액 등의 순환이 잘 되도록 돕는 것을 말한다. 초창기 이 대표는 테이핑 요법에 대한 기준이 없고, 자료가 부족해 애를 먹었다고 한다. 테이핑이 필요한 환자의 상태를 꼬박 지켜보느라 탈진한 경험도 있다. 그럴수록 테이핑에 빠져들었다. 일본 연수를 다녀왔고 국내에서 테이핑 강좌가 개설될 때마다 바지런히 걸음을 옮기며 전문성을 키워갔다. 2002년에는 그같은 결실로 '현대인의 건강을 위한 바이오밸런스 테이핑요법'이란 책을 냈다.

그는 테이핑을 좀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다. 2003년 '제주테이핑봉사회'를 결성해 '지역주민과 함께하는 행복한 건강찾기' 강좌를 운영한다. 이 단체는 2005년 적십자 산하 단체로 새롭게 출범하면서 '참살이적십자봉사회'로 이름을 바꿨다.

지역주민을 찾아가는 건강강좌는 올해로 7년째다. 30~50대 나이의 직장인, 주부 등으로 이루어진 15명의 회원들은 매월 1~3회 가량 도내 곳곳을 순회하며 테이핑을 실시하고 있다. 작년 한해 이들의 손길을 거쳐간 노인만 1000명에 이른다. 중증정신지체장애인, 청각장애인 시설도 방문한 적이 있다. 2004년 이후에는 제주감귤국제마라톤대회 자원봉사단체로 참여해왔다.

웃을 때면 보조개가 깊이 패이는 이 대표는 "지금까지 테이핑을 할 수 있는 건 그것이 지닌 무한한 가치 때문"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대학 강의 등으로 바쁜 그가 지난 3월 전주대 대체의학대학원에 진학한 것은 테이핑에 한정하지 않고 자연치유 등을 좀 더 체계적으로 배우고 싶어서다. 그는 테이핑 요법의 '효능'을 애써 강조하지 않았다. 이 대표가 여러 곳에서 초청받는 테이핑 강좌에서 결론삼아 하는 말은 이런 내용이다.

"테이핑이 아무리 좋다한들 꾸준한 운동만큼 효과가 있겠습니까? 테이핑센터의 문을 두드리기 전에 수목원을 걸어보세요. 일상이 즐거워야 합니다. 그래야 건강하고 아름다운 노후를 보낼 수 있어요. 테이핑은 그 다음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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