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룡만리 제주밭담](10)제주미학의 정수

[흑룡만리 제주밭담](10)제주미학의 정수
검은돌 틈새로 숭숭뚫린 바람구멍에 제주다움의 지혜
  • 입력 : 2013. 09.25(수) 00:00
  • 강시영 기자 sykang@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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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밭담 등은 도시화와 개발독재형 관광산업에 밀린 '천덕꾸러기'가 아니라 앞으로 제주 사람들을 먹여 살릴 문화자원이 될 수 있다. 사진 오른쪽은 구멍숭숭 현무암 돌담이 이어진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 밭담. 왼쪽은 하늘에서 내려다본 하도리 밭담으로 한폭의 그림같은 풍경을 빚어내고 있다. 강경민기자

땅의 경계선 넘어 계절 변화 담아내는 새로운 풍경
"도시화에 밀린 천덕꾸러기 아닌 제주살릴 문화자원"

제주밭담의 바람결을 따른 곡선, 현무암의 검은색 등은 제주섬의 선과 색을 대표하는 제주 미학의 정수로 평가받는다.

문화관광부는 2006년 한국의 거주생활 부문에서 제주 돌담을 한옥, 온돌, 초가와 더불어 '100대 민족문화상징'으로 선정했다. 1970년대부터 1980년대 두차례 제주를 찾았던 '25시'의 작가 게오르규는 제주를 예찬하면서 "도로변의 돌담 집과 집을 구획하는 울담, 밭과 밭을 구획하는 밭담 등은 제주만의 명물"이라고 극찬했다.

화산섬인 제주는 돌의 세계이다. 그 속에 녹아 있는 제주의 밭담은 제주만의 독특한 문화경관을 보여준다.

"제주의 돌담은 그 자체로 인간이 자연에 적응하면서 창조된 경관이다. 밭을 경작하는 농촌 중에서 우리처럼 빌레왓, 다락밭에서 구불거리며 이어진 돌담 경관을 비교할 만한 곳이 전 세계 어디에 있을까. 제주의 밭담은 필리핀의 다랭이논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규모와 경관적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박경훈 제주전통문화연구소장)

제주밭담 세계농업유산 등재 신청서는 제주의 문화경관과 밭담의 경관 특성을 비교적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제주의 문화경관을 이해하는데 있어 제주의 땅에 대한 이해와 제주사람들이 오랜 시간을 통해 습득했던 생활공간에 대한 이해, 그리고 제주적인 스케일에서 찾고 있다. 그 삶의 흔적들이 바로 밭담이며, 밭담은 아름다운 제주의 땅 위에 수놓은 인간의 그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란 점을 강조한다.

제주의 밭담은 서로 완만한 곡선으로 연결되어 있고 지형에 맞게 계단형식으로 조성돼 있는 등 독특하며 오묘하고 깊은 의미를 내포하면서 제주의 풍경을 연출한다. 제주의 밭담은 땅의 경계를 짓는 선으로 존재하지만 땅을 모자이크화해 계절의 변화를 담아내는 새로운 풍경이기도 하다.

특히 검은색 현무암의 끝없는 행렬인 밭담과 어우러진 산담, 초가와 울담 등은 '돌의 나라'의 독특한 경관을 보여주기에 손색이 없다.

지난 2005년에는 제주대학교 연구진에 의해 제주의 돌담(밭담) 가치를 평가하기 위한 의견조사가 실시된 적이 있다. 제주밭담의 경관가치를 가늠해볼 수 있는 조사다.

조사결과 '제주 밭담의 사용가치'와 '경관가치'에 대해 80%를 훌쩍 넘는 응답자가 호평했다. 그리고 돌담보전기금 조성 시 '지불의사가 있다'는 응답자도 전체 999명 가운데 56%에 이르렀다.

제주밭담의 경관 보전을 위한 기금을 마련하는 데 지불의사를 질문한 결과, 제지금액을 수락한 비율은 100원 82.9%, 400원 73.1%, 700원 70.1%, 1000원 65.1%, 2000원 55.1%, 3000원 45.2%, 5000원 33.3%, 1만원 12.5%로 나타났다. 제시금액이 증가하면서 긍정적 응답률은 감소하고 부정적 응답률은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가 제시금액에 적절하게 반응한 것으로 해석됐다.

제주밭담 세계농업유산 신청서는 제주도 돌문화의 상징적 이미지를 검은색(다공질현무암), 거칠고 투박함, 바람구멍, 직선과 곡선, 그림같은 작품, 제주다움, 조상들의 숨은 지혜 등 7가지 키워드로 요약했다.

'검은색'의 이미지는 제주 돌문화의 재료인 돌 자원의 외형적 색채를 강조하는 키워드이다. '거칠고 투박함'의 이미지는 다공질 현무암이 주는 질감과 돌을 만졌을 때 손에 와 닿는 느낌의 정도를 나타낸다. '바람구멍'은 울담이나 밭담 등을 쌓아 올리는 과정에서 돌과 돌 사이에 생긴 틈새를 상징한다.

'직선과 곡선의 이미지'는 울담과 울담이 만나면서, 또 밭담과 밭담이 만나면서 직선과 곡선의 형태를 만들어낸다. 자연 속에서 제주도민들이 만들어놓은 예술작품인 것이다.

'그림같은 작품의 이미지'는 들판이나 오름 사면에 오밀조밀하게 어울려 있는 산담의 무리에서, 줄기차게 이어지는 밭담에서, 또한 끊길 듯 끊길 듯 이어지는 올렛담이나 마을길 돌담에서도 그림같은 작품의 이미지를 연상케 한다. '제주다움의 이미지는 화산활동 결과 탄생된 용암대지 위에 한라산과 오름이 펼쳐지고 삼나무 방품림과 검은색 돌담이 한데 어우러지면서 연상되는 키워드이다. '조상들의 숨은 지혜'는 제주 돌문화의 근본을 묻는 상징적 키워드이다.

박경훈 소장은 "제주의 돌담은 도시화와 개발독재형 관광산업에 밀리는 구시대의 천덕꾸러기가 아니라, 미래에 제주도민들에게 로마인을 먹여 살린다는 '콜롯세움'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문화자원이라는 점을 명백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특별취재팀=강시영·강경민·김지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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